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기 칼럼] 수구언론과 장악된 방송이 지배하는 위험사회

보도되지 않은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언론의 창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5년 넘게 끌어온 쌍용차 집단해고 사태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무자비한 판결로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었어도 70m 상공의 쌍용차 굴뚝 위에 올라 살을 에는 한파에 해고무효를 외치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26명의 쌍용차 해고자들이 가슴에 맺힌 울분을 어쩌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화병으로 쓰러져 갔다. 그러나 수구언론의 독자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비정한 노동의 현실을 알지 못한다.

씨앤앰 협력업체 해고 노동자들이 마침내 노사합의를 이끌어냈다. 투쟁 과정에서 눈물겨운 50일 동안의 전광판 고공농성이 있었고, 비정규직 투쟁에 정규직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연대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MBC 시청자들은 이 눈부신 노동현장의 투쟁사를 전혀 알 지 못한다. 종편인 JTBC가 이 사건을 9차례 보도하는 동안 MBC는 단 한 번도 보도하지 않고 철저하게 침묵했다.

▲ 지상파 방송3사와 JTBC의 씨앤앰 사태 보도량 비교. ⓒ미디어오늘 갈무리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20일 정윤회와 박지만과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 사건은 수구언론의 지면과 화면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20일자 1면 머리기사에 “헌법이 대한민국을 지켰다”고 대서특필했다.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제목은 “권력의 주구인 헌재가 위기에 빠진 비리정권을 구출했다”가 되어야 할 터이다.

수구언론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진실을 180도 뒤집어엎기도 한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다반사로 있었던 간첩조작 사건들은 부도덕한 공안정권과 수구언론의 합작품이었다. 수구언론은 공안정권이 양산해 발표한 간첩들을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했고 그 대상에서 무고한 시민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안정권과 언론의 이러한 협동작전은 2013년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21세기에도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언론은 진실을 뻔히 알면서도 광주시민들을 폭도와 빨갱이로 몰았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 정국 때도 수구언론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장하는 유가족들을 종북으로 매도했다. 뿐만 아니라 의사상자나 대학 특례입학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던 유가족들을 보상에 혈안이 된 탐욕스런 사람으로 뒤집어 씌웠다.

언론은 세상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규정하고 자신들이 설정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조선일보는 1월2일자 <저주의 밤이 된 ‘제야의 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해 12월 31일 ‘제야의 밤’에 대해 “저주와 막말, 욕설과 행패로 얼룩진 살풍경한 밤으로 변했다”고 일갈했다. 동아일보도 “막말이 쏟아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고 비판했다.

▲ 조선일보 2015년 1월2일자 12면. ⓒ미디어오늘 갈무리

그러나 집회현장에서 나타난 몇 가지 분노의 표출들만을 내세워 평화적인 집회 현장을 ‘저주의 밤’과 ‘살풍경’ 따위의 선정적 분위기로 전달하는 수구언론의 태도야말로 폭력적 선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전반적으로 평화스런 시위를 이처럼 극단적 언어로 매도하는 수구언론의 자세는 그들이 2015년 을미년을 어떤 세상으로 이끌어갈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그것은 아마도 40여 년 전에 있었던 ‘구체제’로의 복귀를 갈망하는 듯하다. 지난해 12월 19일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후 종북 척결을 주도하고 있는 수구언론의 종북 드라이브는 가히 狂風에 비유될 만하다.

이런 가운데 방송사 사장들은 새해를 맞아 저마다 새해의 포부와 자사의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신뢰 회복과 조직문화의 쇄신, 구성원들의 단결 등을 강조했는가 하면, 유료방송 중심의 정부 정책을 지적하기도 했고, 뉴미디어와 미디어환경에 대한 적극적 대응, 콘텐츠의 중요성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환경의 어려움에 대한 이들의 하소연이 자가당착으로 보이고 신년사의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 인상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그들의 신년사에서 방송의 신뢰도 추락이나 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해 걱정하거나 반성하는 취지의 발언이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방송의 공정성, 공공성, 진실추구에 대한 언급 없이 오로지 자사의 생존전략만을 나열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실망했으며, 이들에게 국가의 공공자산인 전파를 맡겨도 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방송사 사장들의 이러한 가치 판단은 막말과 선정보도로 사회를 분열로 몰고 가는 종편을 극복하기 위한 해답이 아니라는 점에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수구언론의 힘은 한국사회의 수구화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하게 기득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수구언론이 만들어낸 전투적 의제들과 사실들에 대한 왜곡과 날조와 침묵은 한국사회를 점차 위험사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가 지난 1일 공개한 행복도 조사 결과에서 “우리 사회 행복하다”는 국민은 10명 중 1명뿐이었다. 박 정권 2년 동안 우리 국민들이 더 행복해졌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10명 중 1명에 그쳤다. 이름에 걸맞게 새 세상을 구현하지 못하는 새누리당과, 새 정치는커녕 존재감도 없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공생하고 있는 정치현실은 국민을 절망케 한다.

그래서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지배자의 배려나 자비에 호소해 구걸하거나 지배자에 의해 부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시민들에 의해 장악되어야 한다”는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의 경구가 가슴에 와 닿는다.

** 윗 칼럼은 <미디어오늘>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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