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때리기' 최대한 활용..."증거 없어도 너희 소행" <뉴스 검색 제공 제외>

천안함 함미가 15일 인양되면서 보수세력들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된 게 분명하다'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군 당국도 겉으로는 기뢰.어뢰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어뢰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달 26일 침몰 직후부터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 채 북한 공격설을 퍼뜨려왔던 이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달 26일 천안함 침몰 직후 청와대는 "이 대통령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 회의에서는 아직까지 북한의 특이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발표했다.

▲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으로 탑재되기 전 위치 조정 중이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이에 대해 군 당국과 보수세력들의 생각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처음에는 북한의 기뢰 공격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천안함 침몰 뒤 처음 나온 29일자 사설에서는 "군 당국은 기뢰 공격의 경우 바다 밑에 있다가 배가 지나가는 음향을 추적해 공격하는 '음향감응형 기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곧바로 이 기뢰가 북한이 설치한 것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면 기뢰 매설 훈련을 벌이곤 했고, 최근 실시된 한·미 합동 키리졸브 훈련 중에 기뢰를 설치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특수부대가 반 잠수정을 이용한 어뢰 공격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면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군사 도발이다"

사고 사흘만에 북한 '기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된 것으로 결론을 몰아가기 시작한 것.

그러나 하루만에 이는 '기뢰.어뢰'로 바뀌었다. 30일자 사설에서 이 신문은 "천안함이 북한의 기뢰 또는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결정해야 할 고비를 맞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도 각오해야 한다"고 썼다.

기뢰면 '누가 설치한 것이냐'라는 문제가 남지만 '기뢰.어뢰'로 어뢰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어뢰일 경우 북한의 공격으로 결론을 유도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다음 수순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나 "전시에 준하는"(30일자)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며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즉각적이고 확고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31일자)는 이른바 '북한에 보복공격해야 한다'는 것.

군 당국에서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결론을 몰아가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돼 왔다.

지난달 29일 사고 이후 처음으로 국회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정부가 북한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입장과는 차이가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 김태영 국방부 장관.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지난달 30일 이명박 대통령이 백령도 사고 현장을 찾아 독도함에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이런 모습이 연출됐다. 이 대통령이 "기뢰가 터졌더라도 흔적이 남느냐"고 묻자 김성찬 총장은 "어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동문서답을 내놓았다.

이달 2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나온 이른바 'VIP 메모사건'에서도 김 장관과 청와대의 의견차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어뢰와 기뢰 두 가능성이 다 있지만, 어뢰 가능성이 좀 더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김 장관의 언급으로 군 당국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무게를 두고 있음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이 즈음 보수 신문들은 "군 내부에서는 처음부터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됐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세계일보는 지난주 군 고위관계자가 천안함 침몰이 북한군 정찰국의 소행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청와대도 이런 분위기가 미덥지 않았던지 이 대통령은 6일 군 장성이 단장을 맡고 있던 민군 합동조사단장에 민간인 공동 단장 체제로 할 것을 지시했고, 외국 전문가들도 조사단에 포함시켰다.

군 당국의 경우 '북한의 어뢰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여론을 북한에 대한 적개심으로 돌려 책임을 최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어뢰로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면 몇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있어야 한다. 어뢰를 쏜 북한의 잠수함(잠수정)이 있어야 하고, 천안함에서 북한 잠수함이 쏜 어뢰를 전혀 감지하지 못해야 한다는 것.

이는 보수세력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몰아가면서 '전시에 대비해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준비'를 요구하는 마당에 불가능은 없었다. 국방부 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지난 5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잠수정이) 물속으로 오면 발견하기 힘들다. 전직 해군참모총장들 얘기를 들으니 탐지 가능성이 50% 미만이라고 하고, 그중에는 10%도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날 기사에서는 지난 98년 속초에서 발견된 북한 잠수정에서 나온 항해일지는 보니 과거에도 수십 차례 침투했는데 군이 그 사실을 몰랐다고 보도했다. 북한 잠수함이 몰래 침투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쪽으로 길을 트기 위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설사 북한 잠수정이 몰래 침투했다 하더라도 어뢰를 천안함이 감지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여전히 남는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세력들도 딱히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뢰가 접근하면 음파 탐지를 맡고 있는 천안함 생존 하사관이 국군수도병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고 직전 소나(음향탐지기)에 특별한 신호는 없었다"라고 말한 부분은 어뢰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 최대 방증인데,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8일자 사설에서 "면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군이 박정희 정권 시기 백령도 주변에 기뢰를 매설했다는 최근 보도에 대해서도 보수세력들은 뚜렷한 반박을 못하고 있다. 보수신문은 국방부의 '백령도에 아군 기뢰는 없다'는 발표 외에는 다른 내용을 전하지 않고 있으며,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도 지난 7일 '조갑제 닷컴'에 "한국군이 1970년대 후반 사고 해저에 묻어두었다가 회수하지 못한 기뢰에 의한 폭발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순 없다"고 썼다.

▲ 올해 초 열린 한 극우단체 출범식 행사에 모인 보수 인사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북한이 어뢰로 천안함을 침몰시켰고, 이에 대한 보복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멈추지 않았다. 11일자에서 조선일보는 국제공조로 사고 원인을 밝혀야 한다면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국가적 차원의 결단 역시 국제 공조의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천안함이 인양되는 15일자에서도 이 신문은 "군은 그 파편의 일부분이라도 찾아내, 그것이 누가 언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를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해역에서 대한민국 군함을 두동강 낸 불법 공격 책임자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며 " 단호한 응징"을 언급했다.

어쩌면 이들의 의도는 북한의 어뢰 혹은 기뢰 공격이라는 증거가 나오든 안 나오든 정치적으로 이번 천안함 침몰을 '북한 때리기'에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글에서 조갑제 전 사장은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충격, 즉 기뢰나 어뢰의 폭발로 침몰하였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며 "그렇다면 북이 설치한 기뢰이거나 쏜 어뢰일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이렇다 보니 어뢰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군 당국에 톤다운을 주문하거나 "사고 원인을 놓고 예단하지 말라"고 말한 이명박 대통령도 이른바 '안보 보수'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는 13일 한 강연에서 "이 정도 드러났으면 이젠 이 대통령이 북한을 향하여 '너희들 소행임이 틀림 없다. 억울하면 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 봐라'고 나와야 한다"며 "맨날 북한이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말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도 지난 5일 "'섣부른 예단과 막연한 예측'의 배제를 요구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만약 이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1950년6월25일 김일성의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전개했을 때 미국의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대통령은 결단코 미군을 그렇게 신속하게 한국으로 파병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조갑제 전 사장은 "이명박의 청와대는 자신들은 예단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북한정권의 도발이라고 예단하는 것을 비판한다"며 "예단을 하지 않고 모든 상황이 명료해진 다음에 결단, 즉 후단만 하겠다는 대통령은 지도자가 아니"라고까지 날을 세웠다. "이명박은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라는 것.

이쯤 되면 군이 장악하고 있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든 간에 이미 정치적 이해를 위해 결론을 정한 군 당국과 보수세력들의 행보에는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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