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식서 "분단체제 복권 움직임, 말기현상 방증"

"분단체제의 온갖 퇴행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분단체제의 흔들림이 더욱 심해지는 말기현상이지, 분단체제가 안정을 되찾는 사태와는 거리가 멀다."

▲ 백낙청 6.15남측위 명예대표는 15일 오전, 한겨레통일문화상 시상 기념 강연에서 "분단체제가 가망 없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백낙청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분단체제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남북관계의 현 단계를 이같이 진단했다.

백 명예대표는 "오늘날 남북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것 같지만 실은 남북 간에 약간의 충돌만 있어도 한국경제가 요동치고 국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던 6.15 이전과는 천양지차의 상황"이라며 지난 10년간의 남북 화해 기조,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 등으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했다.

이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북대결을 빌미로 독재정치를 수행하던 박정희 시대를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결과적으로 분단체제의 동요는 계속되면서 그 극복의 길이 묘연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되 권위주의 질서의 확립도 불가능한 어정쩡한 혼란기가 연장될 우려만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분단체제의 동요가 지난 10년간이 아니라 1987년 6월 항쟁 이래로, 그러니까 20여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며 분단체제를 인식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민주화를 연관 지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남북관계 악화가 분단체제의 복권으로 귀결하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뿐 아니라 노태우 정권의 대북정책마저 물러야 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더욱 희박하다"면서 "'분단체제를 복권하려는 움직임' 자체가 그것이 남북 어느 쪽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분단체제가 가망 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남주 교수의 지적대로 지금은 '냉전체제와 분단체제가 서로 조응하던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대결을 강화함으로써 분단체제를 안정시킬 도리가 없으며, 분단체제의 억압성을 초보적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던 시대도 세계경제의 변화로 이미 과거지사가 되었다"며 "안 될 일을 억지로 하려 드는 것은 위기를 심화시킬 따름"이라고 바라봤다.

백낙청 명예대표는 오랜 기간 동안 남북 관계를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인식해야 한다는 '분단체제론'을 피력해 왔다.

그는 또 통일운동 진영의 분단체제에 대한 성찰 부재를 따끔하게 지적했다.

백낙청 명예대표는 "분단극복을 역설하며 더러는 이 목표를 위해 훌륭하게 헌신해온 통일세력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도 분단을 의식하기는 하되 분단현실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문제점을 드러낸다"며 분단체제 형성에는 외세라는 외부요인뿐 만 아니라 내부세력, 주민들의 호응도 긴밀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단체제의 이런 범 한반도적 성격을 무시하고 남녘의 극우세력과 주한미군만 사라지면 자주통일이 된다고 믿는 것은, 북쪽의 정권만 무너뜨리면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공상적"이라며 "다수 국민을 통일작업에 끌어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통일운동을 친북행위로 몰고 가는 수구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하기 십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진보진영 일각에 대해서도 "남북의 점진적 재통합을 수반하지 않는 평화국가 또는 평등사회의 수립이라든가 남한의 독자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 건설 같은 주장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내던지는 사례를 자주 만난다"며 이를 '후천성 분단인식결핍 증후군'이라고 규정했다.

변혁적 중도주의 주창..'성찰하는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만남' 강조

그는 이날도 민주주의와 민생, 남북관계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3중 위기' 상황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성찰하는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결합'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강조했다.

"변혁의 대상은 한반도의 분단체제"이며, 여기서 말하는 변혁이란 혁명이나 변화가 아닌 "발본적이면서도 꽤 장기적이고 굳이 폭력혁명을 수반하지 않는 사회변동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 있는 중도, 일관된 경륜과 지속적인 실행력을 갖는 중도"라며 "단순히 중간지대에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서가 아니라 한반도 분단현실의 특성상 그 어떤 극단적 노선도 분단체제가 남북 주민들의 삶에 들씌워놓은 멍에를 벗기고 족쇄를 풀어줄 수 없다는 성찰을 바탕으로 정립되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바로 그것"이라고 밝혔다.

백 명예대표는 "분단체제가 남한의 독자적 민주화에 부과하는 한계를 인정하고 남북화해의 진전과 결부된 현실적인 개혁노선에 합의"하고 "자본주의 세계체제 및 그 하위범주로서의 분단체제가 떠안은 조건을 일단 수용함으로써 세계시장으로 열린 한반도 경제권의 건설과 남한경제의 발전을 도모할 새로운 종합적 설계를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발전 역시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백낙청 명예대표는 11번째 한겨레통일문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사의를 표하며 "사실은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많은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상을 주는 것이 적절한 것이 아니냐"고 몸을 낮췄다.

심사위원인 이봉조 전 통일연구원 원장은 "이번 수상결정은 대결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의 현 시점에서, 우리 겨레가 백낙청 명예대표의 생애와 철학에서 다시금 화해와 통일의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한겨레 통일문화재단의 마음을 담았다"며 "민간통일운동진영의 단합과 실천에 새로운 모범을 세우셨으며, 남북 민간교류협력의 중심축으로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선정사유를 밝혔다.

임동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도 인사말에서 "그는 2005년부터 최근까지 참으로 어려운 자리인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맡아 특유의 거시적 시야와 탁월한 지도력으로 민간통일운동진영의 단합과 실천에 새로운 모범을 세웠다"며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구동존이의 자세로, 남남대화와 민간 남북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백 명예대표를 높게 평가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안병욱 진실화해위원장, 김상근 6.15남측위 상임대표, 박중기 추모연대 의장, 고은 시인, 리영희 교수, 한승헌 변호사 등 각계 100여 명의 인사들이 자리를 찾아 백 명예대표의 수상을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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