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청 옆에는 몇 해 전 생긴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다. 중소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문화생활인 영화 보기를 위해 그 멀티플렉스를 문턱이 닳도록 지나다녔더랬다.

두어 시간의 꿈결 같은 시간이 지나, 약간 몽환적인 분위기로 극장 문을 나서면, 찬바람이 휙 날아들어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시간이라고 일러준다. 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청 앞마당을 지날 때면 어느새 영화의 여운은가시고 가책인지 모를, 동질의식인지 모를 오묘한 느낌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 ⓒ오윤화  
 
어느 시점부터인가 시청 앞마당에는 공무원 노조의 천막이, FTA반대를 외치는 플래카드가 나부껴 어지러운 귀 속으로 파고들고는 한다. 멀티플렉스에서 영화 한 편을 해치우고, 한 잔에 몇 천 원 씩 하는 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사마시고, 시청을 지날 때면기분에 휩싸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영화관을 들락거리는 거의 날마다. 이 무거워지는 마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때문이었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내게 시청 앞의 상황들은 낯선 풍경이 아니라 동조를 하고, 지지를 보내는 동질의식의 총체였던 거다.

그러니 멀티플렉스에 누린 사치가 부끄러웠던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 무거운 기류에 휩싸여 시청앞마당을 지나는 발걸음이 무겁거나, 혹은 반대급부로 재빨랐던 게 틀림없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상황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어김없이 입장을 발표한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입장은 순천시 공무원노조 간부에 대한 배제징계 추진을 규탄하는 성명이었다. 지금에서야 도의 인사위원회에서 결정이 유보된 상태라 팽팽했던 신경줄이 조금 풀렸다고는 하지만 성명이 발표되던 날은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하루 전으로 어떻게든 입장을 알려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보고자 했던 안타까운 심정의 긴장감이 그대로 살아있던 날이었다.

공무원 노조에 대한 탄압 사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행정자치부의 지침으로 전국적인 술렁임이 있었지만, 순천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는 게 대부분의 판단이었다. 노조원들의 탈퇴서를 제출하도록 한 일, 조합비 자동이체 금지, 노조간부 경찰 고발 등 일련의 압박이 가해지면서 계속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듯 느껴졌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 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부자여서 갈 곳이 많지만,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는 경구는 계속해서 궁지에 몰렸을 때 내릴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판단을 대신 전해 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내가 일하는 곳의 입장을 발표하고 전달할 뿐, 구체적인 상황 즉 내부적인 사항까지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상식적인 범위 내에서 봤을 때 이러한 갈등은 이제 그만 해소되고, 극단적인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초 전남도와 순천시가 도 인사위원회를 소집해서 배제징계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했을 때, “배제 징계”라는 용어자체도 낯설었다.

무엇으로부터의 배제를 통한 징계라는 것인지, 그 뒤로 공무원법을 뒤지고 여기저기를 검색해 알아본 결과는 공무원 관계로부터의 배제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즉 중징계인 파면과 해임을 뜻하는 말이었다. 순천시는 그랬다. 인사위원회를 열어 공무원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순천시 공무원노조 간부 7명에 대해 배제 징계 즉 “파면 또는 해임”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민들의 입장은 그랬다. 그 7명에게 “파면 또는 해임”의 중징계를 내리지 않고 다른 해결의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안타까워했었다. 도 인사위원회는 23일 징계 유보 결정을 내렸다.

누가 봐도 심했다 싶은 내용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인 결정이었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공무원노조와 순천시와의 갈등에 누구보다 걱정이 많았던 사람들은 바로 시민이었다.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고, 갈등이 풀릴 때 가장 먼저 사죄해야 할 대상 또한 시민들이다.

   
                                                                                                             ▲ ⓒ오윤화  
 
도 인사위원회에 배제징계를 회부할 때 까지, 그동안 많은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 의회 등이 중재안을 내놓고 어서 타협점을 찾기를 바랐던 바람들과 중재가 어떠한 실효도 거두지 못하고 인사위원회의 연기 결정이 났다. 징계유보 결정이 내려지자, 당사자인 순천시공무원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은 각자의 입장을 발표했다.

순천시공무원노조는 언제라도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노관규 시장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타협의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어디일까? 이제 다음 인사위원회가 열릴 때 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몫이 남아 있다. 시민들은 이 유보된 시간에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것을 원하고 있다.

유예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열쇠를 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 다른 한 쪽은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언제라도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전 발표한 성명의 마지막 줄은 이랬다.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독재 권력에 맞선 순천시공무원노조의 항거는 계속되어야 한다.” “show must go on"

항거가 당연히 쇼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도록 하는 쇼는 계속되어야 하듯이, 부당한 모든 것에 대한 항거는 계속되어야 한다. 시청 앞 멀티플렉스가 계속 운영되는 한, 여전히 그 곳은 내 단골극장일터이다. 극장 문을 나서면 어김없이 시청 앞마당을 지나 집에 가야하고, 몇 편의 영화를 더 보고 나야 하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극장 문을 나서 시청 앞을 지나는 내 발걸음의 무게와 속도가 지금과는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지날 때마다 느껴졌던 묘한 기류의 기분역시 오롯이 영화감상만으로 바뀌어졌으면한다. 영화 보는 데 쏟아 붓는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몇 편 보고 나오지 않는 사이에 시청을 지나는 마음이 가벼워 진다면 더할 나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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