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오월시 연재

고개 숙인 모든 것

- 박노식 시인
 

조용한 아침인데,

버스승강장 간이의자에 가위다리로 걸터앉은 한 여인이 제 발끝을 오래 내려다보는 것을 스쳐가며 보았다. 흰 발목보다 슬픈 목덜미가 먼저 내 가슴으로 달려드는 순간에 간밤의 꿈이 떠올랐지만 백미러가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고개를 꺾은 채 휘인 나무처럼 굳어있었다.

이건 그리움이 아니라 절규다, 라고
내가 악몽 끝에 외치는 것은
산비탈에 뿌리내린 보리수나무 열매들이
허공에 물구나무 선 채로 몸서리치다가
죄다 투신해버리는
임종을 보았기 때문이다

담양 장날, 서 있는 상인보다 앉아서 졸고 있는 노파들을 보면 내 목이 먼저 꺾인다

고개 숙인 모든 것들이 나에겐 절규다
담벼락의 나팔꽃, 뙤약볕의 고춧대, 태풍 지난 개암나무가지, 울타리 밖 단감나무,
적설을 머리에 인 노송......

조용한 아침인데
그 여인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 박노식- 광주광역시출생. 조선대 국문과 졸업. 전남대 대학원 국문과 수료. 2015년 「유심」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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