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최후격전지' 전남도청 별관 철거 놓고 광주는 전쟁중

동지들 모여서 함께 나가자
무등산 정기가 우리에게 있다
무엇이 두려우랴 출정하여라
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
나가 나아가 도청을 향해
출정가를 힘차게 힘차게 부르세


이제는 '광주출정가'를 부르기가 껄끄럽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1980년 5월 27일 민주시민이 총을 들고 민주주의를 지키자며 결사 항전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스러져갔던 곳, 5.18 최후의 항쟁지이자 민주화의 성지로 통하는 광주 (구)전남도청이 헐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2일 광주 동구 광산동에 위치한 (구)도청을 찾았을 때 도청 건물 일부는 검은 천으로 씌워져 있었다. 그 위로는 ‘이곳을 철거한답니다. 1980년 5월, 그 핏빛 절규를 기억하십니까. 이제 시민 여러분께서 지켜주십시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이뿐 아니다. 도청 건물 뒤쪽으로는 굴착기와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 중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공사 현장과 도청은 그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공사 현장은 부지면적 128,621㎡, 연면적 178,199㎡에 달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게 될 자리이고 검은 천으로 씌워져 있는 건물 일부는 도청 별관이다. 이곳에는 또한 어느 철거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천막농성장이 도청을 지키고 있다.

도청 별관 철거...‘진실 혹은 오해’
도대체 도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불편한 동거 조짐을 보이는 이러한 상황은 지난 4년간의 ‘진실 혹은 오해’로 시작된다.

2005년 5월 17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추진단(이하 추진단)은 7조 9천억을 투입해 2012년 개관을 목표로 한 문화전당의 밑그림이 될 국제건축설계경기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추진단이 발표한 운영계획에는 도청 별관이 보존 대상에 포함돼 있었고, 다음날 18일 발표한 국제건축 설계 공고에서도 별관이 포함돼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로부터 한달이 조금 넘은 6월 28일, 설계경기 응모자들에게 최초로 배포한 설계지침에는 별관 보존이 배제됐다.

5월 단체들은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추진단에서는 도청 본관과 별관을 별도의 의미로 사용했지만 5월 단체들은 문서에 표시된 본관동을 본관과 별관을 모두 포함한 개념으로 인식하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5월 단체들은 “처음부터 용어의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추진단(정수만 5월 민주유가족회 회장)이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모호하게 별관이란 용어를 써서 광주시민과 5.18 단체들을 눈속임하려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곳이 별관이라고 했다면 이처럼 논의가 지지부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별관 철거 반대 뜻을 밝힌 한국진보연대도 “추진단의 본래 의도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곳이 별관임을 알지 못하는 이상 별관은 지금 도청이라고 알고 있는 그 건물 뒤쪽에나 있는 것쯤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더구나 철거해야 하는 부분이 80년 5월 27일 수많은 시민군이 계엄군에 의해 죽고 끌려갔던 곳이라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5월 단체들은 한달만에 철거대상에 별관이 왜 포함됐는지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추진단 측에서 현재까지 ‘TF(태스크포스)팀에서 결정된 사항’이라며 공개적인 답변을 꺼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추진단은 이같은 5월 단체들의 주장을 전면부인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전당운영협력과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문제가 된 17일과 18일에 국제건축설계경기 운영 계획을 발표했을 뿐 세부 지침은 공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제건축경기는 국제건축가연맹의 지도 감독을 받게 돼 있어 당시 세부설계 지침을 관련 단체에게 발표하는 것부터가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관계자는 또한 “도청 별관이 보존 대상에 포함됐다는 5월 단체들의 주장도 정보공개요청에 따른 우리 측의 답변을 임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5월 단체들은 당시 발표 발언과 내용 등을 담은 녹취 자료를 정보공개자료로 요청했지만 추진단 측은 녹취 자료가 없어 설계TF운영회의 결과 등 관련 내용을 보냈다. 관계자는 5월 단체들이 추진단 측이 건네준 회의 자료에 표기된 도청 일대의 부지 지도를 보고 별관이 보존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로의 주장과 엇갈린 인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5년 7월 19일 5월 단체들은 당시 정동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면담하고 도청 별관을 포함해 도청 원형 보존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정 장관은 “5.18 단체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답변했다.

정 장관의 발언으로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지만 5월 단체들과 추진단 측의 해석은 크게 엇갈렸다.

