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일자리, 노후, 자녀교육, 평화가 한국인이 겪고 있는 5대 불안이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5대 불안으로 인해 어른 넷에 한 명은 소화도 안 되고,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쑤시고 저리고, 편안하게 쉬지 못하고, 신경과민 증상을 겪는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게으른 중년 아줌마여서 속이 답답하고 잠이 안 오고 신경이 떨리는 게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었던 거다 싶었다. 평화야 내 용량을 넘어선 것이라 불안이니 뭐니 할 것도 없지만 나머지 4대 불안은 삶의 한복판으로 쑤시고 들어와 이미 영혼과 몸마저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는 헐거워진 치아가, 어제는 낡은 자궁이, 오늘은 퇴행성 류머티즘에 걸린 무릎이 시리고 쑤시고 아프다며 노상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늙은 어머니를 보면 불효막급하게도 돈 들어갈 일이 먼저 짠한 마음보다 앞서면서 금방 들이닥칠 내 노후가 뻔히 보여 불안해진다.

유치원 때부터 미8군에서 초빙해온 선생님에게 파닉스 지도를 받게 하고 방학 때면 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게 하고, 스키와 수영으로 체력을 단련시켜주고, 성악과 바이올린으로 감성 교육을 받게 하고, 수학과 과학과 한자와 중국어는 기본적으로 트레이닝 받게 밀어주고, 고등학교에서는 이미 대학 교양학부 정도를 끝내게 만들어줘서 명문대에 입성하도록 끌어주는 대치동 아줌마들의 정교하고 무시무시한 입시 전략을 죽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나는 내 머리를 닮아 수학은커녕 산수도 못 하는 고등학생인 딸을 보며 하나밖에 없는 새끼가 개털 인생이 될까봐 불안해진다.

임용 고시 결과를 기다리며 피가 마르는 서른 중반의 노처녀 여동생을 보면 이번엔 붙을 거라고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불안하다. 2년째 연봉 100만 원짜리 일에 매달리느라 만성 위염과 두통에 시달리는 마흔 중반의 나 역시 여태껏 비정규직이라 불안하다. 그래서 그 일이라도 내게 맡겨 준 것이 감사해서 일의 경과를 물어오면 어쩐지 황송해진다.

바깥양반이 어디 좀 아프다고 하면 죽을 병 걸린 건 아닌가 싶어 지레 겁부터 난다. 이러저러한 불안이 나뿐이랴 싶다. 이렇듯 나와 가족과 친구들은 여전히 집과 일자리와 노후와 자녀교육과 평화로 불안하지만 얕은 개천에서나마 좀 더 나아지리라 믿으며 용쓰고 산다. 새해에는 용쓰고 사는 것마저 더 힘들고 고단하지 않게 해 주길 바랄 뿐이다.

적어도 새끼들 먹여 살리고 안살림 걱정하지 않고 우리네 밥그릇 크기를 안정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나랏일을 살뜰하게 살펴주기를 바랄 뿐이다. ** 이화경님은 광주에서 태어나 현재 거주하시면서 소설 쓰고 번역하고 학교 나가 대학생들 가르치는 일로 밥 벌어 먹고 산다고 자신을 소개하시는 분입니다. 가끔씩 아시아 예술인 교류 프로그램이나 아시아 문학 포럼의 십장 일로 책값이나 술값을 벌기도 한답니다. 계간 《문학들》 편집위원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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