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천정배 사실상 지지…판세 요동

4·29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가운데 옛 통합진보당 측 조남일 무소속 후보가 전격 사퇴하면서 각 후보 진영이 선거 판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남일 무소속 후보는 23일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후보직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박근혜 정권 심판과 일당 독점 타파를 염원하는 광주 민심, 시민사회의 요구를 대승적으로 수용해 후보직을 사퇴한다”는 게 이유다.

기자회견에서 특정후보를 지지한다는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무소속 천정배 후보를 지지하기로 내부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광주 서을 각 후보 진영은 조 후보의 사퇴가 선거 판세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 후보의 후보직 사퇴로 광주 서을 보선은 새누리당 정승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후보, 정의당 강은미 후보, 무소속 천정배 후보의 4파전으로 압축됐다.

▲ 왼쪽부터 정승 새누리당,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강은미 정의당, 천정배 무소속 후보. ⓒ광주인


옛통합진보당 출신 무소속 조남일 후보가 23일 광주 동구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 후보 사퇴를 선언하고 있다. ⓒ광주인

조 후보 사퇴 표심 향방은?조남일 후보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위원장과 민주노동 광주전남본부 초대본부장을 거치는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지역 노동계의 고정적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조 후보의 지지율이 5%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박빙의 승부가 점쳐지는 이번 보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또 옛 통합진보당은 다른 여타 정당에 비해 지지세력의 충성도와 조직력이 강한데다 특히 광주 서구을은 진보적인 유권자 성향이 강해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조 후보가 시민사회진영의 뜻을 수용하고 사실상 천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만큼 일단 무소속 천 후보에게 유리한 표심이 작용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동자 정당’ ‘진보정당’을 표방해온 정의당 강은미 후보 측도 일부 유권자들의 표심이 넘어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 등 노조원들이 많은 서구의 특성상 옛 통합진보당이 아니라면 대안으로 정의당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의당과 옛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의 양 축이었으나 그동안 불편한 관계가 많았다. 특히 강은미 후보와 조남일 후보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고소전’까지 벌일 정도로 앙금이 남아있어 표심의 이동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표와 전·현직 당 지도부가 총 출동해 연일 ‘판세 뒤집기’를 노렸던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는 선거 막판 최대 악재로 작용하게 됐다.

1·2위를 다투는 천정배 후보와 조영택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데다 조남일 후보의 사퇴로 천 후보가 유리해지면서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박근혜 정권 심판과 정권교체를 위한 유일한 야당’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전국적인 판세에서 밀릴 경우 ‘문재인호에 힘을 실어주자’는 전략적 투표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위안이다.

박봉주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이 23일 광주 시민사회진영 대표와 원로들, 조남일 무소속 후보 등이 참가한 가운데 광주 동구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광주인

‘분주한’ 각 후보 진영…대응도 천차만별

광주 서을 각 후보 진영은 조 후보 사퇴로 선거판이 요동치자 잇달아 논평과 기자회견을 열어 조남일·천정배 후보를 싸잡아 공격하거나 물량공세를 펴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이날 오전 11시 조남일 후보 사퇴 이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곧바로 논평을 냈고 오후 1시30분 강은미 후보 2시 조영택 후보, 주승용 최고위원, 이용섭 전의원 기자회견 등이 잇달았다.

새누리당 광주시당은 논평에서 “조 후보의 사퇴는 사전투표를 하루 남긴데다 선거공보물까지 발송한 이후에 후보직 사퇴여서 광주시민을 우습게 여기는 잘못된 행태”라고 조 후보를 비판했다.

광주시당은 “헌재의 위헌결정에 따른 옛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의 자격상실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조 후보의 후보직 사퇴는 더 더욱 부적절하다”며 “만일 어떠한 행태로든지 야권단일화가 다시 한 번 재현된다면 광주 유권자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으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승 후보 캠프에서는 “조남일 후보가 사퇴하며 천정배 후보 지지를 사실상 드러낸 것은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다시 수혜자가 되는 기막힌 일”이라며 천 후보를 공격했다.

정 후보 측 공진열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선거는 천 후보가 법무부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이석기전의원 등을 상대로 단행한 특별 사면·복권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며 “이번 선거의 원인제공자인 천 후보가 조 후보 사퇴의 수혜자가 되는 것은 한국정치사의 큰 흠집”이라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은 조남일 후보의 사퇴에 대해 “크게 괘념치 않는다”며 “조 후보의 광주발전과 정권교체를 위한 비전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 지지층을 넓혀가겠다”는 짧은 논평을 내놓았다.

▲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23일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모바일 SNS 상에서 거론된 문재인 대표 비하 발언 캡쳐 사진 내용을 읽고 있다. ⓒ광주인

하지만 곧바로 주승용 최고위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서구을 보궐선거 천정배 후보 측 지지자들이 SNS 상에서 야당 대표에 대한 도 넘은 인신공격과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천 후보 측을 비판했다.

주 최고위원은 최근 모바일 SNS 단체 채팅방 캡쳐 사진을 보여주며 문 대표에 대한 비방글이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에는 ‘호남 학살 주도는 문재인이 했다’ ‘문재인은 청와대 근무(비서실장) 당시 생계가 막막한 청소부까지 전수 조사해 호남사람을 해고, 청와대 문밖으로 내쫓았다’는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일부는 프로필 사진이 숫자 ‘4’로 돼 있어 주 최고위원은 기호 4번 천 후보 측 지지자일 것으로 추정했다.

주 최고위원은 “천정배 후보는 지금이라도 진상을 확인하고 패륜적 행위들을 즉시 중지시켜야 한다”며 “만일 이러한 사태가 지속된다면 당 차원에서 법적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용섭 전 국회의원(가운데)이 23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광주인

또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광주시장 후보 전략공천에 반발해 탈당했던 이용섭 전 의원도 주 최고위원, 조영택 후보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조 후보에 대한 깜짝 지지선언을 했다.

이 전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선택해주셔야 문재인 지도부가 우리가 바라는 제1야당으로 개혁할 수 있다”며 “시민들께서 정권교체와 호남발전을 위해 또 한번의 위대한 선택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정의당은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비새정치연합 유일후보, 진보 대표후보로서 진보정치를 책임지겠다”며 진보진영의 지지를 호소했다.

천호선 대표는 “노동자정치를 내세운 조 후보를 지지했던 분들은 아마도 비새정치연합 연대가 중요했다기보다 누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호응을 했던 것이라고 본다”며 “그렇다면 지금 원내유일 진보정당, 진보대표후보인 강은미 후보에 대한 지지로 옮겨가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전망하고 또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무소속 천정배 후보 측은 조 후보의 사퇴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 강은미 정의당 후보가 23일 천호선 당대표와 함께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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