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도덕경에 대해 글을 써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소심한 난 몹시 두려웠다. 사람의 인격이 富貴(부귀)로 평가되는 世態(세태) 속에서, 약력을 보듯 몇 자도 이어지질 않는 그래서 내세울 것 없는 하위직 공무원 신분에 배움 또한 옅어 글이 미천하고 내용이 천박해질 수 있을 뿐더러 그것으로 인해 자칫 잘못했다가는 나는 고사하고 소속기관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특정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은 한번으로 足(족)하지 이번 것은 주어진 소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책의 말머리에도 올렸지만 도덕경에 대한 나의 역할은 ‘세상에 나만의 역해서’를 알리는 것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 언제부터인가는 경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한문번역은 모르되 경전의 해석은 하지 않겠노라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한문법에 대해 연구도 하고 번역도 하나 잡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의 한편에선, 책을 낸 뒤에 알게 되었던 번역의 오류나 새로운 사실들을 새롭게 설명할 기회를 부여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좋게 생각해 노자성인이 나에게 준 기회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도덕경은 깨달음의 글이요, 지금도 설왕설래하는 글이라며 나를 달래 보았다. 도덕경은 깨달은 자가 쓴 깨달음의 글이다.


하룻강아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거만하게 세상을 향해 글을 내 놓고 얼마 가지도 못해 절로 고개가 숙여졌던 지난날이 있으나 어차피 한번 글을 세상에 내 놓았었고, 形(글자 자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 아직은 나의 생각을 거두어들일 생각이 없음으로 그리고 도덕경이 깨달음의 글인 이상 미천한 범부가 이해하기에는 그 누구라도 일정부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 내가 아는 만큼만 꾸밈없이 욕심 부리지 말고 이야기를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도덕경 속에 어떤 象(상, 글자 자체의 뜻이 아닌 파자나 은유적인 표현으로 해석하거나 글자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번역하는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 등을 말한다.)이 있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내가 읽어 본 바로는 문장만으로도 도덕경은 거대하며, 지금껏 바르게 번역되지 못한 것이 속된 말로 지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마음으로 도덕경을 읽다>를 처음 세상에 내 놓았을 때 정말 많은 독자들이 시시비비를 따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나에게 시시비비를 따진 독자는 오직 한 분이었고 질문한 독자는 한 분이었으며 나의 책을 통해 頓悟(돈오)했음을 내비치는 분이 한 분이었을 뿐이다. 처음 분은 자신의 전자우편에 답장을 준 도덕경 역해자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으며 8차례 정도의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중에 관점이 똑 같다는 것에 동감하고 만남을 끝냈다. 그분이 유일하게 나의 책에 별 4개를 올려준 분이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방문해주기를 바랐었는데 아직까지 들어가 보지 못한 죄스러움을 갖고 있다.


마지막 분은 지금도 만나고 있는데 그 분은 나와의 만남 전에 이미 易(역)의 繫辭(계사)나 도덕경을 수 십 번 붓으로 써가며 뜻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나의 글이 엉킨 생각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 분은 현재 도덕경을 계속 연구 중에 있으며 후에 언급할 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내용이 기존과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글을 쫓는 사람이나 연구모임 등에서 전혀 말이 없었다. 아마 나를 무시해서 이거나 그 역시 도덕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이해하고 있다.


 

정대철님은 전남 무안출신으로 전남대 중문과를 중퇴하고 87년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여 현재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도덕경을 접하고 역해하는 과정에서 한문법을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2004년 도덕경 역해서인 책 <노자의 마음으로 도덕경을 읽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