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에 상당히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세간에 화제가 된 주택작품을 기회가 되어 방문, 답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보아도 손색이 없는 세련된 디자인과 , 건축가의 세심한 공간적 배려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주택내외 구석구석에서 느껴졌으며, 시공자의 꼼꼼한 마무리 역시 건축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필자에게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어느 교수님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집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6,70년대 소위 집장사들이 지은 집인 듯하며 골목안의 막다른 집으로  기회가 되는 데로  한집, 한집씩 몇 집을 매입한 후 안채, 건너채, 사랑채 등 필요한 건물만  남기고 나머지는 마당을 조성한 듯하였다. 3대가 같이 사는 이집은 어느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분위기는 보이지 않았으며, 비싼 돈을 들인 듯 한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마당텃밭의 배추 몇포기 위에 햇볕이 가득 내리쬐고 있었고, 어린이-손주인 듯-의 웃음소리가 가득했으며, 사랑채 교수님의 연구실은 책 곰팡내가 가득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잘 설계된 전자의 주택보다 이 낡고 볼품없는 골목안 막다른 집이 훨씬 아름답고, 따뜻하고 정겹게 보였다.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집자체 보다 살아가는 사람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비슷한 시기의 겪은 이 두가지 작은  경험은 필자의 건축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생각을 하게 한다. 

건축가는 설계를 의뢰한 크라이언트의 구상과 건물을 사용할 이들의 행태를 유추, 가정하며  또한 그 대지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읽어 이를 구체화, 조형화 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건축가는 초기 계획된 디자인이 유지되길 원하나 대게 그렇지 못하고 시공시 여러 상황에 따라 변하고 완성된 후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용 목적에 맞게 건물은 사용되어지고 변해가며 건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를 먹어간다. 

더구나 최근에는 어지러운 간판 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도시경관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문화수도를 꿈꾸는 광주시 우리들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습 역시 급변해가는 21세기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 아닐까? 

현재 문화도시 광주를 위한 무수히 많은 담론이 현재 진행 중이며 특히 아시아문화의 전당관련으로 많은 이야기가 진행 중에 있다. 

특히 랜드마크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가시적인 조형물, 하드웨어에 집착하고 있지 않는지 우려가 된다.  30층짜리 수직적 요소의 건물? 또는 좀더 화려하고 가시적 디자인의 조형물?  그러나 필자는 이 의견에는 찬성 할 수 없다.  

도리어 쇄락해가는 도심 가운데 공원을 만들고 그 지하에 건물을 배치함으로써 친환경중시의 우리 시대정신과 억눌려 살아왔던 우리들 민초의 삶과 저항정신을 표현함에 수직적 요소의 랜드마크는 본질을 흩트릴 수 있는 사족에 불과 할 수도 있다.

랜드마크적 요소를 꼭 시각적 요소만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며 도리어 골목안 막다른 집처럼 우리의 삶과 살아온 과정,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감동적일 수도 있고 더 기억에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물은 당연히 잘 계획되고 디자인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그 건물, 그 도시에 사는 이들의 삶이 아름답게 묻어 나와야 한다. 랜드마크에 대한 논란보다는 깨끗한거리, 도심속 소공원, 아름다운 간판설치 담장허물기 등 좀더 작지만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사힝에 대한 고민 등이 더 필요한 시점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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