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5월의 노래 공모'...5월단체 찬성에 비판여론 높아
부끄러운 시민사회진영, ‘추락하는 광주... 진실은 어디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5.18기념식에서 주제가로, 5.18국립묘지 의전행사곡으로 그리고 모든 투쟁의 현장에서 단골로 부르던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는 본래 백기완 선생의 시 ‘묏 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을 토대로 가사를 만들어 김종률씨가 곡을 붙였다. 고 윤상원 씨와 야학 동료였던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을 주제로 한 노래극 ‘넋풀이’를 통해 첫 소개된 후 1980년대 중반 대학가를 통해 급속히 전파되었다.

▲ 지난 3월 15일 부산, 경남, 대구에서 누리집으로 활동 중인 지역 아고라 회원들이 옛 전남도청 별관철거 반대를 위해 광주를 찾아 5.18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 안병현 기자
그런데 정부가 최근 내년 5.18민중항쟁 30주년을 맞아 '5월의 노래'를 새롭게 공모하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국립묘지 참배와 기념식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30일 국가보훈처는 새 추모곡 제작 배경에 대해 “내년 1월 초까지 가사를 공모, 2월 초에 작곡을 맡겨 3월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5월의 노래’를 보급할 것"이아고 밝혓다. 

그 이유로 보훈처는 "▲다른 정부주관 행사 기념식에 ‘5.18민중항쟁’은 기념곡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노래라고 보기엔 미흡 ▲전국 단위 기념행사로 추진하는데 있어 ‘임을 위한 행진곡’은 각 급 학교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에 부적절 하다는 것 등"을 내세웠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5월단체와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찬반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지난 9월15일 옛 전남도청별관 철거를 반대하기 위한 시민들의 오체투지 장면. ⓒ 안병현 기자


특히 5.18구속부상자회와 5.18부상자회와 5.18유족회는 이번 정부의 새 기념곡 제정에 대해 '5월의 의미가 제대로 담길 수 있도록 단체가 추천한 전문가가 심사에 참여하여 5.18정신이 훼손되는 일이 없게끔 해야 한다'며 조건부 찬성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이에 대해 광주지역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와 5.18 단체들이 국민 정서를 외면하고 악수를 뒀다”며 공모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안성례 '5월 어머니의 집' 관장은 “노래 공모는 교묘한 행태의 압박이며, 자랑스러운 민주화 역사에 흠집을 내려는 이명박 정부의 술수”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날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노래이므로 그대로 손대지 말고 놔둬야 한다"고 정부의 새기념곡 제정을 반대했다. 

문화단체 한 간부도 “5.18 단체들이 새 노래 공모에 동의하는 것은 5.18의 가치를 독점하다시피 해온 관행이 빚은 악수”라고 비난하고 “뜻있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공모가 철회되도록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광주지역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 출신 두 열사의 민주화 투쟁과 5.18이 후세에 던지는 건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며 “5.18을 가장 잘 대변하는 노래를 갑자기 바꾸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 정부의 5.18기념곡 공모와 달리 일개 군인이 지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는 호전적이고 섬뜩한 노랫말까지 들어 있어도 그 역사성 때문에 널리 애창되고 있어 뚜렷한 비교를 보여준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역시 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고 5.18 정신을 훼손하려 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훈처는 “일부에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보다 5.18의 참뜻을 널리 전하는 데도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그럴듯한 해명을 내놓고 있다. 

5월의 시대정신을 담은 노래들이 많지만 타 지역에서 광주를 찾는 많은 이들도 공감하듯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 코끝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5월 단체와의 옛 전남도청 별관보존운동과정에서 만난 개인적인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살면서 광주민중항쟁을 목격을 했으면서도 그 정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방관자적 자세로 살아왔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앞서가신 ‘임’들의 희생과 남은 자들의 한과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회한(悔恨)이 너무 컸었다. 

5월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모인 단체들이 오히려 5월 정신에 먹칠을 하는 단체 간의 분란과 처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익을 위한 공법단체의 추진을 위한 그들의 '담합'에 가슴이 답답했었다. 

광주 시민 전체가 함께 한 항쟁 이었지만, 마땅하긴 하나 보상과 동시에 일부에 의해 당사자주의로 전락하며 외면당하는 이 단체가 풀어야할 숙제들, 그리고 반성. 그런 단체를 비판하고 조롱만 할 뿐 여전히 다를 바 없는 많은 시민사회단체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옛 전남도청 별관 보존운동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시민으로서 보지 못했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게됐다. 그중 대표적인 폐해가 단체간 세력간 갈등이었다. 또 왜곡되고 있는 역사의 진실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대한 통탄(痛歎) 때문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돌아가자는 약혼자의 애원을 뿌리치고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고 서호빈 씨, 뜬눈으로 밤을 세워가며 약혼자가 있는 곳에서 나는 수 천발의 총소리를 들어가며 절규한 서호빈 씨의 약혼녀.

당시 최고의 엘리트급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노동운동과 야학교사로 활동하다가 시민군 대변인으로 나서서 죽음의 순간까지도 투쟁하였고 훗날 동아일보사에서 출판한 ‘건국 50년 아웃사이더 50인’ 중의 한 사람으로 광주민주화 운동을 이끈 이로 소개되었던 고 윤상원 씨.

그 외 구묘역에서 신묘역으로 이장을 하며 디엔에이(DNA)검사를 통해 비로소 가족을 찾게 되었던 이름도 없던 무명열사들과 이름만 남아있을 뿐 아직도 비어있는 가묘속의 많은 주인공들.

이렇듯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바쳤던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현 정부의 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이든 또 다른 내가 미처 모르는 이유이든 새로운 곡에 5.18정신을 담으면 된다고 하지만 썩 내키지 않고 가슴 한 쪽이 찜찜한 것을 명쾌하게 해석할 수 없음이 단순히 나의 지식의 한계 때문일까?

몇 일전 평소 이런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과의 송년회자리에서 마음과 생각을 같이 하는 10명의 사람들이 한 도시를 바꿀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당연하다는 답에 전원이 공감은 하였으나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의 한계에 부딪혀 위축 될 때마다 경험해야하는 자괴감이 오늘도 저만치 앞장서 뜀박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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