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용기, 무릎 꿇는 위선

권투경기에서 가장 시원한 장면은 강펀치 한 방에 휘청 쓰러지는 모습이다. 쓰러지는 선수야 더없이 비참하겠지만 보는 관중들의 심정은 인간의 마성을 그대로 들어낸다. 그래도 역시 시원한 것은 도리 없다.

1977년 11월 27일 남아공화국 더반에서 한국의 홍수환은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별명의 파나마 챔피언 ‘카라스키야’를 맞아 그의 소나기 펀치를 맞고 2회에 4번이나 주저앉았다. 결과는 뻔했다.

▲ ⓒ더불어민주당

그러나 3회 극적으로 승리했고 그것도 KO승이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이 어머니에게 한 승리의 보고는 국민에게 하는 보고이기도 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모를 것이다. 자료영상을 통해서 보았겠지만 그때 국민이 느낀 감동과는 어림도 없다.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다.

■표창원의 일격과 앵커

2015년 12월 30일. 국민들은 TV화면을 보고 있었다. 표창원 교수와 앵커의 인터뷰. 잠시 후 국민들은 뜨거운 여름에 소나기를 맞는 시원함을 만끽했을 것이다. 나만의 느낌인가. 방송 앵커와의 인터뷰를 권투 시합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원했다. ‘국민 여러분. 앵커 먹었습니다’

표창원 교수와 MBN의 김형오 앵커와의 인터뷰. 이미 조회 수가 50만 회를 넘어 백만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되는 인터뷰는 우리 방송 앵커사상 기억되어야 할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언론의 자세다.

우선 앵커의 질문을 보자. 그는 부산에서 벌어진 문재인 대표의 사무실 인질극을 언급했다.

“야당을 비판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질문을 드리겠다” “문재인 대표 부산 사무실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는데, 이유야 어찌 됐든 제1야당의 대표 사무실에 국민이 들어가서 인질극을 벌이면서 제1야당 대표에게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게 바람직하진 않지만 그래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 대표가 뭘 잘못했을까?”.

표창한 교수가 즉각 반문했다. 좀 길지만 한 언론의 기사를 인용한다.

“역으로 한 번 질문을 드리고 싶다. 그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많다” “그 질문을 하신 앵커 입장에서 그게 정말로 문 대표에 대한 문제 혹은 책임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제가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저 분(인질범)의 이상한 행동이라고 그냥 몰아붙이기에는…”
“그러니까 책임이나 문제의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선거 유세 중에 면도칼 공격을 당하셨다. 박근혜 대표의 잘못인가? 똑같은 대답을 한 번 해보라”

김 앵커 “아… 그때 그분은 정신이상이었잖아요”
표창원 “지금 이분도 정신이상으로 나오고 있다. 어떤가, 사람에 따라 다른가? 상황에 따라 다른가?” “지금 계속해서 여러 종합편성채널에서 유사한 형태의 공격들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 사무실에 누가 들어가서 인질극을 벌인 걸 보니 문 대표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2006년 그 사건(박근혜 피습사건)도 똑같이 취급을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

“북한의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사망하고 우리 정부가 주적임에도 불구하고 애도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같은 나라의 야당 대표가 이런 피습을 당했는데 어떤 의사 표시하셨나? 위로나?”

“여당이나 정부나 방송의 태도 자체가 상당히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공격을 할 때가 아니라 범죄나 테러 행위에 대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같이 규탄을 할 때”다.

■참담한 앵커

방송 앵커를 비롯해서 그 밖에 진행자들의 편파성은 새삼스럽게 지적되는 것이 아니다. 사이비 어용교수나 이른바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의 왜곡 편파는 이미 언론이기를 포기한 저질행태다.

