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말은 알아들어야 말이고 맛이다. 제주도 토박이 해녀 할머니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통역이 필요했다. 인간생활에서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소통이 없으면 단절이고 갈등으로 직행이다.

“고마해라. 마이무따아이가” 이게 무슨 말인가, 유오성과 장동건이 출연한 영화 ‘친구’에서 무수히 칼에 찔린 장동건이 유성호에게 말한다. “고마해라. 마이무따아이가” 아주 슬픈 얘기다. ‘많이 찔렀으니 이제 그만 찔러라. 그만 찔러도 죽는다’ 그러나 죽을 이유도 모른 채 찔리기만 했다면 장동건은 얼마나 친구가 원망스러웠을까.

의사당 반쪽을 울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연설. 54회 박수 소리, 귀는 점점 멀어갔다.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지. TV를 함께 보는 친구들은 침통했다. 우리나라 말이 저렇게 어려운 것일까. 듣는 사람이 무식한 탓이라고 자책을 하면 되는 것일까.

▲ ⓒ청와대 갈무리

슬픔이 밀려왔다. 자신만의 언어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친일은 항일이 될 수가 없고 매국이 애국은 될 수 없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소설은 가능한 세계의 기록이다’ 지금 우리 백성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오늘의 우리 모습은 어떤가. 제발 좀 정직하라는 국민의 호소다. ‘경제’을 외치고 청년을 불러대고 개혁을 외쳐도 입에서 나오는 즉시 공중으로 날아간다. 믿지 않으면 천하의 ‘소진·장의’인들 무슨 소용인가. 신뢰는 세상사를 풀어가는 최우선이다.

■이 나라를 어쩔 것인가

국정교과서 문제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대통령도 국회도 정부도 정신이 없다. 갈등의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렇게 거짓말하는 정권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돌아서면 들통이 날 거짓말도 태연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비난에 앞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친일과 항일. 애국과 매국이 범벅되고 한국형전투기(KF-X) 핵심기술을 10년 내 개발한다고 허풍이다. 미국에 애걸복걸하다가 거절당한 게 엊그제다. 개발에 자신 있다는 김관진의 말을 대통령은 믿고 승낙을 했을까. 대통령의 말이 이토록 공허한 적을 경험한 적이 없다.

감동도 울림도 없는 공허한 수사만으로 허공을 돌다가 사라지는 말들. “분열된 국론의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갈등의 불을 질렀다. 대통령과 국민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국민이 잘못인가.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교수들이 왜 거리로 나오는가. 고등학생들이 들썩이는가.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교수 거의 전부라 할 정도로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전국을 꽉 채우고 있다. 대통령의 귀에는 안 들리는가. 누군가 듣지 못하게 하는가.

부모를 사랑하는 어느 고등학생이 쓴 공개편지 내용의 일부다.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적어보려 합니다. 아베 총리에게는 전범 할아버지가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께는 독재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든, 두 분 모두 한국과 일본에서 오랫동안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셨던 분들입니다. 그것은 즉,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 두 분의 개인사, 그리고 가족사가 나라 전체의 근현대사에 얽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두 분은 지금 역사를 고쳐 쓰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과서에서 믿기 힘든, 믿을 수 없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보셨겠지요. 박근혜 대통령님은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고 계시고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검정 과정에서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시도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정말이지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아베 총리와 도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중략)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님,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역사를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그것은 사슬이 되어 당신을 옭아맬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인정하고 대통령님을 붙들어 매고 있는 그 사슬을 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그렇지만 이제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인간 박정희, 아버지 박정희는 간직하되 대통령 박정희는 놓아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그것은 사적인 영역이 아닌 공적인 영역이기 때문이지요. 당대의 역사학자들, 그리고 후세의 자손들이 평가해야 할 몫입니다.

■역사 왜곡은 범죄다

내선일체라는 말을 아는가. 우리 조상이 일본과 같다는 것이다. 이래도 친일을 미화하고 항일을 매도하겠는가. 세계 석학들이 역사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 유엔도 반대다. 역사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가 몇이나 되는 줄 아는가.

북한, 방글라데시, 베트남, 수단, 이라크, 스리랑카, 중국이다. 이 중 베트남도 안 쓰기로 했단다.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꼭 저 중에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가. 김일성·김정일의 웃는 모습이 보인다. 위에 고등학생 편지에 있듯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상하되 그것이 오히려 욕을 뵈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절대로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면 효가 아니라 불효다. 불효막급이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자유당 독재시절이다. 지금은 어떤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는 세상인가. 생각이 없으면 몸뚱이가 살아 움직여도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유당 독재를 종식시킨 것은 젊은 대학생들이다. 지금 대학에서 타오르고 있는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이 바로 생각하는 백성이 되자는 운동이다. 대통령은 고정관념에 집착되어 도리가 없다 하더라도 새누리 의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민심을 알 것이다. 다시 배지를 달려면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유신독재가 어떤 종말을 고했는지 잘 알 것이다. 세월은 간다. 길어야 2년이다. 국민의 말을 들어야 산다. 자신만이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생각하는 백성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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