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처럼 다가오는 식량과 채소농업 기반의 위기을 예감한다.

농민들에게 1월은 비교적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계절이다.

옛날 같으면 이러한 시기에 방학 숙제 하듯 남자들은 농사에 필요한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치는 일을 하거나, 가정에서 사용할 멍석이며 소쿠리를 만들고, 여성들은 물레를 젓거나 베틀에서 팔이 아프게 북을 놀리겠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풍경은 찾을 수 없다. 화학제품으로 밧줄이나 그릇이 잘 만들어지는 요즘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노인들만 남은 농촌은 특별히 시설 원예를 하지 않는 마땅한 일거리가 없을 뿐 아니라 추위에 일할 능력도 없어 거의 마을 회관에 모여 시간을 보낸다. 우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 지은 마을 회관은 보일러 기름이 많이 든다면서 마을 안에 있는 창고 같은 옛날의 노인당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노는 것을 볼 수 있다.

▲ 텃밭의 일부. 내년 농사를 위해 퇴비를 깔아놓은 풍경. 여기에 나는 각종 잎채소와 열매채소, 뿌리 채소를 골고루 심을 작정이다. ⓒ홍광석

텃밭 농사를 하는 우리에게도 농한기라고 할 수 있다.
1주일에 두어 번 둘러보면서 나무들의 안부를 살피고 지난 가을 하우스 안에 심어둔 채소를 뜯어 오기 위해 숙지원을 찾을 뿐이다.

그리고, 텃밭 농사 주제에 거창하게 ‘설계’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그렇지만 지난 4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고 우선 2011년에 할 일을 아내와 의논한다.

몇 번 밝힌 대로 숙지원은 고향으로 가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나에게 고향 찾기의 결과물이다. 또 텃농사는 아내와 나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노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또 숙지원은 채소만이라도 깨끗하고 안전하게 가꾸어 자급하고 남으면 나누며 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적당한 노동이 정년 연장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몫 거들었던 점도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 아내의 병은 많이 호전되었고, 나 역시 예전에 비해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다. 그런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겠으나 아내와 나는 텃밭 농사가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점에 공감하고 지금까지로 봐서는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데 동의한다.

지금까지 우리 텃밭농사 방법은 거의 ‘전통농법’을 벗어나지 않았다.
소득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기도 했으려니와 농사에 익숙하지 못한 처지에서 새로운 농법과 작물을 시도하고 싶지 않았던 점도 있다. 그보다는 텃밭 농사를 하면서 우리 전통 농법이 우리나라의 기후풍토 등 자연 조건을 잘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농작물일지라도 지역에 따라 잘 자라는 곳이 있고 자랄 수 없는 지역도 있다. (아마 전국적으로 지역에 따라 특산물이 나오게 된 배경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농작물에 따라 파종하기는 시기도 차이가 난다. 봄에 심은 벼를 가을에 베어내면 그 자리에 보리를 심고, 콩을 수확한 자리에 마늘을 심는 것도 작물의 특성을 고려한 전통 농법일 것이다.

전통농법의 특징은 인구에 비해 토지가 좁다보니 노동집약적이었으며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의 농법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란 좁은 토지에서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의 생산하는 방식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은 단일 품목을 집중적으로 재배하는 것보다 자연 재해로부터 피해를 분산시킬 수 있으며, 다양한 농산물의 생산은 다양한 우리 음식문화를 발전시키는 조건이 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역시 우리 조상들이 자연조건을 고려한 지혜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부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소득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돈 버는 농업을 강조하면서 전통농업을 죽이고 있다.

물론 돈 버는 농업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구제역 파동으로 수 많은 축산 농가들이 피해를 입고 그런 농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는 잃게 되는 현실을 본다면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통 농업이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에도 이의를 제기 한다.
사실 농산물 가격이 낮은 원인은 농민들에게 있었던 것은 아니라 정부가 줄기차게 저 농산물 가격을 유지시켜온 결과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대체로 농산물 가격은 쌀이 교환의 매개였던 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쌀값과 연동되어 움직인다. 그러다보니 다른 농산물 가격도 정서적으로 결정과정에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정부에 의해 낮추어져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의 몫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농민들이 못 사는 까닭을 농민들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현재도 적은 수익을 보고 귀농하려는 젊은이들도 없겠지만 정부역시 기존의 전통농법을 가난의 원인이라고 하면서 젊은이들의 귀농을 막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신문들은 엥겔계수가 높아졌다면서 식품 가격 상승을 우려한다.

