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오만에 관대한 국민이 있던가
[이기명 칼럼] 오만에 관대한 국민이 있던가
  •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 승인 2022.01.12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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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해서 잃는 것 봤더냐.

사람마다 잊히지 않는 기억은 있다. 1·4 후퇴 수복 후 한강 다리는 도강증 없으면 건너지 못했다. 특별대우를 받는 예외는 있다. 물론 그들의 신분을 확인한 것은 아니나, 주머니에서 패스포드를 꺼내 슬쩍 보여주면 헌병의 경례까지 받으며 무사통과다. 궁금해 물어봤다. 기자라는 것이다. 참으로 부러웠다. 목에 힘준 모습은 바로 오만과 건방이다.

그들은 대단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이다. 오죽하면 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겠는가.

언론인 친구도 많고 인척도 있다. 나도 오랜 세월 방송국에서 먹고 살았고 지금도 정치 관련 글을 쓴다. 나를 언론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과연 언론에 권력을 있는 것인가. 있다고 사람들이 믿는다. 아마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는 펄쩍 뛸 테지만 말이다.

■권력과 오만

우리나라 시사만화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김성환 화백이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청와대(당시 경무대)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이 경례를 받는 만화다. 경무대를 모욕했다고 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다. 사실 효자동에 산다고만 해도 폼 잡는 것으로 오해를 받던 시대다.

KBS가 남산에 있던 시절, 통금은 12시였다. 술은 만취되고 돈은 없고 만만한 게 남산 KBS다. 사무실에서 자려는 것이다. 그때 중앙정보부도 남산에 있었다. 통금에 걸린다. 당당하게 남산에 있다고 한다.

거짓말 아니다. 그러나 경찰은 중앙정보부에 있다는 줄 알고 경례까지 부쳐준다. 사실 그 계산까지 다 한 것이다. 권력을 파는 오만이다.

언론계 신화 같은 일화가 있다. 올챙이 기자들은 수습기자 시절 경찰서 취재를 갈 때 문을 발로 차서 연다고 했다. 선배가 그렇게 가르친단다. 경찰한테 기죽지 말하는 교육이다.

그때 기자들은 존경받았다. 많이 써먹은 일화지만 동내에 말썽이 생기면 기자를 찾아온다.

경찰이나 법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자를 찾는 것이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자초지종 설명을 하면 기자는 판결한다.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기자가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자신들이 잘 알 것이다.

오만이란 무엇인가

흔히 건방 떤다고 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꼭 사귀어 보지 않아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됨됨이를 알게 된다. 그중에 제일 기분이 나쁜 게 건방 떠는 것이다.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 물론 겸손한 친구도 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인심을 잃고 얻는 것이 바로 겸손이란 이름의 처신이다.

노무현대통령의 후원회장 시절 언론인을 비롯한 정부 고위직 인사들을 많이 만났다. 턱도 없는 청탁을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대화를 하다 보면 점수가 매겨진다. 낙제점 받는 사람이 많다. 수십 년 전인 그때 알던 지금도 존경하는 인사들은 모두가 겸손한 분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누구에게나 겸손했다. 의원 시절 모임에서도 자신이 앞자리에 앉지 않았다. 폼 좀 잡았으면 원할 정도로 겸손했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꾸며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한 겸손은 가증스럽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정치권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권은 대통령선거로 정신이 없다.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양자대결이 치열하다. 그들 주위에는 이른바 실세라고 하는 참모들이 포진해 있다. 됨됨이도 대충은 안다. 개인적인 평가는 안 하겠지만 정말 당부하고 싶은 것은 겸손하라는 것이다.

남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다들 안다. 검찰출신으로 짜인 윤석열 후보의 측근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무관의 제왕

이름이 참 좋다. ‘무관의 제왕’이라고 한다. 왕관이야 쓰든 안 쓰든 제왕이라니 그게 어딘가. 자식처럼 아끼는 후배 언론인에게 물었다.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재미있다.

“욕먹고 얻어터지는 제왕이 어디 있습니까.”
매우 자조적이다. 이유를 물었다.
“당연하죠. 나도 욕을 하겠습니다.”

하긴 그렇다. 요즘 기자는 욕을 먹는다. 왜? 신뢰다.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조·중·동이라는 역사적 고유명사를 달고 다니는 언론사의 제왕이 얼마나 서글프겠는가. 자업자득이다. 군사정권을 반대하며 언론자유를 쟁취해 낸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다.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긴 얘기는 그만두자. 제왕의 금관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기자의 서글픔이 어떠하겠는가. 나도 경험이 있어서 너무나 잘 안다. 자신이 쓴 기사는 절대로 다시 읽지 않는다는 후배가 있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자포자기다. 오기다. 언론 같지도 않은 언론. 기자 같지도 않은 기자. 이들이 겸손에 무슨 신경을 쓰겠는가. 그냥 적당히 살면 된다. 기자의 자부심으로 가슴을 펴고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던 기자들을 보며 자꾸만 쪼그라드는 요즘의 기자들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은 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한다. 바로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군부독재 시절에 맘 놓고 말도 못하던 시절도 견디고 살아왔고 이제 촛불 들고 시위를 해서 대통령도 감옥에 보낸 자유를 맛보았다. 하루가 멀다고 광화문 광장에 휘날리는 플래카드.

역시 자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울지 않으면 젖 주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울면서 젖 달라고 할 필요는 없다. 알아서 주도록 해야 한다.그 방법이 바로 겸손이다.

대선 출마 후보자들이 열심이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출근 시간에 전철을 타고 몸을 학대한다. 추운 아침에 쉴 사이 없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한 표 줍쇼’다. 깡통만 들면 영락없이 거렁뱅이다.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빈다. 평소에도 그렇게만 해라.

공약은 과연 지켜질 것인가. 지나간 과거를 보면 안다. 후보들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참모들. 그들을 위해 지지운동을 하는 운동원들이 제일 먼저 가슴에 담을 것은 겸손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겸손한지 거울을 보라. 거울에 오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가.

얼마나 신뢰를 받는 처신을 했는가. 국민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거짓말하지 말라. 오만 떨지 마라. 국민이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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