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윤동주의 병원이란 시의 한 구이다. 젊은이에게 병이 없다는 것이 늙은 의사의 소견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젊은이는 오랫동안 아파왔다는 사실이다.

식민지시대 젊은이의 시련, 피로, 아픔은 ‘병’이 아니라는 기성세대의 답변에 대해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는 시인의 기백없는 태도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그 솔직함은 참으로 닮고 싶은 용기이자 기백이다. 뜬금없이 옛 시인의 시를 원용하는 까닭은 아픔(현상)≠병(진단)이란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 식민지시대 뿐 아니라 전문가시대에 더욱 적절한 고민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란 달리 말하면 그 특정 분야 외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문외한이란 말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특정 분야(A)의 쟁점이 특정 분야 그 속에서 완결적으로 해결되거나 자족적으로 해명되지 않고, 오히려 특정 분야 외(~A)에 원인과 결과의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A) 분야의 문제상황에 대해서 (A) 분야의 전문가는 병이 아니라고 진단하거나, 엉뚱한 진단을 내릴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 전문가시대의 문제 지점이다. 집값 급등의 문제는 부동산 시장 밖(예컨대 사교육의 수요)에서, 사교육 시장의 문제는 사교육 시장 밖(예컨대 중․고등교육 등 공교육의 해체)에서, 중․고등교육 등 공교육의 문제는 중․고등 교육 체계의 밖(예컨대 대학교육의 자율성)에서, 대학교육의 문제는 대학교육의 밖(예컨대 취업률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에서, 실업률 등 노동시장의 문제는 노동시장 밖(예컨대 국가의 경제성장율)에서, 일국의 경제성장정책은 일국의 정책결정 밖(교역조건, 환율, 전쟁 등)에서 원인 또는 정책변수를 찾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그 관련성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위와 같은 다층적이고 유기적 연관성으로 얽힌 문제 상황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그 특정 분야 속에서’ 당해 문제를 해명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설정은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다. 이 같은 현실인식에서 보면 전문가(specialist)의 시대일수록 제너널리스트(generalist)의 필요성이 긴요하다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논조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그리고 제너널리스트로서 스페셜리스트에 버금가는 그의 호기심, 독서량, 분석력은 참으로 놀랍다.

새롭게 출발하는 인터넷 신문의 이름이 ‘줌뉴스(Zoom News)’라는 말을 들었다. 뉴스(news)를 줌(zoom)하는 방식에는, 특정 사건과 현상의 세세 부분에 철저히 천작하여 파고 들어가는 스페셜리스트다운 줌인(zoom in) 방식도 있지만, 특정 사건과 현상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 다른 사건 및 현상과의 상관성 등을 차분히 조감하는 제너널리스트다운 줌아웃(zoom out) 방식도 있다는 점, 양자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에서 얻을 것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픔이 있는 곳을 찾아내고, 그 아픔에 비례해 지면을 배분하는 것이 언론과 편집의 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줌인과 줌아웃의 조화와 균형이 있다면, 최소한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병이 없다는 진단은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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