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실제로 본 장면 같기도 하고, 꿈에서 거닐던 곳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곳에 ‘내가’ 있다. 송미경 작가의 화면 속 이야기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진작가로, 꾸준히 자신만의 스타일로 작업하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송미경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송미경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낯선 충격에 빠져든다. 어스름 새벽인지 해가 진 저녁인지 알 수 없는 때, 물가에서 신체의 일부를 담그고 있는 장면들을 담은 연작이다.

<호기심>(2018)에서는 나뭇가지가 비치는 물에 한쪽 발끝을 담그는 모습이 마치 죽음을 향해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 같기도 하고, 작품 제목처럼 호기심에 물에 발을 한번 담가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반신>(2019)에서는 무릎을 굽혀 다리를 담근 채 있거나, 또 <탐험Ⅰ>(2020)에서는 물에 몸이 잠긴 채 보이지 않고, 발바닥만 나와 있다. 발 주변의 일렁이는 물결들은 화면 안에서 역동성을 부여하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어떤 상황, 즉 실제 같아 보이지만 낯선 상황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수영하거나 목욕하는 것이 아닌데,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거나, 신체 일부를 클로즈업하는 것, 물결과 피부 주름의 극사실적 묘사는 이러한 ‘이질감’ 혹은 ‘괴리감’을 인식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화면을 담는 시선은 매우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한 발짝 떨어져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 이것을 바라보는 태도는 진지함과 재기발랄함의 그 어느 중간에 있는 듯하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고자한다.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 그 아래로 또 다른 나무와 연결되고 그 아래 또 자라나듯 연결된 나무를 담고 있는 <자신>(2018)은 불안한 현실에 대한 저항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위로라고 할 수 있다.

실재와 상상 사이에서

ⓒ송미경. 광주아트가이드
ⓒ송미경. 광주아트가이드

그의 작업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전 작업도 그러하고, 그가 시도하고 있는 또 다른 작품연작 또한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들의 충돌에서 시작한다.

어두운 공간에서 누군가 몸을 구부려 앉아있다. 시선은 바로 목의 단면에 집중된다. 머리는 종아리에 걸친 채로 있다. <편안함>(2020)은 무언가 불안할 때 머리를 최대한 숙여, 숨기고 싶은 충동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낸다. 피부는 실제같이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목의 단면은 마치 마네킹 같아 보일 만큼 현실 상황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괴리감은 실재와 상상 사이에서 충격주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충동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안정의 상태로 회귀하고자 한다. 그는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모호한 상태, 이러한 상반되는 것들이 만나는 지점을 통해 자아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곳에 있는 무엇’과, ‘무언가 있어야 하는 곳에 없는 무엇’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백을 만들어냄으로써 실재와 상상의 간극에서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다. 부정적 감정들은 자신의 작업 안에서 융화되고,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갈 원동력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는 그는 여전히 ‘그리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최근에는 극사실적 묘사보다는 화면에서 묘사를 덜어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성장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앞으로 그의 삶과 함께 펼쳐질 작업들을 기대해본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4호(2021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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