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의원(전 서강고 해직교사)

추모의 글

정의의 외침이다. 응답하라!

청마의 새해가 밝아오는 첫날 복 많이 받고 좋은 일만 있으라는 덕담을 주고받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식이 들린다. 이남종이라는 분이 “박근혜 대통령 사퇴, 특검 실시”를 주장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분신하였으며,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숨진 남종이는 전교조 창립으로 치열했던 89년 광주서강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죽은 자식을 부모는 가슴에 묻는다는데, 불의에 항거하여 정의를 외치다 목숨을 버린 제자는 어디에 묻어야 하나.

▲ 4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고 이남종 열사 광주노제. ⓒ광주인

젊은 죽음을 앞에 두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죽음을 보듬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열사를 추모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추모연대 공동대표로서 열사들의 추모행사에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의 길에 더는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그러나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남종의 비분이 또 다른 젊음의 극단적인 비분으로 옮겨지는 것을. 더는 이 같은 불행의 되풀이를 막는 것이 이남종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고 불살라야 했던 많은 죽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그들의 죽음 앞에 오늘의 위기와 현실을 있게 한 우리 자신의 책임도 더는 핑계로 대신하거나 에두르지 말자.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오늘의 민주주의 위기를 손 놓고 보고만 있지 말자.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는 그 세월을 견디며 나는 속으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다시는 젊은 죽음 앞에 조사와 추모사 따위를 읊조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그 다짐을 또 허물어야 하는가!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은 지나간 해에 모든 것을 털어내기라도 한 듯이 새 아침을 노래하고 있는데,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겨울답지 않게 맑은 하늘과 햇살이 차라리 저주스럽게 느껴지는 새해 새 아침이다.

해직교사 시절 심장마비로 죽은 제자를 망월동 일반묘역에서 그의 친구들이 매장하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 박종태 열사는 89년 서강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2009년 비정규직 화물노동자의 천근만근이나 되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불꽃같은 투쟁을 하였다. ‘끝까지 싸워서 이기자’는 유지를 남기고 기어이 먼 길을 떠나 망월동의 노동열사 묘역에 안장하였다.

고 이남종 열사는 유서에서 “국민은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모든 두려움은 내가 다 안고 가겠다. 국민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났으면 한다.”라는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이 유서의 내용을 광주 YMCA 무진관에 분향소를 차리고 참배하는 자리에서 보았다. 만 근의 철퇴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나는 해직을 앞두고 마지막 수업에서 제자들에게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었다. “나도 이 길이 가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그러나 제자인 너희에게 두렵고 무서운 일을 남겨주는 것은 스승의 도리가 아니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부모의 도리가 아니므로 이 길을 간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남종이가 국민의 두려움을 안고 가버렸다. 국민에게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박근혜 대통령 사퇴, 특검 실시”를 반드시 쟁취하기 위해 싸우라는 숙제를 주고.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참담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잘못된 권력은 조막만한 손으로 이남종 열사의 주장과 죽음을 가리려 하는 오늘이 너무나 고통스럽다. 서울역 고가 위에 칼바람과 마주 선 이남종의 불덩이마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세상은 무엇이 정의인지 바로 보아야 한다. 너의 죽음을 부른 오늘의 정치 현실에 분노하고, 하나뿐인 정말로 하나뿐인 목숨을 내던져야 했던 너의 비분이 가슴 시리도록 서럽다.

수많은 민족, 민주열사들의 희생으로 이룩했던 민주주의와 정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괴감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오월을 유린했던 이 땅의 잘못된 세력은 과거 ‘유서대필 사건’처럼 열사의 죽음을 ‘의혹이 있는 죽음’처럼 호도한다. 용납할 수 없다. 하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제자들에게 약속했지만 나는 아직 민족, 민주, 인간화의 참교육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교육의 위기와 현실에 맞서고 있는데, 여전히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두려운데, 이 두려움을 제자가 대신 가져가겠다니. 이 참담한 심정을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이남종 열사! 못난 스승으로 약속합니다. 잠시나마 안일하고 흐트러졌던 참교육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것을.

끝으로 서강고등학교 가족들에게 제안합니다.
교과서는 “불의에 항거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라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싣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육은 교과서와 교사를 넘어 세상이 배움터라고 합니다. 서강고등학교에도 기억하고, 추모하고, 계승해서 발전시켜야 할 정의로운 역사가 있습니다.

89년 3학년들이 졸업선물로 학교에 기증한 ‘참교육비’는 23년이 지난 지금도 서강고 교정이 아닌 전남대학교 사범대 앞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으며, 고 박종태 열사의 정의는 모교 교정에서 찾을 길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고 이남종 열사의 외침은 화장터의 연기와 함께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교의 교정에 ‘민주 동산’을 만들어 서강고의 정의로운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계승 발전시키는 고귀한 일을 제안합니다.

광주의 시민사회도 이 일에 지혜와 힘을 모아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남종 열사 유가족들의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대신할 수 없는 고통에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못난 스승이자 선배로서 그의 외로움과 분노를 헤아리지 못한 세상을 대신해서 유가족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2014년 1월 4일

고 이남종 열사의 영면을 기리며 정 희 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의원. 전 서강고 해직교사)

정희곤 광주광역시의회 교육의원(전 서강고 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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