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여론조사 정치'에 종속된 언론, 해법은 합리적 의문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51.7%를 기록했다."
서울신문의 지난 5월12일자 1면 <이 대통령 국정지지도 52%로 상승 왜?>라는 기사의 첫 문장이다.

청와대가 자체 조사한 결과이다. 청와대는 한국갤럽에 의뢰해 5월9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를 했다.

언론에 이런 주장을 펼친 인물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월11일 기자들에게 이명박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최고수준으로 올라섰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친절한 설명'을 그대로 뉴스로 전했다. 이런 내용이었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침착하게 일관된 대응을 한 것에 국민들이 신뢰를 보인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경제위기 극복과 외교 성과 등이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본다."

서울신문은 5월12일자 1면에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상승곡선을 그래프로 내보냈다.

잊을만하면 언론에 등장하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런 인물이다. 그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과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얘기했다. 그러한 주장은 그의 바람일까, 현실일까.

언론의 기본은 '합리적 의문'이다. 청와대가 말한 것을 옮겨 적는 일은 언론인이 아니라 일반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청와대가 국정지지도가 최고수준으로 올라갔다고 주장한 시점은 5월9일로 '6·2 지방선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다.

지방선거는 정권 중간평가 성격을 띈다.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최고수준이라면 여당이 압승하거나 최소한 승리해야 상식에 맞는 일이다. 청와대가 주장하는 것처럼 국정지지도가 최고 수준이고 국민이 신뢰를 보내는데 선거에서 '정권심판'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 아닌가.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아는 것처럼 한나라당 참패로 끝이 났다. 한나라당은 서울에서 25개 구청장 가운데 21곳을 민주당에 내줬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25개구 가운데 8곳을 제외한 17곳에서 한명숙 후보에게 뒤졌다. 강남 3구의 몰표 덕분에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지만, '강남시장'이라는 불명예 꼬리표를 달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주장했다는 대통령 국정지지도 51.7%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일까. 대통령 국정지지도 조사에서 참 희한한 장면은 여론조사기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십니까"라는 문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지라는 표현은 들어가지 않는데 국정지지도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하지만 언론 대부분은 별다른 고민과 의심 없이 관행적으로 그런 표현을 쓴다. "선생님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국정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선생님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국정운영과 관련해 일을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언론이 즐겨 사용하는 이러한 문항은 엄밀히 말하면 국정지지도가 아니라 국정운영 긍정평가 비율이다. 언론이 국정지지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니까 국민 절반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과 같은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 비율은 언론 의도에 따라 50%대도 만들 수 있고 30%대도 만들 수 있다. 그 비밀은 조사 문항에 있다. 조사 문항에 '매우 잘하고 있다' '잘하는 편이다' '잘못하는 편이다'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4개 문항을 사용할 때와 여기에 '그저 그렇다'를 포함해 5개 문항을 사용할 때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5개 문항을 사용하면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 비율은 30%대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여론조사 기법의 문제이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 국정지지도 50%'라는 언론 발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줬다.

정말일까. 사실일까. 그것을 누가 증명할까. 여론조사를 검증한 일이 있는가. 언론은 그 주장을 왜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일까. 때로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등장해서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최고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얘기와 적당한 '마사지'까지 가미한 그런 주장을 왜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일까.

정말로 이명박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50% 수준일까. 언론이 여론조사에 종속된 상황은 '여론조사 정치'의 폐해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언론은 언제나 '합리적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적당한 마사지에 모른 척 맞장구를 쳐주는 게 아니라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50%라는 것은 누구도 증명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기관 발표와 언론 보도에 그런 내용이 있을 뿐이다.

폴리뉴스와 모노리서치가 5월23일 전국 19세 이상 유효표본 성인남녀 1604명 대상으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44%포인트)를 한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서울에서 69.0%로 조사됐다.

서울이 전체 국정지지도보다 높게 나오는 것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울의 이명박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50%를 넘어 70%에 육박한다는 여론조사 결과 '진실'이라면 서울시장 선거, 구청장 선거는 해보나마나 아닐까.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서울시장 선거는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0.6%포인트 격차의 신승을 거뒀고, 구청장 선거는 한나라당이 25곳 중 4곳에서 승리했고, 민주당이 21곳에서 승리했다.

주목할 대목은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 결과이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를 묻는 결과이다. 한나라당을 선택한 유권자는 41.38%, 민주당을 선택한 유권자는 40.99%에 달했다. 지방선거에 참여한 서울시민은 442만 6198명이다.

KBS가 5월24일부터 26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의 정당 지지도는 47.2%, 민주당은 28.9%로 나타났다. 조사에 참여한 이들은 서울시민 1000명이다.

이러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론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는 부풀려져 있다는 얘기이고, 야당 지지도는 축소돼 있다는 얘기 아닌가. 지방선거를 통해 여론조사가 실제보다 여당에 유리하게 나타났다는 점은 여야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언론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이런 이유로 여론조사가 여권에 유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 국정지지도 50% 역시 부풀려졌다고 보는 게 타당한 것 아닌가.

언론은 언제까지 '여론조사 정치' 노예로 살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우를 범할 것인가. 언론의 기본은 '합리적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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