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보복과 폭력의 정치’ 끝내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충격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그 무게는 저마다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노라니 허망하고 처연한 생각이 꼬리를 잇는다. 하지만 이성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닥쳐온 사건을 패배한 정치인의 무력한 죽음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와 한국의 불도저 정권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2003년 3월 16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한 난민촌에서 미국인 평화운동가 레이첼 코리가 이스라엘군 불도저에 의해 깔려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국제연대운동(ISM) 소속의 평화활동가였던 코리는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코리는 이스라엘군 소속의 불도저가 집을 향해 다가오자 양팔을 벌려 불도저를 가로막았고, 몇 번 코리를 위협하던 불도저 운전사는 그녀가 굴복하지 않자 그녀를 바닥으로 밀어붙인 후 몸 위로 불도저를 끌고 지나갔다. 코리는 사고 직후 라파 난민촌 병원으로 실려 갔으나, 양팔과 다리, 두개골이 부서져 결국 사망했다.

사망 당시 스물 세 살이었고, 그렇기에 이런 저런 업적을 남기거나 혹은 잘못을 범할 수 있기엔 너무 젊었다. 그런 레이첼 코리와 상고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를 거쳐 인권변호사로 다시 태어났으며, 3당 합당에 반발해 가시밭길을 걸었으며 끝내 ‘바보’에서 대통령으로 거듭나는 신화를 창조했던, 그리고 퇴임 후 봉하 마을의 촌로가 되고자 했지만 재임 시절의 과오로 법정에 설 운명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교하는 것은 확실히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맨 손의 23세 여대생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밀어붙인 이스라엘군 소속의 불도저 운전사와 촛불에 놀라 모든 반대 세력을 ‘법’과 ‘검찰’을 이용해 제거하려는 현재의 집권세력은 너무나 흡사해 보인다. 이 정권의 수장이 한 때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점까지 생각하면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정치적 목숨을 겨냥했던 검찰 수사

노 전 대통령은 보수 진영과도 오랫동안 갈등했지만, 진보 진영과도 갈등이 많았다. 파란만장한 일생만큼이나 공과도 많았을 것이고 그 평가도 다양할 것이다. 투신의 원인이 되었던 검찰 수사를 놓고서도 ‘과오는 과오’라고 볼 수도 있고, ‘지나친 보복 수사’라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잘못이 무엇이었건 검찰의 수사 행태가 철저하게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적 목숨’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운동 경기를 생중계하듯 진행된 검찰 수사는 한 마디로 ‘민주세력 망신주기’였고, 그 공세는 이른바 ‘1억 짜리 명품 시계 수수 의혹’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렇기에 노 전 대통령이 몸의 목숨을 끊은 것은 5월 23일이었지만 그는 이미 그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잔인하게 다루는 것은 스스로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 그 잔인함은 이미 년 초의 용산 참사에서 - 불 속에서 떠나간 5명의 생목숨은 스스로를 죽이고 경찰 1인까지 함께 죽인 사람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 드러났고, 건당 30원의 수수료 인상을 위해 싸웠던 노동자 박종태의 죽음은 ‘죽창’이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에 난도질 당했다.

누구나 다르게 태어나 다르게 세상을 떠나간다. 그러나 2009년 한국에서 연이어지는 이 죽음들은 한가지의 뚜렷한 질문을 남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오직 앞으로만 달려드는 저 잔인한 불도저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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