5월 단체들은 정 장관이 도청 별관을 포함한 원형 보존을 약속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추진단 관계자는 “5.18 단체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그 발언 안에는 긍정도 부정도 들어있지 않는 정치적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7월 25일 추진단은 국제건축설계경기 운영TF 8차 회의와 4차 자문회의를 거쳐 별관을 제외하고 도청본관과 민원실에 더해 경찰청 본관, 민원실, 상무관, 5.18 광장을 원형 보존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추진단 측이 배부한 ‘도청별관 추진경과 자료집’에는 “7월 25일 회의록에 장관 면담시 증축 부분(별관)에 대해서는 미합의 되었다고 명시했다”고 적고 있어 당시 5월 단체와 별관 철거 문제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2005년 12월 2일 문화전당 설계 당선작으로 우규승의 ‘빛의 숲’이 선정됐지만 별관 철거 문제 논란은 그치지 않았다.

추진단 측은 2006년 9월 26일 별관 철거가 명시된 ‘아시아문화전당 건립부지 내 5.18 관련 보존공간 활용계획안’에 5월 단체들이 참여했고 의견교환이 이뤄졌다고 주장했지만, 5월 단체들은 5.18 기념재단의 주도로 이뤄진 논의로 5월 단체들은 관여하지 않았으며 앞서 문화체육관광부가 배포한 자료집에서도 5월 단체와 기념재단이 철거에 합의한 공문에 5월 단체 직인조차 찍혀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현재까지도 양측의 주장은 팽팽히 맞서면서 절충점은 없어보인다. 추진단 측은 기존 설계에 약 18개월이 소요됐고 예산 220억원이 투여돼 별관을 존치하고 재설계하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든다며 철거를 밀어붙일 태세고, 5.18 단체들은 도청 별관 철거는 단순한 건물을 허무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의 상징성, 정신을 제거하는 행위라며 시간과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제2용산 사건 터지는 것 보고 싶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은 2008년 6월 문화의 전당 기공식을 마친 이후 더욱 첨예해졌다. 5.18 단체들은 지난해 6월 공대위를 꾸려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추진단 측은 이에 맞서 ‘공사방해물 금지 및 방해물 수거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은 추진단 측의 손을 들어줘 농성장 강제 철거를 예고하고 있다.

5월 단체들은 법원이 농성장을 철거한 후 건물 철거 작업에 들어간다면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현재 별관 도청 입구 쪽에는 5.18 부상자회가 천막을 설치하고 소속 회원 50여명이 지키고 있고, 별관 건물안에는 5.18 유족회 회원 50여명이 숙식을 해가며 철거 작업에 대비 중이다.

특히 추진단 측은 별관 철거는 전당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필수적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5월 단체들을 자극하고 있다. 5.18 단체들은 도청 별관 건물 출입을 철저히 제한하며 취재진의 접근조차 막아서고 있는 상황이다.

정수만 5.18 유족회장은 “5월 27일 새벽 별관에서 죽은 사람만 공식집계로 14명이고, 체포된 이후 죽은 사람도 10명 정도”라며 “그분들은 도청을 사수하기 위해서 군인들이 들어오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별관을 전당 출입구로 내놓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호소했다.

유족회 회원 김길자(70)씨는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속내를 내보였다.

“80년 이후 도청을 보면 우리 재학이가 저기 있었다고 느꼈다. 아들을 보는 것처럼 도청을 봐 왔는데, 꽃다운 나이에 죽은 아들을 두고 살아있는 에미가 도청을 못지키면 같이 죽어야 하지 않겄소.”

김길자씨의 아들인 문재학씨는 80년 5월 당시 17살로 광주상고 1학년생이었다. 김씨는 5월 26일 아들 문씨가 도청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 집으로 갈 것을 설득했다. 하지만 문씨는 “계엄군이 손들면 다 살려주지 않겄소. 선배들이 있으니께 걱정하지 마쇼”라며 그날 새벽 끝까지 도청을 지켰다.

결국 문씨는 시신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17세에 카키색 면티를 입고 교련복 바지에 쑥색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시신을 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다리에서 떨어져 머리 한쪽이 함몰돼 있었는데 아버지가 아들 머리를 만져보고 (시신이 맞는지)확인했다”며 눈물을 떨궜다.

김씨는 별관 철거 얘기로 화제를 돌리자 눈물을 닦고 매서운 눈초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70이 넘은 사람이 죽어도 무슨 한이 있겠느냐. 도청 건물이 허물어지면 같이 묻어달라고 할란다. 우리를 죽이고 갈 수밖에 없다. 시너도 갖다놓았다. 별관을 허물게 되면 제2의 용산사건이 난 줄 알고 있으면 된다.”

