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전문]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정치권력으로 재단하지 말라!

1982년 6월 어느 날 당시 광주의 소설가 황석영의 집에서 문화활동가들이 모여서 녹음기를 켜놓고 기타와 장구, 북을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살살 두들기면서 공연하여 만든 것이 ‘님을 위한 행진곡’외 대여섯곡의 노래가 실린 “넋풀이 굿” 노래극 테이프다.

노랫소리가 담을 넘어 경찰단속에 걸릴까 봐 유리창에 담요를 치고 가정용 녹음기를 틀어 만든 노래 테이프 원본에는 그래서 아랫집의 개짓는 소리와 500미터쯤 떨어진 철로로 다닌 기차의 기적소리도 낮게 담겨있다.

그 후 그 테이프는 제작에 참여했던 문화활동가들이 사비를 들여 대량 복제하여 전국의 대학가로 확산되어 따라 불러지다 마지막 노래로 실린 ‘님을 위한 행진곡’이 소위 ‘민중애국가’로 지칭될만큼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고 있다.

노래는 사람들이 즐겁게 듣고 따라 부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수명이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 노래는 오래 살아남고 외면하면 그 생명은 바로 끝난다. “넋풀이 굿” 노래극 테이프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 외에도 몇 곡의 노래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만 기억할 뿐 다른 노래는 알지도 못한다. 그것은 그 노래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나 문학, 미술 등 예술작품을 정치권력이나 재화로 그 가치를 결정할 수 없다. 노래를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시나 소설을 읽을 때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끌리는 느낌이나 우러나오는 행복한 감정이 바로 예술작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의 기능이다. 프랑스의 국가인 ‘라마르세이즈’도 살벌하고 오싹한 가사내용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기꺼이 자랑스럽게 부르는 이유는 바로 그 노래의 예술성 때문인 것이다.

해마다 5월 18일 망월동 국립묘지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불리던 ‘님을 위한 행진곡’을 2009년부터 3년간 공식 식순에서 배제하고 올해는 대체 곡을 찾기 위해 예산까지 배정하는 정부와 보훈처의 행위에 분노를 넘어 실소만 나올 뿐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먼저가신 분들이 부끄럽지도 않은 지 묻고 싶다.

‘님을 위한 행진곡’ 노래를 5월항쟁 기념식순에서 배제하고 민중들이 부르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5월항쟁의 의미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전국적으로 확산하여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뿌리내리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님을 위한 행진곡’은 흘러간 애창곡이 되어 역사책에나 실리고 그 시대의 정서에 맞는 다른 노래가 불러지고 있을 것이다. 현 정부는 그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재차 언급하는데 당시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작했던 당사자와 그 후배들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열심히 518항쟁 당시의 발포 책임자가 색출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면서 부를 예정이니 두 번 다시 이 문제를 논하지 말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