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5년 신년사를 발표하였다.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최고위급회담’ 가능성에 대한 시사이다. 역사적으로 신년 공공사설이나 신년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존 시 북한은 신년사나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남북 관계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짚고 넘어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1994년 남북 정상회담이 시도되었고,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에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금년에는 북한 신년사에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한층 높아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금년 신년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그렇게 쉽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여러 가지의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남한이 미국과 ‘핵전쟁 연습’을 진행하는 한 ‘신의있는 대화’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곧 남한이 3월부터 재개되는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을 중지해야 한다는 요구이다.

▲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1일 정부종합청사에서 가까운 시일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간 대화를 개최하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통일뉴스 갈무리

둘째, 남한이 ‘체제대결’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신년사는 자기의 사상을 상대방에 강요해서는 전쟁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즉 남한이 ‘자유민주주의식 흡수통일’을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이다. 셋째, 남한이 북한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도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이다. 이것은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 중지를 의미한다.

넷째, 남한이 “북한 체제를 모독하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동족을 모해하는 불순한 청탁놀음”을 중지하라는 요구이다.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이나 러시아, UN 등에서 북한이 핵무기 및 ‘병진로선’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넣어달라는 요구를 중지하라는 의미이다.

다섯째, 남한이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않은 문제”로 시비를 걸지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2013년 초 대화의 ‘격’문제로 대화가 중단된 것을 의미한다. 여섯째, 남한이 대화의 ‘진정성’을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신년사는 “우리는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필자 강조)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입장이라면...”이라고 표현하여 남한이 회담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하고 각종 하위급 회담이 잘되어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된다면” ‘최고위급회담(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북한은 남한이 남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우리로서는 당장 키 리졸브 훈련을 중지할 수도 없고 북한 비핵화 문제를 거론 안할 수도 없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식 통일을 포기할 수도 없고 민간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를 공개적으로 막기도 어렵다.

결국 2015년 각종 남북대화와 정상회담 진전 문제는 우리의 ‘통 큰’ 양보 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왜냐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주변관계구도가 어떻게 바뀌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와 병진로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것”이라고 말하여 우리가 요구하는 핵무기 개발 및 ‘병진로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장하는 한계선(red line)을 후퇴시키지 않는 한 ‘진정성’있는 남북대화는 어렵게 되어 있다.

물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2015년을 ‘조국해방과 당창건 70돐’로 규정하고 ‘혁명적 대경사’로 빛내고 ‘10월의 대축전장’으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혹시 ‘7차 당대회’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을 지 모른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주장대로 인민의 식량 문제는 물론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19개의 경제개발구가 잘 개발되어야 한다. 당연히 외국 자본 특히 남한 자본이 들어와야 성공이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내세운 ‘전제조건들’은 ‘체면 상’ 그냥 ‘해본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엇이 진정일까?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 해 12월 29일 북한에게 금년 1월 중에 남북 상호 관심사에 대한 대화를 공식 제의했다. 정부의 통일준비위원회 정부 부위원장이기도 한 류 장관은 이날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과 함께 2015년 1월 중 남북이 서울이나 평양, 또는 기타 상호 협의한 장소에서의 회담을 제의하고 금년 구정 전에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길 원했다.

그리고 회담이 이루어질 경우 ‘5·24 조치,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간 관심 사안은 무엇이든 논의가능하다고 말했다. 류 장관은 지난 해 12월 30일 북한이 틀과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러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2013년처럼 남한이 ‘격’을 문제 삼지는 않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 29일 핵심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해서 통일준비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새해에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고 2015년 신년사를 통해서도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을 강조했다.

▲ 지난해 10월4일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남한을 방문한 북한 대표단이 정부 대표단과 오찬회담을 하고 있다.ⓒ통일뉴스 갈무리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보았을 때 ‘해방 및 분단 70주년’인 2015년에 통일과 관련하여 무엇인가 유의미한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강력한 희망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제2차 고위급 회담을 통한 이산가족 상봉 성사는 가장 중요한 의제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대화가 잘 된다면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도 고려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이다. 그 동안 우리 정부의 태도와 비교했을 때 ‘통 큰’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남북한 간 ‘제2의 6.15 시대’가 도래하는 것으로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현재 분위기로는 2014년처럼 2015년 1월 중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중심으로 제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이 개최되고 2월 구정 때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도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도 대화와 협상을 실질적으로 진척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여 일단 제2차 고위급회담에 응할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3월부터 개최될 키 리졸브 한미합동 군사연습이다. 이 즈음에 대북 삐라 살포도 재개될 수 있다. 이들 문제를 두고 남북 간에는 첨예한 대립이 벌어질 것이다.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제시한 전제조건들이 ‘그냥 해 본’ 것인지 아닌지가 판명되는 시점이 될 것이다.

다행히 북한이 ‘해 본 소리’로 그치고 남북 간의 모든 문제가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북한의 태도로 보아 합동군사 훈련 중지라는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거나 다른 조건들이 맞지 않을 때 북한은 언제든 대화를 중지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2014년의 재판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막상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의제화되었을 때 남북한이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가 될 지도 미지수이다. 이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남한 보수세력의 입장과도 맞물려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접촉을 통한 변화’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박 대통령이 통일 모델로 제시한 독일통일이 바로 이러한 전략에 의해 달성되었다.

‘접촉’을 확대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전략’이 정해지면 ‘전술’은 다양해야 한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가 안개처럼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 윗 칼럼은 <통일뉴스>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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