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17일, 전현직 언론인 ․ 시민단체 회원 90여명 광주 참배

쓸쓸했던 묘지들엔 높은 첨탑이 세워지고, 저 잔학하고 비열한 권력에 의해 내팽겨쳐졌던 많은 원혼들은 ‘국립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제 저 영령들은 안식을 취하고 있을까.

35년을 맞는 5.18 광주의 망월동 민주공원 묘역. 지난 16일 이곳에는 흐느끼는 울음이 들렸고, 15살 꽃다운 나이에 죽은 자식의 무덤 앞의 묘비석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있었다. 80년 광주는 지금도 그 울음 속에, 비탄 속에 여전히 현재였다.

▲ 김중배 전 한겨레신문 사장이 자유언론실천재단(이사장 김종철) 회원들과 함께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2015년 광주 망월동 묘역엔 어느 해보다 많은 참배객들이 오는 듯했다. 35년이라는 시간의 한 매듭 때문일까.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간 듯한 지금의 상황이 더욱 거세게 불러일으키는 추모와 함께 다짐의 마음들에서였을까.

특히 어린 대학생들이 많이 광주를 찾았다. ‘해방이화 광주역사기행 참가단’ ‘민족경북대’의 ‘다시 광주로!’라는 티셔츠의 구호가 망월동 묘역에 넘실댔다.

무엇이 이들을 다시 광주로 부르고 있는가. 무엇이 80년 5월 광주를 현재로,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의 사건으로 불러내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해 한 대답을, 다른 누구보다 많은 대답을 해야 할 이들, 언론인들도 이날 이 묘역을 찾았다. 70여명의 언론인들, 80대의 노병에서부터 20대의 젊은 기자들까지, 그리고 독자로서 언론을 감시하는 소비자로서 역시 언론인이라고 할 이들까지 함께 한 참배에서 언론인들은 과연 80년 광주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절실히 묻고 또 물었다.

요한 호이징어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깊어질수록 당대(當代)는 더 멀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어떤 이에게는 불과 10년 전의 일도 과거지만 어떤 이에게는 100년, 200년 전의 일도 현대이며 당대가 된다.

▲ 35주년 5.18광주민중항쟁 전야제를 찾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인

▲ 17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35주년 5.18광주민중항쟁 전야제. ⓒ광주인

지금 언론에게 5.18은 이중의 의미에서 현재다. 35년 전 분노한 광주시민들에 의해 MBC 방송국이 불에 탔다. 불에 탄 건 MBC였지만 광주시민들이 불을 지르고 싶었던 것이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그때 모든 언론은 광주를 모독하고 고립시켰다.

그러나 결국 고립됐던 것은 광주 시민들이 아니었다. 언론 자신이었다. 자신을 광주로부터, 진실로부터 역사로부터 고립시켰고, 그럼으로써 ‘언론’에서 스스로를 낙오시켰다.

80년 광주는 지금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아니 지난 35년간 단 한 순간도 그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언론에 쏟아지고 있는 많은 비판과 야유는 35년 전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다른 게 있다면 과거 언론은 공정 여부를 의심받았다면 지금의 언론은 언론이냐 아니냐를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다.

35년 전엔 자유가 언론을 억압했다면, 이제는 언론이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언론을 걱정하고 있다.

80년 5월, 권력으로부터 패배한 언론은 이제 권력이 아닌 우리 자신에게 패배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어느 권력, 어느 폭력으로부터의 패배보다 더욱 처참한 패배다. 이 패배를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이겨내야 할까.

16일 저녁 언론 문화제에서 누군가 말했다. “5.18 광주에서 ‘광주’를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는 광주만이 아니며 대한민국이라고. 그의 말은 ‘광주를 현재화하는 것’에 대한 한 해답을 준 셈이다.

▲ 전.현직 언론인들이 5.18기념재단과 자유언론실천재단 주최로 지난 16일 '5.18진실왜곡과 언론의 역할'을 주제로 광주에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그렇잖은가. 우리는 80년 5.18 광주를 기억하면서 또한 넘어서야 한다. 80년을, 35년 전 ‘광주’를 기억하면서도 또한 넘어섬으로써 우리는 진정으로 광주를 제대로 기억하고 진정으로 기념하며, 진정으로 계승하며, 그리하여 진정으로 광주를 현재화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80년 광주 기념탑’을 세워야 한다. 토목의 기념비보다 더 큰 우리의 5월, 우리의 주홍글씨를 우리의 가슴 속에, 이마에 담고 새겨야 한다.

80년과 2015년이 만나야 한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야 한다. 70대의 전직 언론인과 20대의 현직 언론인이 만나야, 좌절과 각오가 만나야, 회오와 성찰이 만나야, 눈물과 환호가 만나야, 그리고 지하와 지상이 만나야 한다. 2015년 현재는 그렇게 과거를 만나고 질문을 던져 과거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런 끊임 없는 문답 속에 진보가 가야 할 한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 절실한 만남과 문답에는 518 묘역에 묻혀 있는 선배 언론인들, 송건호 선생도, 리영희 선생도, 김태홍 선생도 함께할 것이다.

비단 우리의 가까운 선배들뿐이겠는가. 광주를 찾은 언론인들이 하룻밤을 묵었던 월봉 서원의 기대승(奇大升) 선생의 말, "언로(言路)가 막히면 망하며, 트이면 흥한다“고 한 것에 우리 언론의 길에 대한 길잡이가 또한 있을 것이다.

▲ 자유언론실천재단 회원들과 해직 언론인들이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영령들에게 절을 하고 있다.

▲ 한 언론인이 국립5.18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는 송건호 전 한겨레신문 사장의 묘비 앞에서 추모하고 있다.

▲ 리영희 전 선생의 묘비를 찾은 자유언론실천재단 회원들.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언론인 참배단은 광주에서의 이튿날 화순의 운주사(雲住寺)를 찾았다.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는 신비의 절. 이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기괴해 보이기조차 하는 이 탑과 불상들은 도대체 누가 세웠던 것일까.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그 기원이 얼마나 중요하랴.

다만 그 불상과 탑을 세웠던 민초들의 마음, 이 절의 뒷산에 누워 있는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뀌리라는 마음으로 불상을 깎고 세웠던 민초들의 비원을 우리 가슴에 담는다면, 그 불상과 탑이 제기하는 미완의 과제들을 우리 가슴에 되새기는 것에 ‘5.18 광주의 현재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광주시민이 되자. 우리는 언제든 어디서건 80년 5월 광주에 있자. 이를 우리 자신을 각성시키고 선동하는 강력한 주술로 삼자. 그럴 때 우리는 ‘80년 광주’를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언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언론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 5.18진실왜곡과 언론의 역할 토론회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참가자들.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 17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35주년 5.18광주민중항쟁 전야제.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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