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도 시

이두화 선생님을 추모하며

양희철(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고문)
 

월출산 노을
볼그레 물드리고
보네 보이네 당겨 안아라
동북의 용정 민주기지 뛰어놀던
평양의 골목과 거리
오순도순 내일의 희망을
주고받던 동무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빨치산. 곧 만나리라 했던,

아리땁던 그 시절 그 사람들
다들 어데로 갔나
지리산 회문산 백운산 산산산
조국의 통일과 영광스런 래일을 위해
미제와 그 앞잡이와 헛개비들과
싸웠다 쓰러져 산화했다 이름없이
고귀한 정신 나라 위해 던졌다
그렇게 가신 님을 조상했을 님!

교육자이신 아버지 가르침 받고
민주화된 가정 의견의 수렴
빨치산의 전통 생활에 평치시니
하나같이 떨쳐 일어남이여
동생 둘 다 조국수호 일선에
남동생은 15세 인민군으로
여동생은 해방지구 정치공작대로
식구 모두가 조국의 부름에 일떠섰다.

장하도다 이두화!
무엇을 바라리요. 오직 자주 앞세워
분단조국 통일만 된다면
이 한 목숨 무엇이 대수랴, 하셨던 님.

아버지의 혁명정신 이어받아
도당학교 역사교사로 일하셨을 때
근현대사는 매끄럽지 못했다고

외세의 침략과 간섭 급기야
일본제국주의 탐욕의 오점, 이어
미제의 군대 앞세우고 점령했나니
이 아니 서러우랴
이 아니 싸우지 않으랴

95세, 이두화 선생님 생을 놓으시니
고종명하셨다
호화롭진 안해도 영광된 삶이였노라.

함께 할 동지들이 있고
돌아갈 고향이 있고
조상할 이웃 친지들이 계시니
장차 보고할 이 없으리오.

의연히 물러앉아 무등은 말이 없어도
지나 온 어제 날
선악시비 다 가리어 알고 계시도다.

못내 아쉬움
2차 송환, 그렇게 어려웠는가
돌아가 나진여고 시절 동무들과
김일성 대학 역사학부 동창들 불러내고
지금의 애환 환한 추억으로
회포 풀고 싶었는데, 빨치산의 산

차거운 눈빨만이 아니라고
푸르름의 희망 엮어내는 무대였노라고
남도의 인심, 그 멋과 맛
비길 데 없이 좋은 곳 좋은 사람들이라고.
깨울 때까지 고이 잠드소서

2022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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