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특별기고는 김영집 전 참여자치21 대표가 지난해 말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되돌아본 시민운동에 대한 소회와 현재의 정국 그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신의 고민과 각오를 담은 글이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998년 변화된 사회에 맞는 시민사회운동을 주창하며 '참여자치21'을 주도적으로 창립하여 지난해말 대표직을 사임하기까지 광주전남지역의 지방자치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또 김 전 대표는 참여정부에 직접 참여하여 지방분권 등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대표는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지역 한 기초자치단체장 출마를 준비 중이다.  

시민운동가 내 친구에게,
백호랑이의 해 벽두에 흰 눈이 세상을 덮었다네.
이 땅에 용맹하고 의로운 인재들이 나타나 더러운 세상을 한 순간에 덮어버리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라는 하늘의 계시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나는 4.19의거 50주년, 5.18 민중항쟁 30주년인 2010년에 어쩌면 우리 역사에서 뭔가 큰 변화가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더구먼.

▲ 김영집 전 참여자치21 대표.

사랑하는 친구여,
지난 연말 나는 시민단체인 참여자치21의 공동대표직에서 사직했어. 1996년 시민연대모임에서부터 시민운동에 참여하여, 1998년 참여자치21 창립 이후 14년간을 시민운동과 함께 해 온 것 같네. 도중에 참여정부의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기획단과 혁신클러스터추진단에서 상당기간 공직생활을 했으니 줄곧 시민운동에 있지는 않았으나 늘 시민단체 회원으로 광주와 함께 해 온 영광스러운 삶이었다고 생각한다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지난 14년간 시민운동을 하며 뭘 했나 돌이켜보네. 시민을 지역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과 함께하는 지방자치를 만들기 위해 일해 왔지. 때로는 감시와 비판을 통해서 더 나아가서는 시민주권의 참여민주정치 실현을 위해 노력했지. 자네와 함께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지방자치와 새로운 정치를 위해 뛰어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네.

자랑스러울 때가 많았네. 인권과 평화를 통한 광주 5.18 국제화의 전기를 만들 때, 참여자치21을 창립하고 처음으로 예산감시운동을 전개하여 나중에 전국 70여개 이상의 자치단체에 예산참여제가 도입되었을 때,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겠다며 주민자치센터를 만든다고 돌아다닐 때, 2000년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바꿔 바꿔'의 정치열풍을 일으켰을 때,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여 일자리 창출을 위해 뛸 때,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일할 때의 열정과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네.

그러나 자네도 아다시피 우리에겐 얼마나 아쉬운 일도 많았던가. 시민사회는 아직 미성숙해 있는 마당에 이명박정부는 시민단체 지원정책을 중단하고 후원금을 끊게 공작하는 등 시민사회의 성장을 다시 억누르고 있지.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연대를 해 왔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협동과 연대는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지. 이번에 각 구별로 돌아다니며 시민토론회를 해 보았네. 토론하면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지지받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일이었다네. 정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존경하는 시민운동가 내 친구,
이런 마당에 내가 자네 곁을 떠나네. 이제 나는 함께 해왔던 시민운동의 영역을 벗어나 지역의 정치를 바꾸는 혁신적 민생 정치운동에 나서려고 한다네. 시민운동이 참으로 쉽지 않고 어려운 때라서 여러 모로 동료 운동가들에게 미안하기만 해. 한편으로는 운동가가 시민운동과 정치영역을 왔다 갔다하며 물을 흐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앞으로 시민운동으로 되돌아오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에서 고향을 잃는 느낌을 갖기도 하다네.

주변의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응, 너도 이제 정치해서 출세하려고 하는구나’고 한다네. 출세를 해보려는 사람들의 갈망이 뱃지를 달고 폼 잡는 것이어서 그도 그렇구나 싶고, 내 자신의 내면에 그런 욕망이 있는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나에겐 상황이 좀 다르다네.

내가 벌써 15년 전 이 아무개 국회의원이 공천 해준다 해서 지방의회에 가려했지만 선거도 못 치르고 감옥에 가 나중에 사면도 안 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벌써 나이 50을 향해 가는 마당이네. 영혼 말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나를 지켜주는 가족들도 정치를 한다는데 별로 찬성도 안한다네.

정치 환경도 예전처럼 어디서 오라고 영입해주지도 않으며 지난 날 선후배 동료조차 모두 선거 현장에 즐비하여 이전투구를 벌이는 판이 아니던가. 내가 지금 그런 판에 가려하네. 주변의 지각 있고 사려 깊은 분들은 내 앞날에 걱정을 먼저 하고 있다네.

친구여,
우리가 존경했으며 내가 모셨던 노무현대통령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주변 분들께 정치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을 우리 다 알고 있지. 맞어. 그것이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라네.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그런데 그곳을 바보처럼 가려고 하는 나는 지금 80년대 같은 의지와 각오를 다지고 있다네. 정치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 지난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을 치르면서 옛 전남도청 별관앞에서 송기숙 전 전남대 교수(왼쪽. 소설가)와 김영집 전 참여자치21 대표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보게.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멀리 후퇴하고 있는가. 사회정의와 남북통일은 어디로 가 버렸는가. 이명박정부에 대해 우리가 이를 악물고 싸우지 않고는 우리는 우리가 평생을 지켜왔던 민주주의와 진보를 가질 수 없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또 우리가 사는 지역을 돌아보게나. 권력이 길어지면 부패한다고 지방정치는 토호들과 기득권자, 사회적 양심과 정의하고는 아무런 인연조차 없는 정치가들이 판을 치고 있지 않는가. 이럴 땐 절망하거나 아니면 싸우거나 둘 중에 하나뿐이네.

오랫동안의 동지였던 내 친구여,
내가 가려고 하는 정치의 길이 절대 정답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네. 그중 하나가 되겠지. 아무래도 올 지방선거가 있으니 그 때 이런 가당치도 않는 야만적 오만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지방의 부패정치를 뿌리 뽑는 계기로 만들자는 것이 지금 나의 생각이네.

나는 지난해 시민단체 모임에서 ‘지금처럼 최악인 경우가 없다. 더 워스트(the worst)다. 이럴 때 중립을 말하고 아무 것도 않는 것은 가장 비겁한 행위다’고 말한 적이 있네. 그래서 나의 판단이 최선은 아니어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지금까지의 시민운동과 앞으로의 정치운동에서 지향하는 나의 목표는 같을 것이네.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겠지.

사랑하고 존경하는 시민사회의 나의 친구여,
사실 상당히 긴장되고 두렵다네. 막상 일을 하려다 보니 벌판에 서 있는 느낌이 들어. 내가 지금 떨고 있나? 힘을 주시게, 아니 같이 힘을 모아 그대는 그대의 장에서 나는 나의 새로운 장에서 장을 넘어 힘을 합쳐 보세. 도전 속에서 미래가 열리지 않던가.

또 열심히 싸우고 나서 설혹 실패한다 해도 그것은 그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지금은 비상한 국면이라는 걸 우리 다시 한번 명심해 보세. 우리를 이끌어 왔던 신념의 위대함이 나를 샛길로 빠지지 않고 용기 있게 나갈 수 있게 지켜줄 것이라 믿네. 물론 시민사회에 남아 희생과 봉사의 외길을 가려는 그대에게도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바라네. 우리는 승리할 것이네!
2010. 1. 6 

그대의 친구 김영집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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