정춘식(67)씨도 분통을 터뜨렸다. 80년 5월 당시 정씨의 동생 정윤식(20)씨는 5.18 최후 항쟁의 주인공이었다. 27일 새벽 정윤식씨는 도청 정문에서 계엄군에게 잡혀 상무대로 끌려갔다. 석방된 후 정씨의 정신은 온전치 못했다. 정춘식씨는 “그날 정문에서 잡혀갔으니 얼마나 두드려 맞았겠느냐, 동생이 '상무대 쪽으로는 오줌도 안싼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끄집어냈다. 정윤식씨는 82년 2월 28일 세상을 등졌다.

정춘식씨는 “너무 원통하다. 5·6공 세력들이 민주화 세력을 말살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5·6공 추종세력은 전두환 아호까지 따서 일해공원까지 만들었는데, 도청 별관을 없애는 것이 맞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정씨의 억울함은 계속됐다.

“5.18 가족을 떠나서 별관만은 보존이 돼야 한다. 망월동도 새로 만들어진 것이고 상무대 영창도 모형을 갖다놓은 것이다. 그때의 현장 냄새가 나지 않는다. 별관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광주도청이 광주시민의 것이지 광주 유가족의 것은 아니지 않느냐.”

범시민대책위 구성, '최후의 격전지' 사수 나서

광주 시민들은 별관 철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도청에서 불과 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금남로 5가를 둘러봤다.

대학 1년생으로 친구 사이인 정재훈(20)씨와 이병권(20)씨는 별관 철거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철거 사실 자체를 모르는 모습이다. 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5.18 최후 항쟁지로 알고 있었는데, 별관이 사투를 벌였던 곳인데 철거를 하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고, 이씨는 “유족들이 반대를 한다면야 어쩔 수 없이 보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아무개(76)씨는 “5.18 첫날에 빵을 사러 나왔는데 너무 무서워서 도청에 오지도 못했다. 당시에 5.18이 어땠는지 보지 못했던 사람은 철거해야 한다고 그렇게 함부로 말을 절대 해선 안될 것”이라고 전했다.

비록 극소수지만 철거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황모(79)씨는 “5.18을 상징하는 묘지도 있고, 도청 분수대도 있다. 문화전당이라는 현대식 건물이 뒤에 없으면 모르겠지만 외지인들이 와서 왜 이런 건물 앞에 별관이 버티고 있느냐라고 물으면 뭐라고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신숙자(57)씨는 “5.18 단체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다.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 동구가 공동화 현상으로 황폐화되고 상권이 다 죽어버렸다. 1년이라는 허송세월을 보내버렸다. 이제는 죽은 자들을 역사 속에 묻어두고 그 뜻을 잘 지키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장산연구소에서 실시한 도청별관철거에 대한 설문조사(전화남녀 100명 대상)에 따르면 51.4%가 철거에 반대하고 29.3%가 철거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고, 광주 지역 응답자로 한정할 경우 철거 반대가 49.2%로 철거 찬성 37.6%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5월 단체들은 현재까지 여론은 철거반대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지만 철거 문제가 장기화될수록 여론 역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파악하고 있다.

특히 추진단 측은 대대적으로 홍보 책자를 배포하고 방송, 언론을 통해 문화전당 건립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있지만 5.18 단체 측은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광주전남 진보연대가 철거 반대의 뜻을 밝힌 이후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힘을 보태고 있지만 철거에 찬성하는 일부 5.18 관련 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양분돼 있어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 조짐도 엿보인다. 도청 철거 문제가 수습되지 못하면 제29주년 5.18 기념행사 역시 5.18 관련 단체 사이의 갈등으로 원만히 치러지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25일 출범을 목표로 구도청 원형보존 범시민대책위 구성을 제안하고 있는 진보연대 측도 내부 갈등 싸움에 쓴소리를 던졌다.

진보연대는 성명을 통해 “5.18민중항쟁의 최후의 격전지 ‘구 도청 보존’이라는 상식적인 주장에도 지역민들이 적극 호응해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해 ‘5월 제 단체’는 그동안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지역민들의 ‘5월의 사유화’, ‘5월의 권력화’라는 비판를 겸허히 수용하고 지금부터라도 ‘5월 제 단체’가 지역민들의 애정과 관심 속에서 지역사회의 자랑으로 거듭나도록 혁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연대는 범시민대책위가 구성되면 오는 25일 1차 광주시민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이어 1일 노동절 행사에서 도청사수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진보연대 장원섭 상황실장은 “광범위한 시민대책위 구성을 시작으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전국대회를 거쳐 조직을 전국조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진보연대와 5.18 단체는 오는 29주년 기념행사 이전 추진단과 문광부가 별관 철거를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전국적인 대중운동을 통해 원형 보존의 뜻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2009년 5월, 광주 도청 별관이 검은 천을 걷고 광주 시민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하늘로 변해있을지 '민주화의 도시' 광주 시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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