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이 준 인연과 섬진강이 일깨워준 작은 인연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세상의 물욕이 사방팔방으로 길을 내고 터를 닦느라 여기저기 끊어지고 상처 난 산맥. 전설이 되어 떠돌던 여전히 숨겨야 할 역사가 너무 많아 첩첩으로 길을 막아서는 지리산. 역사는 삶으로 굽이치지 못하고 전설은 저마다 서러운 사연이 되어 붉은 황토흙 머금은 섬진강 너울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낮부터 소낙비로 지리산을 적시던 먹장구름은 지리산을 찾은 우리에게 총총한 별들을 만날 수 없게 했지만 그 아래서 마주한 술잔마다에는 안주처럼 별들이 떠서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마다 색깔 다른 노랫소리가 가슴을 열어 마음을 이어주고는 지금쯤 섬진강 너울에 실려 지리산 골짜기 돌아 바다로 향해 흘러가고 있겠지요.

▲ 저무는 섬진강. ⓒ광주인

푸른 몸 길게 누워 하늘과 맞닿은 지리산의 넉넉함으로는 속인들의 주림을 채울 수 없어 가던 길 다시 돌아 우선의 허기를 달래고 강물 따라 다시 걷던 지리산! 그 헤아릴 수 없는 무게의 중심에 터를 잡아다는 산사.

밤에는 아귀들이 숨어들어 허기를 채우고 낮에는 저승사자들이 들이닥쳐 탐욕으로 물들였을 쌍계사! 저 혼자 고즈넉하기를 바라는 사찰의 본분을 지킬 수 없게 하였을 수상한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기에 인성스님의 사부대중을 향한 마음과 달리 산사의 곳곳에서 세욕과 마주한 시간.

그래도 기다림 하나 가질 수 있었으니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깨달음도 성불도 서두르지 아니할 것이요, 일체의 지옥중생들이 제도될 때 비로소 깨달음을 이루겠다.”고 석가의 부름에 답하였다는 지장보살! 지장보살이 지옥의 중생들과 고통을 나누며 기다리고 있을 미륵불은 언제 어디에 그 모습을 보여줄까요?

낯설어하던 길섶들도 눈에 익어 어느새 친정집 고샅처럼 편안하게 마음에 들어와 앉고, 저문 강에 삽을 씻던 아버지의 고단했을 삶이 노을빛처럼 살아오는 강 길에는 정희성 시인의 도란도란 옛날이야기가 들려 왔습니다.

아마도 시인이 그 저문 강에서 삽을 씻으며 내다버리고 싶었던 슬픔은 우리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감내했을 지리한 장마의 눅눅함 같은 세월들이었을 테지요. 하지만 우리 또한 그렇게 그곳에 터 잡고 살아가야 할 삶이일진데, 버리고 싶다는 시인의 역설이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섬진강 핑계를 먹고 자랐을 양식장 은어로 우선의 그리움 달래고 다시 찾은 광주! 끝이 없을 것 같던 지리산 산맥의 흐름도 섬진강의 물줄기도 밤을 밝히는 도회지 불빛에 꼬리를 감추고 새로이 마주하는 기다림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렇게 지리산과 섬진강을 돌려보내고 내일을 위한 자잘한 행복들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금강문.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불법수호와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장소를 말한다. ⓒ조재진

세상을 이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고 싶다고 했던가요? 먼 길 돌아와서도 피곤한 기색 없이 허허로운 마음을 채울 또 다른 만남을 찾아 곧 자리를 뜰 누이 같은 재진님!

하나님의 말씀을 촌철의 활인으로 삼아 함께 한 지기들의 시샘을 사면서도 뭇사람들의 사랑을 온 몸으로 보듬아 줄 혜흠님!

잘 생긴 모습에서 나는 왜 색부(嗇夫)를 떠올려야 했을까요? 세상은 저마다의 욕망으로 치달아가도 터 잡은 농토에 묵묵히 쌀나무를 심는 농부를 색부라 했으니 어쩌면 그대의 삶이 그와 같아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기님!

처음 마주할 때의 서먹함이 헤어질 때는 못내 떨쳐낼 수 없는 서운함으로 바뀌는 만남. 하여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고 그 안에서 자기의 행복을 나누어 서로 사랑을 키우려는 눈빛의 약속을 확인하고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지리산의 눈 시리게 푸른 녹음과 섬진강의 산수유 풀어놓은 황토물이 막걸리 한 잔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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