▲ 고구마 1kg에는 약 7개가 올라간다. 이 정도면 두 사람의 한끼 대용식이 된다. ⓒ홍광석

그런데 우리가 믿었던 중국의 농산물 가격은 예상을 넘은지 오래고,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밀은 98%, 옥수수 75.7%, 콩은 50.2% 상승했다는 기록이 보인다.(1월 17일. 한국경제신문 등 참조) 물가 상승을 훨씬 웃도는 지수로 앞으로 농산물 가격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닌가 한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원산지 농산물 가격을 현실화될 수밖에 없고 앞으로 엥겔계수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농업을 보호하고 농촌을 살려야 할 정부가 “돈 버는 농민 살기좋은 농촌”이라는 농정 지표나 내걸고 농촌에 유통회사와 뉴타운이나 만들겠다고 하고 있으니 제정신이 박힌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단순 비교이긴 하지만 현재 쌀은 1인 1끼니의 식사에 쌀 1홉이면 족한데 그 1홉의 가격이 요즘 상품 쌀 시세로 300원이다. 봄에 심어 가을에 거둔 고구마는 100g에 2,300원인데 저울에는 중정도 크기로는 7개 쯤 오른다. 그런데 자판기에서 떨어지는 캔커피 한통에 1.000원이다. 시중의 붕어빵 가격은 개당 300원을 넘는다.

농작물의 재배기간 투입된 노동력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가격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농업보다 더 중요한 산업은 없다.
아무리 높은 권력과 재력을 갖춘 사람, 고매한 학식을 갖춘 사람도 사흘만 굶기면 인간 이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아무리 힘이 장사라도 사흘을 굶으면 허수아비가 되고, 아무리 좋은 무기로 무장을 한들 또 사흘을 굶으면 전투는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나는 식량을 자급하는 농업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정말 농업을 천시하면 국가의 존립도 위태롭게 될 것을 걱정한다.

국제적인 농산물 가격의 폭등, 국내 농촌의 붕괴로 인한 식량자급은 물론 전반적인 농산물 생산의 자립기반이 흔들리고 있는데 정치하는 자들은 몰려오는 국제적인 농산물 가격으로 인한 재앙은 못보고 있다.

경제 논리에 밀린 농업정책에 전문가들인들 별 수 있으랴만 정말 생존이 걸린 절박한 농업 현실에 전문가도 아닌 촌노인이 나서지 않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연 조건을 살린 다품종 소량생산의 전통 농업만이 현실을 타개하는 대안이라고 하지 않는다. 농작물의 공급과 수용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도 필요할 것이다. 농민 소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유통구조도 손을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먼저 밀려오는 농산물 불안의 파고를 막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귀농하여 손해 보지 않는 농사를 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길이 현재 우리를 위협하는 국제적인 불안의 파고를 막는 중요한 길임을 강조한다.

앞으로 노령화된 농촌에서 노인들마저 이 세상을 떠버린다면 우리 농산물 시장을 지탱해온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는 완전히 붕괴되고 종자의 식민지화도 강화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농업만 남은 불안한 시대.

채소 가격이 오르건 말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요즘 우리는 텃밭 농사를 시작하기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안전성을 믿을 수 없는 채소에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 마늘밭 풍경. 아직도 마늘밭에는 눈이 덮여있어 지난해 눈이 오기전 찍어둔 사진을 올린다.ⓒ홍광석

그러면서 텃밭 농사를 설계한다.
2011년 숙지원 텃밭에 계획하는 농사는 주곡을 제외한 채소만이라도 전통농법에 의한 다품종 소량 생산할 작정이다.

옛 사람들이 하늘에 순종하면서 해왔던 농사방식대로 봄, 여름, 가을에 우리 지역에 맞는 씨앗을 찾아 심고 가꾸어야겠다. 전통 농법에 더하여 농약과 화학비료마저 사용하지 않는 농사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농법을 ‘자연 전통 농법’이라고 이름 붙일 작정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 가족이 자급하고 이웃과 나눌 수만 있다면 성공 아니겠는가!

농사는 흙에 숨은 그림을 인간의 손으로 드러내는 작업이요 보물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우수한 기술과 창의력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신농법도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또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식량이나 채소 가격 상승이 개인이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걱정을 하면서 소량일지라도 다양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자급 자영 농민 육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제발 안보불안, 물가 불안, 구제역 등으로 인한 사회불안에서 이제 그만 벗어났으면 좋겠다.

나라의 백성들의 목줄에 위기가 닥치고 있음에도 헛소리나 하는 대통령, 무식한 소리로 대통령의 눈치나 보는 여당의원들, 할 말도 못하고 정치에 춤을 추는 농업관련 공무원들은 정신 차리고 국제 정세를 살펴보기를 바란다.

편안한 마음으로 텃밭 농사나 하며 살고 싶다.
201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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