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심마당]박상주논설위원‥"남은 3년, 지난 2년 같을까 두려워" 뉴스검색 제공 제외

한센 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소록도엘 다녀왔다. 육신의 병 때문에 세상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올 3월 개통된 소록대교가 날렵한 자태로 전남 고흥군 녹동항과 소록도 사이를 잇고 있었다.

국립소록도병원과 자해병원, 식량창고, 화장터 등을 둘러보았다. 자해병원 앞에 세워진 비석하나가 눈길을 끈다. ‘花井院長彰德碑’(화정원장창덕비).

하나이(花井)는 소록도 자해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의 일제시대 명칭)의 제 2대 원장이었다. 1921년 6월 23일부터 1929년 10월 16일까지 8년 4개월 동안 재직한 그는 환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식 생활양식을 폐지하고, 본가와의 통신이나 면회,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허용했다. 환자 교육을 위해 3년제 보통학교를 설립하고 독서와 체육활동을 장려했다. 이에 감동한 환자들이 직접 경비를 모금하여 이 비석을 세웠다.

그러나 환자들에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4대 수호(周防正季) 원장은 한 마디로 포악한 독재자였다. 소록도를 세계 최고의 나병요양시설로 만들겠다며 원생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다시 일본식 생활을 강요했으며, 병의 유전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불임시술도 강행했다. 자신의 동상을 새우고 참배를 강요하기도 했다. 원생들의 불만은 폭발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수호원장은 한 원생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지난해 7월 타계한 소설가 이청준의 대표작인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느 날 현역 대령인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소록도를 새로운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득량만 매립공사를 계획한다. 하지만 공사기간 동안 나환자들과 깊은 갈등에 빠져들고 만다. 이전의 병원장들이 소록도에 천국을 만든다는 대의를 내세워 나환자들의 희생을 요구했지만, 결국 원장의 이득만을 취했다는 사실을 안 그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갈등하고 번뇌하던 끝에 조백헌은 스스로를 반성하고 섬을 떠난다. 하나이와 수호, 조백헌 등 실제와 허구에 등장하는 소록도 병원장 세 명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스타일일까 하고 묻는다는 건 우문(愚問)이다. 집권 이후 지난 2년 동안 이 대통령은 미디어법과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등 여론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독불장군 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선적 리더십의 화법은 경탄할 만큼 비슷하다. 이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도록 친환경적으로 건설될 것”, “세계 최고의 IT와 건설, 물 관리 등의 기술을 융합해 미래를 흐르는 강으로 재탄생시킬 것” 등 ‘세계 최고’라는 말을 강조한다.

세종시 수정과 관련해서는 “양심상 원안을 강행할 수 없다” 라거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 타협이 없다” 등 투철한 역사적 소명으로 가득하다. 문제는 이런 대통령의 소명과 국민들의 뜻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데 있다. 지도자가 그리는 일방적 그림을 국민들에게 무턱대고 강요하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2년 주년을 맞은 지금 곳곳에서 마찰과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여야는 4대강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 점거 농성 등 극단 대치를 하고 있고, 서울역 광장에서는 ‘이명박 정권 2년 심판 민중대회’가 열렸다.

교수신문이 매년 전국 대학교수들과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로 ‘방기곡경(旁岐曲徑)이 선정됐다. 일을 정당하지 않은 그릇된 수단으로 억지로 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빗댄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교감에 실패한 채 강압적으로 제시되는 낙원은 ‘당신들의 천국’이요, ‘MB만의 천국’일 뿐, 국민들에겐 ‘끔찍한 지옥’이다. 소록도의 수호 원장과 조백헌 원장이 던져 주는 교훈이다. 일시적으로는 ‘방기곡경’으로 통하는 듯 보일지라도 결국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그게 세상사의 이치다. 앞으로 남은 3년이 지난 2년 같을까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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