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방겸영허용 땐 다양성 도리어 훼손

현재 미디어법 개정론자들은 여론다양성을 새로운 논거로 들고 있다. 그 논거의 중심에는 서울대 윤석민 교수의 연구가 있다. 윤 교수는 언론시장 전체에서 방송의 여론지배력이 신문보다 높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윤 교수의 연구결과는 규제완화의 논거가 아니라 규제강화의 논거가 된다. 윤 교수의 말대로 언론시장에서 특정사업자들의 지배력이 그렇게 높다면 그 시장은 집중도가 높다는 뜻이며 교차소유나 겸영과 같은 사업자들간의 연합은 더욱 금기시되어야 한다. 특히 지배적 사업자들인 방송에 대한 소유 또는 이들에 의한 소유는 더욱 규제되어야 한다. 시장의 집중도가 낮으면 규제를 완화하여 사업자 간의 연합을 통한 집중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시장의 집중도가 높으면 사업자 간의 연합을 통한 집중을 더욱 금지한다는 것이 다양성연구의 기본적인 논리구조이다. 그런데 윤 교수는 대한민국 언론시장의 집중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온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시장 집중도 높으면 사업자간 연합통한 집중 더욱 금지해야

사실 알려진 바와 달리 윤 교수는 다양성지수연구를 한 것이 아니다. 보고서 결론부를 보면 사업자별로 다양성 지수(diversity index)를 계산하였다고 하며 방송이 신문에 비해 수십 배가 되는 것처럼 되어있다. 그런데 다양성지수는 사업자별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내 모든 사업자들의 시장점유율을 대입하여 시장 전체의 집중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윤 교수의 보고서는 각 업자들의 시장지배력 조사일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법개정의 논거가 되지 못한다. 아니 거꾸로 윤 교수의 말대로 집중도가 높은 시장에서 다시 동종업자인 신문과 방송 사이의 겸영을 허용하는 것은 집중도를 더욱 높이게 되므로 미디어법개정 반대의 논거가 된다.

윤 교수의 보고서는, 나경원 의원이 주로 제기하고 있는 ‘전체 언론시장이 아니라 방송시장 내에서의 독과점을 풀기 위해 방송시장으로의 진입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송시장 내에서의 시장집중도를 계산해야지 전체 언론시장의 시장집중도를 계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경원 의원의 주장 자체는 어떠한가? 방송시장 자체가 독과점일 수 있다. MBC는 ‘방송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독과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2009년 7월16일 뉴스데스크) 이것도 다양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은 기본적으로 ‘지배력에 대한 건전한 의심’을 기초로 하고 있다.

"방송의 여론 지배력이 신문보다 높다 ≠ 여론 다양성 위해 신방겸영 허용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윈도우즈(Windows)를 아무리 잘 만들고 소비자들에게 각광을 받아도 시장점유율이 높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간주되어 제재를 받게 된다. 방송내용의 신뢰도가 높다는 주장은 오히려 지상파3사의 시장지배력을 인정해주는 말이 된다. MBC는 케이블방송시장까지 전체 방송시장에 포함하여 지상파3사가 독과점을 이루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2009년 7월16일 뉴스데스크) 그렇다면 신문도 주간지나 무가지까지 다 포함하면 조중동은 독과점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현재 방송시장 상황이 독과점인지 아닌지를 다툴 일이 아니다.

문제는 현재의 집중도가 무엇이든 현재의 개정안이 나경원 의원 말대로 그 집중도를 낮출 - 즉 다양성을 높일 - 것인가이다. 답은 ‘다양성을 도리어 훼손할 것’이다. 방송시장내의 독과점을 깰 신규진입자가 또 다른 언론사업자인 신문이라면 전체 언론시장의 집중도는 더욱 올라가므로 방송시장내의 독과점을 깨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자산규모 10조 원 이상의 대기업이 자산을 이용하여 불공정거래를 강요하거나 보도의 내용에 영향력을 끼쳐 언론의 공론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훼손시킬 수 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한나라당측 미디어발전위원도 발제문에서 이를 인정하고 있으며 강력한 사후규제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간단히 말해, 방송시장이 독과점상태라고 가정하더라도 왜 그 독과점을 깨는 신규진입자가 신문이나 대기업이라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집중도 높은 방송 시장에 신문의 진입 허용하는 한나라당 언론법 원안은 다양성 도리어 훼손

혹자는 기존 방송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방송사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 소유주가 신문이나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사업자가 하나 늘어나므로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채널수의 증가나 과도한 경쟁이 도리어 프로그램 내용의 다양성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있다. 이 주장은 지금까지 나온 미디어법 개정 찬성론 중에서 그래도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반론이 되는 연구결과들을 아래에 적시한다.

이은미(2001), “1990년대 텔레비전 방송의 다양성 분석: 지상파방송의 프라임타임대 프로그램 다양성 변동을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46(1), 388-412.
박소라(2003), “경쟁도입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장르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1989년 이후 지상파방송 편성표 분석을 통하여” 한국언론학보 47(5), 222-250
Grant, A. E.(1994). The promise fulfilled? An empirical analysis of program diversity
on television. Journal of Media Economics, 7(1), 51-64.
Lin, C.(1995). Diversity of network prime-time program formats during the 1980s. The Journal of Media Economics, 8(4), 17-28.

더욱이 늘어나는 언론사가 동종업자인 신문이나 대기업이라면 위 연구자들의 결론은 더욱 확정적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박근혜 의원의 ‘총합 30% 점유율 상한제’가 논의되고 있다. 필자는 이 제안에 반대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는 독과점의 폐해를 잘 알지만 그만큼 독과점에 대해 매우 너그럽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까지 한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50%만 되지 않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인정하지 않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은 개별사업자의 점유율이 낮아도 시장 전체의 경쟁상황을 측정하여 각 사업자의 거래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적 판단을 달리한다.

박근혜 의원의 총합 30% 점유율 상한제는 실질적 규제 다 푼 한나라 원안과 차이 없어

전체 언론시장에서 30%까지의 점유율을 가지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너그러운 경쟁정책이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방송, 신문 모두를 합해서 단 4개의 사업자만 존재하는 상황도 가능해진다. 아무리 과도한 경쟁이 프로그램 다양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적은 숫자로는 건전한 경쟁도 불가능하고 다양성도 절대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FCC에서 2006년도에 다양성이 높은 언론시장들에 대해서만 신방겸영금지를 완화하려고 시도하다가 그마저도 정치권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각 시장이 규제를 완화할 정도로 충분히 다양한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10개 이상의 지상파방송이 존재하고 있는가’였다. 그리고 매체합산 점유율을 어떻게 계산할지도 큰 문제이다.

신문시장에서의 10%는 방송시장에서의 10%와 같은가? 아니면 설문조사를 통해 ‘어느 언론사의 뉴스를 가장 많이 보는가’라고 방송사, 신문사들에게 물어보는 방식으로 할 텐가? 후자의 식으로 한다고 가정하자. 현재 어떤 1개 언론사도 전체 언론시장 점유율의 10%가 넘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자신한다(다양한 언론사들의 뉴스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포털들이 언론소비자에게 준 선물이다). 그렇다면 전체 언론시장 점유율을 30%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풀고 사후규제는 없는 한나라당안과 다를 것이 없다.

한나라당 외에도 지금 방송시장을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수많은 외주제작업체의 독립PD들, 방송3사 저녁뉴스에서 김연아만 30분을 보다가 지친 시청자들, 미디어법이 개정되면 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살 길이 보이지도 않는 지역언론들. 다양성규제는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더 다양한 언론사들이 서로 어깨를 겨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안은 거부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