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임동에 일신방직 공장이 있다.

일신방직은 기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1935년에 종연방적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여 가네가부치 방적공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가네보 공장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일본은 방직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아 눈을 조선으로 돌렸다. 일본은 1944년 8월에 여자정신근로령을 발표하여 본격적으로 수탈을 감행하였다.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기까지 전국적으로 방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51,815명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전남에서 소집하는 인원은 3,000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제동원에 끌려간 소녀들의 평균나이는 13.2세 이었다고 한다. 강제동원에 끌려간 소녀들의 하루일과는 오전 4시30분에 기상하고 오전 4시30분에서 오전 6시까지 청소와 아침식사 오전 6시에 작업시각 정오 12시에 점심시각 오후 6시에 작업마침 오후 6시에 저녁식사 오후 9시에 목욕과 휴식 그리고 청소 오후 10시에 취침으로 이어진 하루일과표이다.

당시 소녀들은 구타와 구타로 인한 실명, 산재가 속출하였고 해방전에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어야 공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일본은 확실한 노동력 확보와 이탈방지를 위해서 최소한 3년간 고용계약서를 작성하여 일을 시켰고 외출이 허용되지 않은 감옥 같은 현실을 겪었다.

참고로 1953년 이스라엘 정부에서 강제노동 집단학살에 대한 조사를 하는 정부기구를 통해 지금까지 작업을 하여 1990년대부터 독일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피해국은 진상규명 기관을 만들고 가해국은 재단을 만들었다.

1937년 중국 난징학살과 관련하여 중국정부가 건국하자마자 난징학살 기념관을 건립하고 지금까지 피해 신고를 받고 있다.

결론으로 지금 한국은 광복 70주년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과제가 하나 놓여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활동으로 인해서 일제강점기의 미쓰비시의 잔혹한 행위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법적으로 대응을 하기까지 이르렀는데 이와 같은 맥락으로 가네보 공장에 강제동원이 되어 수탈을 당했던 진상규명과 법적대응이 필요한데 이것은 역사학자와 법조인 몫으로 남겨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소녀들이 가네보 공장에 대한 애가를 만들어 불렀는데 이 애가를 소개하면서 글을 맺는다.

떠나자 떠나자 어서 떠나자
악마같은 이 공장에서 어서 떠나자
천냥짜리 이 내 몸은 내 고향을 못간데
칠전짜리 딱지는 내 고향을 가네

이 세상은 금전으로 난 세상이요
부모형제 이별하고 타향에 나와
동지섯달 긴긴밤에 밤잠 못자고
이삼사월 긴긴해에 배꼴 못보고
오뉴월 더운 날에 바람 못쐬고
집에 계신 부모님이 오신다해도
내 맘대로 쓰지 못하는 금전이로세
문방놈아 잡지마라 갈길 바쁘다
기차소리 한 번 나믄 그만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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