자신이 죽은 기사만 아니라면 언론에 노출되기를 원한다는 정치인들이지만 국민들 앞에서는 선거 때만 순한 양인 이들이 앵커 앞에서 벌리는 아양은 진정제를 먹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들다. 앵커 말에 토를 달다가는 박살이 난다는 공포감 앞에서 자기주장이란 없다. 그냥 예 예. 앵커의 갑질은 꼴불견이다.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일 오전 더민주당 입당 후 광주를 첫 방문하여 강기정 의원(광주 북갑. 앞줄 맨 왼쪽)과 5.18묘지를 참배한 후 묘역를 둘러보고 있다. ⓒ강기정 의원실 제공

그날도 앵커는 그랬을 것이다. ‘너 똑똑하다지?. 어디 한번 당해 봐라. 범죄 프로파일러가 아니라 제갈공명이라도 어림없다. 임자 만난 줄 알아라.’ 앵커의 자만은 목구멍까지 차 있었다.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는 손자병법을 들지 않더라도 앵커는 멍청했다. ‘(문 대표가) 뼈아프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운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상대에 대한 인식부터 잘못된 출발은 끝날 때까지 헤매는 수밖에 없다. 보기 참 안 됐다.

조·중·동이나 종편의 기자나 앵커들이야 더 말 할 것도 없고 그 밖에 방송에 나와 말 좀 한다는 인간들이 내놓는 것이 양비론이다. 똑같이 나쁜 인간이다. 이런 단죄는 아주 편하다. 그러나 생각 좀 해보라. 배고파 빵 한 조각 훔친 장발장과 부귀영화 모두 훔친 귀족들이 다 같은가.

교통 법규 좀 위반하고 벌금 낼 돈 없어 구류 사는 서민과 수십억 수백억 해 먹고 하루에 몇억 씩 탕감받는 재벌들의 범죄가 똑같은가. 같은 양비론이 합당한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을 것이다. 일제 때 마을에서 송사가 나면 재판소(법원)에 가시 전에 기자들 찾아 판결을 구했다. 기자의 판결로 옳고 그름은 판가름이 났다. 옛날에 기자는 그랬다. 어떤가 기레기들은 느낌이 있는가 없는가.

한겨레가 양비론에 빠졌다는 지적이 많다. 기자들의 개성이 강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개성과 기사는 다르다. 너도 나쁘고 니도 나쁘면 헷갈린다. 한 번 도둑질과 열 번 도둑질은 형량도 다르다. 언론의 자기반성을 어디서 볼 수 있는가. 나라를 망치는 제일 주범은 언론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불의한 언론에 대해서 목구멍까지 불만이 차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이 언론이 가진 또 다른 권력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밉보이면 당한다는 공포가 침묵을 미덕으로 삼는다. 가만이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체념이다.

이번 표창원 교수가 앵커에게 던진 강력한 충고가 열광적이고 폭발적인 호응을 일으킨 것은 바로 국민들의 분노가 터진 것이다. 한 마디로 잘 걸렸다. 시원하다고 쾌재를 부르는 것이다. 어떤가. 언론은 기분이 나쁜가. 방송국에 간부로 현직에 있다가 쪼르르 청와대로 직행하는 언론의 양심은 이미 실종이다.

표창원 교수가 김형오 앵커에게 준 선물로 앵커는 아프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앵커는 좋은 일을 했다. 그런 수준 미달의 질문을 해 주었기에 표창원 교수의 분노가 폭발했고 결과는 언론에게 경종을 울리고 언론이 조금은 자성을 했을 것이다. 반대로 ‘너 두고 보자’고 이를 가는 언론인도 있을 것이다.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더불어민주당 입당 후 지난 1일 광주를 방문하여 5.18민주묘지를 참배한데 이어 오후에 동구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프리허그' 행사를 열고 있다.

지금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옛날 기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에겐 ‘죽구 싶으냐’고 별렀다. 노무현이 조선일보와 틀어진 이유도 종로 보급소 소년 배달원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온 말이 ‘노무현 죽어’다. 언론이 권력으로서 위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불의를 응징하고 공정한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언론의 기본자세가 아니겠는가.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시중에는 이제 표창원 교수와 인터뷰하려는 앵커는 없으리라고 했다. 겁이 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SNS에 쏟아 놓는 트윗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표창원 교수님. 언론을 위해 참 대단한 일 해냈습니다. ”

언론이 가슴 저리도록 반성해야 할 충고다.

가슴에 새길 수 없는가. 앵커는 방송의 꽃이라고 한다. 이번 표창원 교수와의 인터뷰를 계기로 많은 반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방송이 나가야 할 길은 명백하다.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이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는가.

조·중·동과 종편은 이제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표창원 교수뿐이 아니라 모든 정치인이 잘못된 언론과 맞서야 한다.

불의한 권력을 향해 언론은 창을 겨누고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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