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톡톡] 술의 기쁨과 슬픔- 영화 ‘어나더 라운드’
[영화 톡톡] 술의 기쁨과 슬픔- 영화 ‘어나더 라운드’
  • 김유진 시민기자
  • 승인 2022.02.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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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선’. 그 앞에 선 우리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다. 따분하고 무시당하는 일상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존중받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술 몇 잔에 잠시 이러한 현실을 잊어보는 것이다. 영화는 그곳에서 시작한다. 니콜라이의 4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한잔하는 자리’에서 말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열정 없는 강의가 불안하다는 평을 들은 마르틴은 니콜라이의 생일 식사 자리임에도 씁쓸한 표정을 지울 수가 없다. 술 한 잔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마르틴을 보며 니콜라이는 흥미로운 가설 하나를 내세운다. 바로 인간에게 부족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평소보다 창의적이고 용감해진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인물과 관객에게 윤리적인 고민을 안겨준다. 아무리 열정적이고 지루하지 않은 강의를 위해서라지만 수업 중 술에 적당히 취한 선생들이 통용될 일은 만무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마르틴은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술을 마시고 음주측정기를 통해 0.05%의 알코올 농도를 측정한다.

선을 넘은 마르틴의 수업은 분명하게 바뀐다. 앉아서 교과서만 바라보던 마르틴은 일어나 몸짓을 활용하며 아이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역사 속 애주가들을 나열해 술의 작용이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님을 가르치기도 한다.

순식간에 정반대로 변해버린 선생님을 앞에 두고 학생들은 열광한다. 일과 삶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변한 마르틴을 본 친구들은 이 흥미로운 가설에서 성공적인 결론이 도출되길 바라며 그들만의 이론 연구를 시작한다.

영화 속 술은 인생의 선을 표현한다. 술에 취하게 되는 것이 그렇다. 네 명의 친구들이 술에 취하는 과정은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로 표현된다. 0.05%를 넘어 점점 농도가 짙어지고 이내 1.8%에 도달한다.

만취한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취기를 퍼트리며 실수를 저지른다. 마르틴은 이마에 상처가 난 채 거리에서 깨어난다. 겁에 질린 아들의 표정이 선을 넘었던 마르틴과 그로 인해 생길 가정의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들이 술에 취하면 취할수록, 선을 넘으면 넘을수록 현실의 고독은 더욱 선명해진다.

 

기쁨은 중독이 되어 슬픔으로 돌아온다. 술로 얻은 기쁨은 우리의 중추신경계가 알코올에 마비되기 직전까지만 존재한다. 자꾸만 현실을 잊어버리다 정말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네 명의 친구들은 심해지는 일상 속 갈등에 결국 가설실험을 종료한다. 연구는 끝이 났지만 톰뮈는 알코올중독에 이르게 된다.

마르틴은 직장을 잃게 된 톰뮈를 돌보지만 끝내 톰뮈는 술에 취해 죽음을 맞이한다. 톰뮈는 가설 이론 중 하나였던 술이 주는 용기로 인해 구명조끼 없이 배를 타며 그의 마지막 선을 넘는다. 우리는 순간마다 선을 마주하고, 그 선택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휘청거리게 된다.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은 전작 <더 헌트>(2012)에서 선에 대한 지론을 나타낸 바 있다. 유치원생인 클라라의 거짓말로 인해 친절한 선생님에서 소아성애자라는 누명을 얻게 된 루카스는 일 년 뒤 다시 클라라를 마주한다. 클라라의 발 앞엔 체크 모양의 타일이 펼쳐져 있다.

선에 강박증이 있는 클라라는 선 앞에서 주저한다. “이 선들을 어ᄄᅠᇂ게 피할까?” 루카스는 선들을 가로질러 클라라를 안아 타일 밖으로 걸어간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모든 신뢰를 잃게 했던 클라라를 도와주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함과 동시에 불가피한 선들의 연속을 표현한다.

이로써 선을 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의 생각이 <더 헌트>(2012)를 이어 <어나더 라운드>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나더 라운드>의 덴마크 원제는 <Druk>으로 음주를 뜻한다. 한 잔 더를 의미하는 ‘Another round’라는 표현은 청년과 중년을 중심으로 인생의 새로운 기점을 맞이한다는 뜻으로도 작용한다.

톰뮈의 장례식은 공교롭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의 파티와 겹쳐, 학생들의 선생님인 삼인방은 친구를 잃은 슬픈 마음에도 학업을 이룬 학생들을 축하한다. 흰옷을 입은 학생들과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선생님들은 대비되며 젊음과 죽음 사이의 절정을 강렬히 느낀다.

노래 <What A Life>가 흘러나오고, 마르틴은 술을 마시고 일어나 그의 젊음을 상징했던 재즈 발레를 추기 시작한다. 노래는 살아있음을 애찬하며 변화를 맞이할 마르틴의 인생을 암시한다. 학생들의 환호와 다시 시작되는 마르틴의 춤사위에 즐거운 친구들 사이에서 마르틴은 정적인 일상에 잊었던 자신을 열렬히 드러낸다.

우리는 헤밍웨이가 아니다. 그러니 작품에 해가 가지 않도록 정확히 8시까지만 술을 마시며 걸작을 남길 필요가 없다. 마르틴은 수업 중 학생들과 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말한다. 좀 취했다고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 주위엔 애주가들이 널렸으니.

감독은 <어나더 라운드> 촬영 하루 4일 전 자신의 딸 아이다를 사고로 잃었다. 죽음의 덧없음에 대하여, 그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살아갈 날들에 대한 감독의 견해가 영화 속 켜켜이 녹아있다. 관객은 네 명의 친구들의 알코올 연대기를 보며 역시나 도를 지나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목격하기도 한다. 술의 기쁨, 좀 더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조력자. 우리는 이 수많은 선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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