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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교육칼럼] 도둑을 위한 변명평화주의자, 개척자 등 6대 미덕 갖춘 군자
  • 김용국 <정광고> 교사
  • 승인 2017.06.2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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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누가 제 돈 갖고 갔어요.”

반 아이들로부터 이런 도난신고를 들을 때면 화도 나지만 그 이후 대책이 참 난처하다. 도난 금액은 대체로 이삼만 원에서 적게는 이천 원에 이른다.

반 아이는 내가 범인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눈빛이지만 난 번뜩이는 추리력과 직관력을 겸비하지 못했다. 나는 명탐정이 아니다. 게다가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현장에서 지문이나 족적을 감식할 수 있는 장비도 없다. 답답하다.

그렇다고 반 아이들을 피의자로 설정하여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신체나 가방을 뒤지는 것은 내 양심이 허락질 않는다. 답답하다. 그렇다고 소액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여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참 뭐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관으로 지난 14일 빛고을체육관에서 열린 '2017고등학생 통일골든벨 광주대회'에서 학교법인 정광학원(이사장 원일 스님) 정광고교(교장 임형칠)가 우승(3학년 김태환, 최우수상)과 함께 특별학교상을 수상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광고교 제공

이런 망설임 끝에 내가 선택하는 대안은 비겁하게도 돈을 분실한 아이를 혼내는 것이다.

“이놈아, 거봐라. 돈이나 귀중품은 자물쇠 채운 사물함에 넣든가, 샘한테 맡기라고 했지. 방비를 소홀히 하여 분실한 너도 책임이 크다. 안 그랴?”

“아, 예…….”

반 아이는 고개는 끄덕이면서도 완전히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다. 한 마디가 더 필요하다.

“임진왜란 책임은 침략한 왜구에게만 있냐? 아니면 조선에게도 있냐?”

“조선에게도요.”

“왜?”

“국토방위를 소홀히 해서요.”

“인자, 수긍허냐? 니 잘못을.”

그제야 반 아이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는 앞으로 자물쇠 마련하겠다며 돌아간다. 면피용 산파술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찜찜하다.

사실 이런 도난사고가 1학기 중반에 접어 들면서 부쩍 늘었다. 두 달 새에 거의 십여 건에 이른다. 작년 고1 담임 땐 돈 도난사고는 없었다.

‘똑같은 고1들인데 왜 이리 차이나지?’

나는 도난사고가 날 때마다 반 아이들의 자질을 탓으로 돌리며 반 아이들에게 바른 삶의 자세를 주문 외듯 주문하곤 했다. 그리고 범인이 발각되면 그 자는 바로 퇴학이라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난사고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처럼 계속 이어졌다. 도난 시간대를 분석해본 결과 대부분 아이들이 식당에 가고 없는 점심시간에 발생했다.

“선생님, 우리가 범인을 잡을게요.”

무능한 담임을 대신해서 반 아이 두 명이 나선 것이다.

“으뜨고 잡을라고야?”

눈을 둥그렇게 뜬 내 표정이 재밌다는 듯 실실 웃으며 녀석들이 말했는데, 대안은 간단했다. 오늘 교실에 핸드폰을 설치해 동영상 촬영을 하겠단다.

“이놈들아, 그거 인권 문제랑 연관 돼서 안 돼.”

내 반대에 녀석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샘, 저희들도 인권이 있죠?”

“당연허제.”

“그럼 맨날 도난당하는 우리들의 인권은 어떡해요?”

“엥?”

말이 그럴싸하다. 이번엔 우멍한 지력을 지닌 내가 녀석들의 산파술에 혹하여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다. 사실 나 또한 두 녀석 못지않게 오랫동안 반 아이들을 괴롭혀 온 그 도둑을 누구보다 잡고 싶었다. 아니 잡지는 못하더라도 누군지는 꼭 알고는 싶었다. 나는 그 충동을 억누르며 겨우 말했다.

“느그들 심정은 안다만 그래도 그건 안 돼이. 교실에 몰카 설치하는 건 불법이거든.”

그러자 녀석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럼 다른 방법은 되는 거죠?”

“다른 방법?”

“네, 저희만 믿으세요. 불법은 저지르지 않을 테니까요.”

녀석들은 나의 뜨악한 표정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이미 차선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 듯했다. 두 녀석은 위대한 서막을 여는 선구자들 같은 득의만면한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나는 녀석들이 꼭 범인을 잡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넌지시 말했다.

“만약 범인이 밝혀지면 먼저 나에게만 알리고, 주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그리고 범인에게도 절대 내색하지 말아라. 어쩌면 영원히 비밀로 간직해야 할지도 모른다.”

