‘민주화의 큰별’ 고 조비오 신부 장례 미사 거행
사제·신도·시민 등 2000여명 마지막 길 배웅
5·18민주광장서 노제…‘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5·18민주화운동 등 이 땅의 민주와 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고 조철현 비오 신부가 23일 영면의 길을 떠났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이날 오전 10시 광주 북구 임동성당에서 고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를 거행했다.

▲ 고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가 23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임동성당에서 열리고 있다. ⓒ광주인
▲ 23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임동 천주교 주교좌성당에서 열리는 고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를 위해 성직자들이 영정사진과 고인을 운구하고 있다. ⓒ광주인

임동성당은 이른 아침부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한 추모인파로 북적였다. 성당 한 켠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화 대신 쌀을 보내달라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각계각층에서 전달한 쌀 4000여㎏이 쌓였다.

장례미사는 사제와 신자,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김희중 대주교의 주례로 2시간 가량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됐다.

남재희 신부는 추모사를 통해 “고인은 광주 시민이 공수부대에 의해 참혹하게 학살된 1980년 5·18 광주항쟁 현장에서 양심적인 증인으로, 맨 몸으로 학살에 맞섰다”며 “정의와 화합 측면에서도 모범을 보인 그의 삶을 등불로 삼자”고 말했다.

차명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고인은 화합과 민족적 대동단결이라는 시대를 열어가고자 늘 고민했고 민주의 성지인 빛고을 광주의 정신을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 다각적으로 방법을 모색했다”며 “그가 강조했던 ‘민주주주 수호 정신’은 늘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유가족을 대표해 “조 신부를 우리 가족으로 모시게 된 걸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저히 떠나보낼 수 없다. 마치 기둥이 뽑힌 것 같다. 가족뿐만 아니라 민주시민 모두가 똑같을 심정이라고 생각한다”며 흐느꼈다.

조 신부의 흐느낌에 미사 내내 슬픔을 견뎌내던 추모객들과 신도들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성수와 분향을 마치고 운구가 성당 밖으로 옮겨지는 동안에도 추모객들과 신도들은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 23일 오전 광주 북구 임동 천주교 주교좌강당에서 고 조비오 신부 장례 미사가 거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 신자가 기도하며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광주인
▲ 고 조비오 신부 장례 미사가 23일 오전 광주 북구 임동 천주교 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되고 있다. ⓒ광주인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를 끝으로 고인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 차량은 5·18 광주시민군 최후의 항전지인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으로 향했다.

고인의 운구 차량이 옛 전남도청 광장에 들어서자 5월단체 회원들은 흰색 한복을 차려입고 고개 숙여 그를 맞이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했던 고인을 그리며 5월단체 회원들은 장례 차량에 얼굴을 묻었다.

애초 운구 차량은 항쟁의 중심지를 한 바퀴 돈 뒤 안장지인 전남 담양 천주교 공원묘원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5월단체의 요청으로 짧게 노제가 진행됐다. 회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렸다.

고인은 평소 착용했던 장백의, 영대, 띠, 백색 제의를 입은 채 전남 담양군 천주교 공원묘원에 안장, 영면에 들었다.

▲ 5월단체 회원들이 23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고 조비오 신부 운구 차량을 맞이하고 있다. ⓒ광주인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