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42회 대종상 심사 첫날 첫 상영작이었다.
심사위원 보도자료 책자를 살펴보니 조금 가벼운 영화일 것 같아 흥분을 진정하며 별다른 기대 없이 영화에 몰입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특별한 주연급이 없는 영화 <마파도>는 작금의 충무로의 영화 환경의 대안을 제시해준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이문식은 화려하고 큰 스타는 아니지만 조연으로서 두들겨 맞아서, 아니 맞으면서 큰 배우였다. 공교롭게도 53편의 대종상 예심 작품 중, 로또복권이라는 소재의 2개의 작품 모두 이문식이 가운데에 서있었다. 다른 하나는 <달마야 서울 가자> 그는 어쩜 충무로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마파도>란 실존하는 섬은 아니고 대마초와 노파들이 있는 섬이라하여 영화설정 상 만든 가상의 섬이다. 촬영지는 전남 영광 백수에서 법성포로 가는 경치가 아름다운 해안가 동백마을이다. 내 작업실이 있는 광주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곳이라 영화가 상영된 후 그 길을 두 번 지나치게 되었다.

그때마다 촬영지 동백마을 앞에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멈춰 서있었고 젊은 연인들의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풍광과 세트장을 디지털 카메라와 홈 비디오로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지방자치단체는 한철 특수경기를 노리며 먹거리 등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아 둘 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영화는 160억원이 당첨된 로또복권을 들고 잠적한 다방 여종업원 장미(끝순)(서영희분)를 찾기 위해 다방주인 신사장(오달수분)에게 30억원을 받기로 약조한 비리형사 충수(이문식분)와 신사장의 충복 모범건달 재철(이정진분)이 함께 지도에도 없는 끝순이의 고향인 낯선 섬 마파도에 낚시꾼으로 위장 잠복근무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신사장이 볼 때는 끝순이는 돈 160억원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들고 튄 것이었다.
뱃전을 붙잡고 죽기 살기로 바닷물에 배 멀미를 하는 두 건달(?)에게 “오늘 물개들 배 터져 불것네.” 하며 놀리는 선장이 내던지 듯 내려주고 떠난 섬, 마파도.

그 섬에는 섬 전체 인구 5명, 구성 성비 100% 여자, 공동 생산, 공동 분배, 공동 사역, 공동 소유의 체계로 돌아가는 바로 20년간 남자 구경 한번 못해본 엽기적인 다섯 할매들이 살고 있는 이상하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었다.

회장댁(여운계분), 진안댁(김수미분), 여수댁(김을동분), 마산댁(김형자분), 제주댁(길혜연분) 다섯 명의 여자들의 시선으로 충수와 재철은 하늘에서 소 대신 두 남자를 일군으로 주신 거라 확신한다.

순박한 얼굴로 위장한 엽기 할매들은 목적이 다른 두 남자들을 하늘이 내려주신 일꾼(특별한 선물?)이라 생각하며 은근슬쩍 노동을 강요한다. 다섯 할매들은 회의결과 두 건달의 숙식은 여수댁 집으로 결정되었고 여수댁은 오줌은 사방 아무데나 깔겨 불라고 한다.

그리고 모시 속옷을 가져다주면서는 “부랄이 깔깔하니 시원 헐 것잉만” 하며 입심을 뽐낸다.
진안댁은 평상에 앉아 “느그들 고기 잡으러 온 거 아니지?”, “글먼 할매 보러 왔것어?”하는 충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나 똑바로 쳐다봐라. 니 놈은 평생 사람 뒤나 쫓아다닐 팔잔디?!”하며 충수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두 영계건달의 등장으로 일터인 논, 밭으로 나갈 때 화장을 하는 엽기 할매 마산댁은 동기 할매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지만 개의치 않는다. 항상 가죽 겉옷을 입으며 폼을 잡고 일손을 거두는 모범건달 재철을 보며 “ 저놈은 일을 허면서 가죽옷을 입고 땀을 빼냐?” 고 하자 “할매 저놈들 지들 세계에 가오란 게 있어. 마산댁 있지? 밭일 허면서 화장 하는 거? 그거와 똑 같어.” “미친년이지.” “저 새낀 가시내 올라 탈 때도 양복입고 올라 탈거여.”

