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에 몸담고 있던 시절, 언제부터인가 학교동창이나 친인척들로부터 “대기업 노조는 귀족노조다”, “대기업 노조가 장악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귀족노조 대변인이다”는 격한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또한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죽든 말든 지들 몫만 챙긴다”, “연봉이 7천이고 1억이라는데 도대체 얼마를 더 챙겨야 되냐?”며 핏대 올리는 지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자리마다 차분히 그들에게 잔업, 철야, 특근, 산재사고 등 대기업의 노동 현실과 재벌들의 수천억대 순이익에 대해 별의별 얘기를 다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니도 그들하고 한 패냐?”는 날선 반감 뿐 이었다. 이런 현상들이 최근에는 거의 적대적 관계로 고착되고 있는 느낌이다.

▲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해 7월31일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민중의소리 갈무리

지난해 통계청 고용동향을 살펴보면 고용 인원 300인 미만인 중소기업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300만원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 482만의 62% 수준에 불과하고 천 만명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44만원으로 대기업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임금에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대다수 중소기업과 비정규직들에게 대기업 노동자들이 어떻게 보이겠는가? ‘재벌과 보수언론의 공세다’며 제 아무리 부풀려졌다 해도 상대적으로 고액 임금인 그들에게 동질성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며 자신들과는 뭔가가 ‘다른 부류’인 것이다.

노동조합 차원에서 보면 대기업은 무노조, 어용노조, 민주노조 세 부류가 존재한다. 무노조는 삼성이 대표적이며 엄청난 지불능력을 앞세운 노무관리로 노조결성을 초기부터 차단시킨다. 어용노조는 재벌이나 정부와 한통속이 돼 그들의 편에 서서 노조원들을 관리한다.

민주노조는 부단한 연대 활동과 다수 노동자들의 대의에 입각한 활동을 벌인다. 노동운동의 견지에서 보면 대기업에도 민주노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것이 목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 다.

광주지역 제조업의 경우, 300인 이상 대기업 노조 대부분이 한국노총 소속이며 이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파업을 벌인 사례가 단 한건도 없다. 파업 대신 노사협조를 통해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고 권익을 챙겨왔다.

노사분규가 발생하지 않아 언론보도를 타는 일이 거의 없기에 임금이나 복지 수준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장은 엄청난 규모의 비정규직으로 채워져 있으며 노조의 승인이나 묵인 방조가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대기업노조들 역시, 자신들의 권리 주장에는 ‘도’가 텄지만 외부 연대나 비정규직문제 등 대의에 입각한 활동은 매우 드물다. 노동 현안문제를 이슈로 한 민주노총의 결의대회는 70~80%가 비정규직 노조나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로 채워진다.

원래부터 어용·귀족노조이거나 그렇게 되고자 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만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에게 특별한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법은 다양하겠지만 차후에 다루고자 한다. 명확한 것은 많은 시간과 공력을 투자해도 바뀔까 말까한다는 것이다.

▲ 정찬호 노동활동가.

대기업 노조가 제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것 또한 노동운동의 한 영역이며 그런 꿈을 키우기 위해 미리 앞선 상상을 해본다. 대기업노조가 하청·협력업체 비정규직의 임금인상 투쟁을 전개한다.

자신들의 임금 인상은 1/3로 줄이고 나머지 2/3를 하청협력업체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에 투입하라고 대기업 사업주에게 요구 한다.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스스로 대표를 뽑고 대기업노조와 머리를 맞댄다. 임금 단체협약은 물론 현장의 작업환경 개선 등 각종 고충처리를 함께 풀어간다.

사업주의 반발에 맞서 파업을 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지나가는 시민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한다. 이렇게 대의에 충실한 노조활동이 전개된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상상은 금속노조와 같은 산업별노조들이 꿈꿔온 미래다. 그러나 현실의 산업별 노조에서는 아직 꿈에 불과하다.

세계노동운동의 역사에는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와도 대기업 노조들이 반발하는 사례가 적잖이 등장한다. 한국에서 노동자 민중의 권력이 수립된다면 대기업 노조들은 누구의 편에 설까?

짧은 글에 대기업 노조의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지만 무노조든 양대 노총 소속이든 대기업 노동 현장에서 노동운동의 대의에 충실한 대안세력이 등장할 때야 만이 대기업 노동조합운동의 미래를 꿈 꿀 수 있을 것이다. 귀족으로 불리는 대기업 노동조합, 우리시대 노동운동이 반드시 뛰어넘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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