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의 미디어워치 ]북측,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열어놓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작동 국립묘지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날 남북한 당국이 깊은 대화를 나눴다. 남북 정상이 간접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 구두 제의가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이는 남북관계의 급격한 유턴과 해빙을 예고한다. 통일운동의 상징인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꽉 막혔던 남북의 물꼬를 터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문단은 김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하고 통일부 장관을 만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하는 등 세계가 주목한 2박3일을 보내고 돌아갔다. 남북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갈등의 냉기를 씻어낼 첫 걸음을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큰 소리로 외친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가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주요 외신들은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 이명박 대통령의 북측 조문단 면담이 이뤄져 남북간 긴장완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김 전 대통령 국장(國葬)은 서거 엿새 만인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국민의 애도 속에서 치러졌다. 8월의 폭염 속에 엄숙히 거행된 이날 국장 행사는 부인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김영삼 전 대통령,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2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10분 동안 엄숙히 거행됐다.

▲ 이명박(사진 오른쪽) 대통령은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 북측 조문단 일행을 접견했다. ⓒ사진출처-청와대
김 전 대통령이 동작동 국립묘지에 영원히 잠든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30분 간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이 포함된 북측 조문단을 면담했다. 북측 조문단은 남북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뜻이 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일부 언론이 보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모든 수준의 남북 간 대화가 가능하지만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의지를 밝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뒤 이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달라고 당부했다. 북측은 핵문제를 의제에서 뺀 남북대화 방식을 제의한 반면 남측 정부는 비핵화가 남북대화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제의한 것이다. 남북은 이날 눈높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공식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 추후 대화를 활성화할 공감대가 조성되는 첫발을 내디뎠다.

북측 조문단은 서울 방문 기간 동안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지도자의 결심이 중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는 모든 형식의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남북관계를 북측에서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통 크게 풀어 가자는 것으로, 거기에는 특사교환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정상회담까지 할 용의가 있다는 김 위원장의 의중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북측 조문단이 이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제의를 했다는 보도를 일단 부인했으나 이는 수구세력 등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는 김정일 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취한 미국 백악관의 태도와 매우 유사하다.

북측 조문단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지난 1년여 동안의 대남 정책을 대폭 수정한 것을 의미한다. 북측은 그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요구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공개적으로 방향 전환 의지를 대내외에 확인시켰다. 북측의 방향 전환은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의 준 정상회담에 이어 방북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12·1 조치’ 해제 등을 포함한 5개항의 합의서를 공식 발표하면서 예견된 사실이다. 5개항의 합의 가운데는 남북 당국간 협의가 필요한 사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북측은 김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는 특사 조문단 파견을 통해 일각에서 제기된 ‘통미봉남, 통민봉관’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며 남북 관계 급변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북측의 이런 변화는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대담 과정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북미가 합의했다는 큰 원칙 등에 견해를 같이 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북측 조문단 서울 방문으로 북측이 조사 중인 연안호 선원 석방과 금강산. 개성 관광 재개 문제, 개성공단 활성화 등의 해법이 가까운 시일 안에 가시화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는 오바마 대통령 정부와 긴밀한 공조를 통해 대북 정책을 수행해온 원칙을 우선하면서 남북 간 교류협력 관계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대화협조 국면으로 급진전 하면 남북관계도 그렇게 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는 현재 직접대화에는 공감하나 그것이 6자회담과 어떤 연관을 맺느냐를 놓고 이견을 좁히기 위한 물밑 접촉 등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북미 간 이견 접근에는 남북간 해빙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 상황은 한반도 긴장완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어 머잖아 북미 간 공식 대화 재개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북미 간에 대화가 활성화된다면 향후 한반도 긴장완화와 대화 협력의 기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외교에서는 계기가 중요하고 누군가 먼저 손을 내미는 과감성이 요구된다. 그렇게 해야 파격적인 성과나 국면 전환이 가능해 역사가 전진한다. 그러나 국면 전환 등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김 전 대통령이 평화통일의 대명사로 여겨진 국제적 정치 거인이었고 그가 화해협력을 유지로 남긴 것이 북과 남을 움직이는 큰 힘이 되었다. 정치 거인은 마지막 가는 길에 민족에게 큰 선물을 안긴 셈이다. 이제 남북이 말길을 터서 같은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면서 통일의 대장정을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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