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의 미디어창]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

대학에서 기부자의 지정용도와 다르게 기부금을 사용해도 기부는 계속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기부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기부금 지정용도에 맞게 지출하는 것이 투명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길임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법원의 판결은 매우 위험하고 우려스럽다. 언론은 단순 사실만 전달할 뿐 이 판결이 한국사회, 대학사회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그 흔한 해설기사 하나 없다. 허구헌 날 ‘노무현 박연차’타령만 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법 제5민사부(고재민 부장판사)는 2009년 305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해놓고 195억 원만 준 뒤 110억 원을 지급하지 않은 송금조 ㈜태양 회장 부부가 부산대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송씨 등은 기부금이 부담부증여(負擔附贈與)라고 전제한 뒤 '부산대가 기부금을 양산캠퍼스 부지 대금으로 사용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나머지 기부금을 출연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증여는 부담부증여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는 또 재판부가 "송씨 등은 부산대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도 주장했지만 송씨 등의 인격까지 손상됐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소송 제기 시효(6개월)도 지난 만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했다.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면 되는데 인격까지 손상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모호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면 이는 인격권이 손상된 것으로 보는 통상의 해석과는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 명예훼손과 인격권은 별개의 법익이 아니다.

물론 아직 1심 재판일 뿐 최종 판결은 아닌만큼 최종심을 지켜봐야 한다. 또한 판결은 법관의 고유한 권한이므로 이를 존중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 판결의 타당성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의제화하는 것은 논평자의 몫이기도 하다.

이번 판결의 내용은 대학 즉 기부를 받는 쪽의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하다. 앞으로 누가 어떤 용도로 기부금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편의대로 기부금을 전용하더라도 문제 없게 됐다. 기부금의 투명한 관리와 기부자 의사 존중은 법적으로도 지켜야 할 의무가 없어진 매우 유용한 판결이 됐다. 이것은 기부를 받는 입장에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부를 하는 기업이나 개인 독지가의 입장에서 이런 판결은 최악이다. 기부 용도를 지정하여 거액의 금액을 기부하는데 이를 지키지않아도 된다는 식이면 굳이 기부할 이유가 없다. 기부금의 투명한 관리, 기부자 의지의 존중 등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국같은 기부문화 불모지에 찬물을 끼얹는 판결이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송금조 회장 부부가 2003년 10월 부산대에 "양산캠퍼스 땅값으로 사용해달라"며 당시 국내 개인 기부사상 최고액인 305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고, 2006년 8월까지 195억 원을 쾌척했지만 이후 부산대가 약속을 지키지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이를 ‘부담부증여’에 해당되지않는다고 해석했다.

‘부담부증여’는 기부를 받는 쪽이 일정 의무를 져야 하는 증여라고 한다. 재판부는 송회장 등이 기부금의 사용목적이나 사용방법을 지정했다고 해서 법률상 부담부증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담부증여’라는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했을 뿐 내용은 ‘기부를 받는 쪽이 일정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반 기부자가 기부금의 용도를 지정했을 때는 그런 부담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를 다르게 해석했다. 해석의 차이가 판결의 결과를 갈랐다.

이 판결에 핵심사안중의 하나가 ‘부산대가 기부자의 기부용도를 지켰느냐 지키지않았느냐’여부인데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합뉴스는 부산지법 백태균 공보판사의 말을 인용하여, “(이번 판결에 대해) 부산대가 기부금을 기부목적대로 썼는지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기부목적대로 사용했느냐 사용하지않았느냐가 주요 쟁점인데 이에 대한 판단은 하지않고 판결을 내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처음부터 기부목적 존중같은 것은 지키지않아도 된다고 봐야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마치 교수가 학생의 리포트를 채점하면서 스스로 작성한 것인지, 인터넷의 자료를 출처도 밝히지않고 자기 것처럼 도용하여 제출했는지 따지지않고 결과만 판단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해당 판사에게 되묻고 싶다. 만약 판사가 기부자이고 특정 단체에 기부용도를 지정하여 305억 원을 책정하고 1차로 195억 원을 기부했지만 기부자의 의사가 무시됐을 경우, 계속 남은 돈마저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사안을 두고 2009년 5월 4일 부산지법 제6민사부(재판장 염원섭 부장판사)는 "2003년 체결한 기부약정은 모두 완료된 것으로 보고, 상대방에 대해 더는 어떤 법적 청구도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강제 조정안을 제시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판결이 나왔다. 물론 조정안과 판결이 같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조정안
도 쌍방의 논리와 법리해석을 전제로 합리적인 절충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같은 법원에서 이렇게 상반된 결과가 춤을 추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대학은 기부를 통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자발적인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매우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다. 한국처럼 기부금이 소수의 특정대학, 국립대학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지역의 우수한 사립대학은 기부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 법원이 어떤 법리를 어떻게 해석해서 판결을 내리든 ‘기부목적 안지켜도 기부는 계속 하라’는 식의 판결은 결국 ‘기부자는 봉’이라는 소리다.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 투명한 사회, 선진 사회로 가는데 역행하는 판결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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