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동 28-2⁕번지의 기일
이철규 열사 34주기 추모에 붙여

오늘 하루만이라도
당신을 생각했으면 합니다 불로 지진 듯
그을음 얼룩진 웃통을 드러낸 채
왼 눈알 부릅뜬 당신을 떠올리면 청춘의
진군가가 비명처럼 들려옵니다
눈물겹고 맵싸하고 아리면서도 감상적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당신한테 가는 길에
붉은 행적의 묘비만 잔뜩 늘어난, 언젠가 한 번 당신과 함께 거닐었다가
나만 훌쩍 되돌아온 터여서,
스물여섯의 당신을 데려가선 영영 돌려보내지 않은 사연을
가슴에다 무덤같이 파묻어 두었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봄장마 지듯
온 삭신이 저절로 욱신욱신 저리며 당신을 생각하는 연유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복하듯 당신이란 기억을 애써 지우려 하면
외려 더 곱씹히듯 새겨지는 오늘은
더더욱 그렀습니다
잊은 줄 모르고 잊어가는 그런 당신이 결코 아니라는 걸
온몸이 일러주는데,
난들 어떡하겠습니까? 하여
이 하루가 이 세상 마지막까지 내 삶의
지중한 수표였으면 합니다
* 28-2는 고(故) 이철규열사 묘지번호. 열사는 1989년 조선대학 교지 '민주조선'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공안합수부의 수배를 받고 도피 생활을 하다가, 광주 북구 청옥동 무등산 제4수원지 기슭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 약력 / 조성국 시인
•전라도 광주 염주마을에서 태어났다. 1990년《창작과 비평》봄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슬그머니』『둥근 진동』『나만 멀쩡해서 미안해』『귀 기울여 들어 줘서 고맙다』등과 동시집『구멍 집』이 있고, 평전『돌아오지 않는 열사, 청년 이철규』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