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사내하청 EG테크 고 양우권 분회장의 죽음에 부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현장’은 땀이자 곧 삶의 공간이다. 여럿이 한 데 모여 작업을 하고 찐한 땀 냄새 속에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친목계는 집안의 애경사를 챙겨준다. 등산·낚시 등 취미활동을 함께하고 자녀 교육문제를 비롯해 가정사도 상의한다. 월급날 회식을 통해 노동의 고단함을 풀고 다양한 인생사도 함께 나눈다.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이 겹겹이 펼쳐지는 곳이기에 노동자들에게 현장은 자신들의 삶이자 사회생활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 고 양우권 노동열사 정신계승 및 투쟁선포 기자회견. ⓒ민주노총 전남본부 제공

노동자들은 현장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생존을 이어간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지급받는 행위는 현장의 노동에 의해 발생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통해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보존한다. 현장은 제조업에 국한하지 않고 서비스·공공부문 등 비제조업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해당한다. 그야말로 현장은 노동자들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자가 삶의 전부인 현장으로부터 배제되는 때가 있다. 정년퇴직 기준에 의해 퇴직할 때와 개인 사업을 위해 회사를 그만둘 때 그리고 산업재해나 질병으로 노동력을 상실했을 때 등이다. 이러한 경우는 각종 규정에 따르거나 자신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기에 강제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자본의 힘에 의해 강제로 현장으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노조활동에 의한 해고가 이에 해당한다. 이때는 무방비 상태로 길거리에 나앉기 때문에 가정경제의 파탄을 불러오며 다른 현장으로 들어가거나 복직이 되지 않는 한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다.

특히 노조활동과 관련해 자본은 현장으로부터 떼어놓아야겠다는 계산 하에 해당 노동자를 현장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작업에 가장 많이 써먹는 수법이 소위 ‘대기발령’이다.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사무실로 불러들여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혀둔다. 하루 이틀도 아닌 수개월을 그렇게 한다.

단지 책상 앞에 앉혀두는 것만이 아니다. CCTV를 틀어놓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관리자들이 들락거리며 “노조를 탈퇴하라”고 종용한다. 양심을 팔고 동료들을 배신하라는 주문을 끝없이 해댄다.

이것도 먹히지 않으면 현장 동료들에게 왕따 작전을 쓴다. “000을 만나지마라, 만나는 사람은 불이익을 주겠다. 아주 드물게 배치되는 업무는 자신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풀 뽑기나 하수구 청소 같은 허드렛일이다.”

현장과 떨어져 있기에 동료들과 어울려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도 어려워진다. 동료들과 함께 해온 현장의 일상들이 하나 둘씩 멀어져가고 외부인 취급을 받게 된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육신과 영혼은 점점 허물어져가고 결국 사직서를 내거나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 

▲ 고 양우권 분회장.

지난 5월 10일 광양의 포스코 사내하청 업체인 EG테크에서 금속노조 양우권 분회장이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와 일기는 자본이 노조간부 한 사람을 현장에서 도려내기 위해 무슨 짓을 하는지, 그리고 대기발령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소상히 보여준다.

현장은 노동자들에게 삶의 터전이고 노동조합에게는 활동의 기본 무대다. 자본은 노동조합의 존재 유무를 떠나 현장 장악을 위해 엄청난 술수를 꾸며댄다.

이 때 법은 뒷전일 뿐이며 오로지 자본의 힘만이 최고가 된다. 미행, 감시, 회유, 협박, 매수, 폭행, 대기발령, 고소, 징계, 해고, 손배청구, 구속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본의 계략이 번뜩인다.

반면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자라는 동질감 속에 노동의 대가를 찾기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 상조회, 계모임, 노동조합 등 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반드시 현장을 장악하려는 자본의 음모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노사 간에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진다.

▲ 정찬호 노동활동가.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현장은 삶의 터전인 동시에 전쟁터인 셈이다. 고 양우권 분회장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혹독한 외로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부당함에 맞섰다.

현장을 장악하려는 자본의 음모는 지금 이 순간 일분일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노동자의 응답 또한 오로지 현장뿐이다. 현장에 동료가 있고 노동자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을 잃는 순간 노동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오로지 노예의 굴종된 삶만이 기다릴 뿐이다. 자본의 음모에 쓰러져간 고 양우권 분회장. 그의 명복을 빌며 현장 장악을 위해 모든 노동자들의 거침없는 분발을 촉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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