또 한날은 할매들이 화투를 치면서 10억이 아니라 10원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비리 형사 충수는 그 순박함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한다. 진심으로 열심히 일을 돕던 모범 건달 재철이 빗속에 무너진 지붕에 깔려 쓰러져 고통스럽게 누워있자 충수는 “콜라라도 따뜻이 데펴 줄까?”하며 이 섬에 처음 도착할 때의 갈등과는 달리 서로 간에 다른 감정들이 서서히 풀려가며 관계개선이 되어간다. 아니 서서히 진정한 인간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이렇듯 할매들의 가공할 내공은 다음 배가 들어오는 일주일간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두 남자의 섬 생활을 악몽으로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영화<마파도>가 얼떨결에 자신들의 임무 수행을 위하여 할머니들의 온갖 유혹과 시련을 견뎌내고 고양이 앞에 쥐 신세로 전락해 버린 좌충우돌 두 건달의 무임금 노동사역기이기만한 영화였다면 筆者는 어설픈 휴머니즘과 어색한 설정에 그럼 그렇치!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하며 당연시 느꼈을 터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때로는 감칠 맛 나는 대사에 폭소가 터졌고, 때로는 아쉬운 느낌들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면서는 보는 이들을 한없이 착잡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신인감독 추창민이 감칠 맛 나게 잘 씌여진 시나리오(작가 조중훈)만 가지고 주연 급 하나 제대로 없이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고만 말하기엔 뭔가 모자란 것 같다.

서두에 말한바와 같이 충무로에서 제작자들이 만든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스타의존도가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되어버린 제작관행에서 심지어 매니저들이 자신들의 지분까지도 요구하는 상황에서 욕심과 어깨에 힘을 뺀 제작, 감독, 각본의 힘이 돋보인 3박자를 갖춘 <마파도>의 성공이 시사하는 바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는 한탕만을 노리며 허황된 삶만을 살아온 진정성이 부족한 찌든 사내들이 <마파도>에서 서서히 관계를 회복하고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인생이 별거냐? 고무신 밑바닥에 붙은 끔 같은 것이여! 찐득찐득허니...”

건달들이 마파도에 들어온 지 7일 째, 돈이고 지랄이고 지칠 대로 지친 두 건달은 섬을 빠져 나아가려 포구로 나서다가 배에서 내리는 160억원(장끝순)을 보게 된다. 끝순이를 잡게 된 재철은 자신을 믿어달라며 애원하는 끝순의 입에서 갑판 위에서 갈매기에게 복권을 빼앗겨 버렸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듣는다.

   
처음엔 믿지 않던 재철은 서서히 장미의 말을 믿어간다. 장미와 재철은 다방에 근무할 때 오토바이 뒤에 태워 배달을 다니며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끼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끝순이가 자신에게까지 배신을 하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선 것이다.

충수 앞에서 재철과 끝순이는 갈매기가 채가 버린 160억을 이야기한다.

“내가 칠렐레 팔렐레 하니까 겨우 갈매기다 이거지? 영화를 찍어라, 이 도둑년아! 너 탈랜트 해라!” 사례금 30억원을 눈앞에 두고 갈매기한테 꿈을 눈탱이 당한 충수의 황당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충수는 끝순이에게 화풀이 하려다가 끝내는 마을 할매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널찍한 대마 밭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며 다시 잃어버린 돈에 대한 욕망이 활활 끓어오른다.
모든 영화의 크라이막스가 그러하듯 조용한 섬 마파도에 신사장을 위시한 건달들과 경찰들이 모여들면서 대마 밭에서 그들은 다시 싸우기 시작한다.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낫과 곡괭이를 든 다섯 엽기 할매들이 총과 칼을 가진 깡패들에게 대항을 하는 것이다.
집에 불을 지르며 갈매기에게 꿈과 희망을 빼앗긴 분풀이로 발악을 하는 깡패두목 신사장 앞에 자신의 딸 끝순이를 대신하여 제주댁이 나서며 무릎을 꿇고 사죄의 눈물을 흘린다. 
어설픈 휴머니즘 앞에 심경변화를 일으킨 신사장의 노골적인 카리스마는 분명 짜증스럽지만 밉지만은 않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모두 떠난 마파도에서 갈매기에 의해 날치기 당한 복권에 대마를 말아 태우며 충수는 말한다. “바다 봐라! (죽이지 않니?)” 충수의 뒷통수에서 연기로 사라지는 160억원에서 영화는 모두를 아우르며 마파도는 다시 평화를 찾는다는 이야기이다.

돈이란 욕망의 급행열차를 타고 관음증적인 순간의 쾌락만을 향해 달려가는 우울한 사회 분위기속에 이 한편의 영화는 오랜 여운을 선물하였다.

 

** 문성룡님은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이며 한국영상작가교육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영화일꾼입니다. 지난해에는 광주시문화예술대상을 수상했으며 스크린 쿼더 축소반대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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