녀석들이 돌아가고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내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 원수 같은 범인이 밝혀지는 건가?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5분 전에 두 녀석이 조심스레 교사지도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선생님, 저희가 범인을…….”

나는 범인의 이름을 누가 들을까봐 입에 손가락을 수직으로 세우고 옆 상담실을 가리켰다.

상담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범인은?”

“범인은…… 그…… 그게…….”

나는 오랜 숙원이 이제 눈앞에서 풀리는 장면을 목도한다는 흥분에 심장이 요동쳤다.

“그게요. 잘 안 됐어요.”

녀석들은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몹시 애석한 표정이다.

“오늘은 도둑이 안 나타났어요. 하지만 그 도둑을 알 거는 같아요.”

“안다고?”

녀석들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범인은 바로 우리 반…….”

나는 녀석들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별안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만! 듣고 잡지 않다. 물증도 없이 함부로 의심허는 거 아니다이.”

녀석들은 내 고함에 가까운 소리에 놀랐는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녀석들에게 나는 녀석들이 올 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그나저나 으뜨고 범인을 잡을라고 했냐?”

녀석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그 중 한 녀석이 입을 떼었다.

“청소도구함 밀걸레를 다 빼내고 그 안에 대신 들어가 숨었어요. 냄새 때문에 죽는 줄 알았어요.”

녀석은 조금 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범인을 잡기 위한 녀석들의 노력이 가상했다.

“고생했다. 아이스크림이나 사 먹어라.”

뒷주머니에서 푼돈을 꺼내 녀석들에게 쥐어준 채 돌려보냈다.

녀석들이 돌아간 뒤 그들이 지목한 범인이 궁금했다. 사실 나도 의심 가는 녀석이 있었다. 하지만 심증일 뿐 물증은 없었다. 그런 상태로 마주치는 녀석을 대하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참 해맑기도 한 녀석인데, 내가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나 하는 자괴감만 일었다.

무죄추정의 원칙도 있다는데 과연 교사가 반 아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게 과연 옳은가. 강한 회의감이 일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는 녀석을 웃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불편해서 못살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거의 일주일이나 이어졌다.

내 불편함의 근원을 곰곰이 따져보니 결국 ‘도둑’이란 낱말의 부정적 어감 때문이었다. 즐겁게 아이들을 대하고 싶었다. 특히 그 녀석을.

나는 내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도둑’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의 심적 불편을 도둑이란 단어의 어감에 귀인한 일종의 회피 전략이었다.

나는 도둑의 미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연구 결과 나는 도둑에 대한 여섯 가지 역설적 미덕을 발견하고 말았다. 즉 억지로 찾아낸 도둑의 6대 미덕이다.

우선, 도둑은 평화주의자다. 절대 주인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는다. 주인이 없는 틈만 살짝 이용할 뿐이다.

둘째, 예의와 염치를 아는 행동하는 개척자다. 과거의 도둑은 주로 밤에 활동하며 힘든 하루 일에 지쳐 잠든 주인의 잠을 결코 방해하지 않았다. 지금은 케네디 뉴트프론티어 정신을 이어받아 부족한 밤잠에도 낮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여 맹활약을 펼친다.

셋째는 기다림의 긍정적 낙관주의자다. 주인이 없는 틈을 애써 힘들게 기다린다. 기다리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긍정적 인식으로 자신의 것 이외의 세상 물건을 바라본다.

넷째는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는 군자다. 많은 부를 소유한 자가 어쩌나 나눠주며 겸손 같은 과공비례의 위선을 떨 기회를 없애준다. 그렇기에 양상군자란 말도 있는 것일 게다.

다섯째는 경제 활성화의 견인차다. 도둑맞은 주인과 이를 본 주변 사람들에게 잠금장치를 구입하게 함으로써 국내의 철강 산업을 활성화하고, 열쇠 제조업자와 철물점의 매출을 증대시켜 돈맥경화(?)에 빠진 경제에 피가 돌게 한다.

여섯째는 인간승리의 완성자다. 자고로 도둑도 죽을 땐 자식에게 바르게 살라는 유언을 남긴다 했다. 이처럼 도둑은 이 땅에서 소멸하기 전 자신의 부덕을 반성하며 자식교육까지 한다. 인간의 본성은 고치기 어렵다는데 생의 마지막에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니 위대한 인간승리가 아닌가.

도둑을 위한 변명을 발견함으로써 이제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은 나의 도둑에 대한 긍정적 단상을 반 아이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수업시간에 가르쳐준 역설과 반어의 톡 쏘는 맛을 톡톡히 깨닫게 해줘야겠다. 6대 미덕을 갖춘 그 고얀 도둑을 위해서도.

김용국 <정광고> 교사  yonggu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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