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제 현장in]
 
 정광훈 전 의장 추모제, "세상을 고치는 농사꾼이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인... 신념이 무엇인지 실천"

"광훈아! 광훈아!... 이제 정광훈 의장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합시다. 미국놈들 몰아내고 다 없어져가는 농민을 살려냅시다.” 16일 밤 9시부터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앞 마당에서 열린 고 정광훈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추모제에서 윤정석 전 전농의장은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500여명이 참석한 추모제는 살아 있는 동지와 지인들이 고인의 생전 삶을 회고하며 다짐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세상을 고치자던 대지의 혁명가/ 땅이여! 저승에도 농사꾼이 필요한 가/ 거기에도 살농 정책이 있는 가. 서해승 시인은 '세상을 고치는 농사꾼- 정광훈 의장 가시는 길에'라는 시를 고인의 영전에 바쳤다. 

▲ 16일 밤 9시 광주 동구 서석동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앞마당에서 열린 고 정광훈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추모제. ⓒ광주인
이어 장명진 충남도당위원장은 평소에 정광훈 의장님은 '간을 키워야 한다. 간을 키우지 않으면 절대 사고 못 치거든'하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남주 시인의 동생 김덕종 전 전농광주전남연맹 의장은 “의장님은 꽃을 정말 좋아하셨다. 의장님께 '봄이 이렇게 잔인하게 올 줄 몰랐다'라고 울먹이며 “정광훈의장님은 근래에 쓰러질듯한 집을 한 채 장만하고 찢어질듯 좋아했다. 집에 진달래를 심어놓고 '덕종아! 진달래가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김 전 의장은 또 "정 의장님은 민중에 대한 애정이 동지의 애정, 조직의 애정으로 승화되었다. 그것이 의장님의 거창한 사상이었다”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또 “(고인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말로 자유인 이었다. 땡전 한푼 없이도 살았다. 현대자동차노조를 방문하는 길에는 가는 여비 밖에 없었는데 정광훈의장님은 돌아오시는 길에 식당에 들러 식사도 하고 차비도 벌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자제품을 수리해주시고서 얻은 여비였다”며 “우리 한반도에서는 정광훈을 배우자”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어 여성농민회 노래패 '청보리 사랑'이  '씨앗 같다',  '아스팔트 농사꾼' 그리고 '심장에 남는 사람'이 공연되었다.

사회자를 본 박웅두 농민운동가는 "정광훈 의장님은 '남성 농민들은 목소리로 운동을 하지만 여성 농민들은 혼으로 운동을 한다'라고 말했다"고 여성농민에 대하 고인의 각별한 사랑을 강조했다. 

▲ ⓒ광주인
한 여성농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광훈 의장님은 집을 짓는 저를 보고 '집짓지 말고 농민 운동에 투자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새롭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택주 전농전북도연맹의장은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한반도 남쪽 끝 땅에서/ 쌀값 전량 수매를 외치며/ 나의 님은 갔습니다/ 서울 여의도에서 아스팔트 농사만을 외치던/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고 한용운 시인의 시에 고인의 삶을 담아 추모했다. 

조선대장례식장 제1분향소 입구에는 '꿈이 있는 자에게 행복이 마중 나올 준비를 한단다. 혁명의 축제날 역사의 현장에서 화끈하게 만나자'- '2011년 3월 24일 (정광훈의장님이 농민회회원에게 보낸 편지글 중에서) 화순농민회' 라고 적힌 펼침막 내걸렸다. 

이영형 해남군농민회회장(56)은 “정광훈의장님은 자기 살림 못하면서 남살림 못한다고 징하게 뭐라고 했다. 철이 없었어요. 생활을 몰랐으니까. 20살만 넘으면 나먹고 살라고 애를 쓰는데 가정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 신념을 위해 살았다. 신념이 무엇인지 돌아가시는 그 순간 까지 하고 가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회장은 “남아 있는 세상은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남아 있는 세상 아름답게 만들테니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시라 저 세상에서 치열한 고민 그만 하시라”고 말했다.

윤상학 전남 해남군농민회회원(48)은 “정광훈 의장님을 이야기하면 눈물 나올라고 한다. 진짜로 욕심이 없는 양반이다. 자기가 갖은 것 남을 다 준다. 남 되기만을 바란다. 부형이랑 빚 갚고 잘 살것 잉께 잘 가시요 잉...”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최창탁 해남농민회회원(48)도  “가시면서 가시는 날까지 행복하게 가셨을 것이다 한번만 더 보고 싶다”라고 고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보이기도 했다.

'희망해남 21' 이훈제 회원은 “황석영 소설가, 김남주 시인, 정광훈 의장 셋이서 같이 청주 교도소에 투옥 되었을 때 석방운동을 했다. 정 의장은 운동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개념으로 운동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정 의장님은 자기 아들 보다 어린 녀석들 한테도 항상 동생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청년들도 바로 형님이라고 불렀다. 정광훈의장님 서울 집회에서 연설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정말 감명 깊었다. 격식이 아닌, 포용적인, 가장 유연한 태도는 따라 갈 사람이 없었다. 지역의 큰 어르신인데 허전함이 크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 ⓒ광주인
홍번 전 범민련광주전남의장은 “정광훈 의장은 말을 만드는 명문가다. ‘아스팔트농사’라는 최초의 말을 지어냈다. 기아자동차 파업지지 연설에서는 '기아가 어긋났다'라고 말하는 재치가 있었다"고 촌철살인과 해학이 담긴 고인만의 '조어 만들기'를 회고했다.

구정철 저남 나주농민회회원은 "정 의장님이 본인의 이름을 소리나는 데로 빗대어 '세상의 모든 더러움을 씻다보니까 본인은 꾸정물이 됐다'라고 말했다"며 이제는 웃을 수도 없는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날 추모제는 참가자 모두가 하나되어 '농민가'를 부르며  고인이 못다 이룬 자주 민주 통일의 과제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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