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새삼 00일보가 이 땅의 무서운 권력임을 실감한다. 확인도 안 된 설익은 이야기들을 실명으로 마구 긁어대는 건 우리나라 언론계의 오랜 악습이었다. 그런데 00일보의 사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장자연 리스트'엔 철갑이라도 입혀져 있는 걸까.

장씨의 자살과 함께 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신문과 방송의 뉴스에서 그 이름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겁도 없이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그 터부의 영역에 칼을 빼들고 뛰어들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경찰의 늑장수사를 추궁하며 그 신문사 이름과 사장의 성을 거명한 것이다. 그런데도 한두 인터넷 매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언론들이 00일보라는 익명으로만 보도하고 있다. 왜? 00일보가 무서우니까. 그러니 본란에서도 그냥 00일보라고 쓸란다.

당연히 00일보가 발끈했다. 이 의원에게 강력한 항의서한을 보냈다. 그 일부를 옮기자면,

“귀하는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0모 사장을 술자리에 모시고…'라면서 본사의 이름 및 사장의 성(姓)을 실명으로 거론하였습니다. … 면책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국회 내에서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식으로 발언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남용이며, 이로 인하여 특정인의 명예에 중대한 손상을 가하는 행위는 명백히 민형사상 위법한 행위입니다."

차라리 코미디를 해라. ‘아니면 말고'식 보도의 원조가 누군가? 00일보 역시 그 원조 다툼에선 빠지지 않을 선두주자다.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보도함으로써 특정인의 명예에 중대한 손상을 가한 행위가 어디 한두 번인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 이 의원이 00일보로부터 항의서신을 받은 뒤 “00일보사 스스로 침 뱉기를 한 것"이라고 비판한 것은 이런 점에서 적절하고 옳은 지적이다. 00일보의 항의서한 그대로 패러디 한 번 해볼까.

“언론특권을 가진 00일보라 하더라도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언론특권의 남용이며, 이로 인하여 특정인의 명예에 중대한 손상을 가하는 행위는 명백한 민형사상 위법한 행위입니다."

00일보는 아주 오래된 낡은 '이중 잣대'를 지니고 있다. 당장 요즘 가장 큰 현안인 ‘장자연 리스트'와 ‘박연차 리스트'를 다루는 걸 한 번 비교해보라. ‘박연차 리스트'를 다루는 기사에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검찰이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기사를 그냥 대서특필해대고 있다.

피의 선상에 올랐을 뿐인 이름 석 자를 꽝꽝 대문짝만하게 지면에 때려 넣는다. 비릿한 피비린내를 풍기는 언론권력의 망나니 칼춤! 무죄추정의 원칙? 애당초 00일보의 사전엔 존재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아니면 말고'!

그런 기준으로 ‘장자연 리스트'를 한 번 따져볼까? ‘장자연 리스트'는 탤런트 고 장자연씨에 대한 명예훼손과 성상납 강요 등으로 경찰에 고소를 당한 인물들의 명단이다.

죽음을 결심하고 혈서를 쓰듯 성 범죄자들의 죄목을 밝힌 고인의 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리스트다. 그 수사를 미적거리는 이유가 뭐냐고 이 의원이 추궁한 것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 언론엔 장자연 리스트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 말의 무게가 검사의 말보다 가벼운가?

그러나 이 땅의 진실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적이 언제 있었던가. 00일보가 어디야? 라고 묻는 건 핀잔을 듣기 딱 좋은 말이다. 입소문이 더 무섭다.

00일보는 지금 자신이 던진 ‘아니면 말고’ 부메랑에 얼굴이 깨지고, 자신이 즐겨 쓰던 ‘아니면 말고’ 오라에 자승자박(自繩自縛) 당하는 꼴이다. 늘 '갑'의 위치만 누리다가 갑자기 '을'의 입장에 처하게 된 언론권력의 당혹감이 안쓰럽기도 하다.

00일보 사장님께 권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자신이 만든 신문이 얼마나 많은 생사람을 잡았는지 한 번 되돌아보고 반성하라. 거대한 언론권력에 짓밟히고 유린당하면서도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피눈물을 흘렸을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라. 그리고 앞으로는 '아니면 말고'식 보도는 때려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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