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원고 동의없이 KBS 용산보도비판 대목 강제로 잘라

KBS PD가 TV 옴부즈맨 프로그램 촬영과정에서 KBS 뉴스에 비판적인 내용을 임의로 삭제한 것으로 확인돼 담당 팀장이 사과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KBS 시청자위원회(위원장 고현욱)는 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2월 전체회의에서 지난 14일 방송된 <TV비평 시청자 데스크> '평가원리포트-KBS 용산보도 비평' 편에서 윤익한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의 녹화분 중 "망루에서 흘러내린 물이 시너인 것처럼 보도한 게 아니냐"는 요지의 방송분량(7∼8초)을 제작진이 동의없이 임의로 삭제한 데 대해 KBS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았다고 <미디어오늘>이 보도했다.

▲ 지난 14일 방영된 KBS ⓒ<미디어오늘> 제공
KBS 손재경 PD, 시청자위원 반대에도 외부 원고 동의없이 일방 삭제 강행

사건의 발단은 지난 12일 <TV비평 시청자 데스크> 평가원리포트 편 녹화가 끝난 직후 손재경 담당PD가 해당 방송분에 대해 "사실관계가 다르다, 삭제하겠다"고 윤 연구원에게 통보했다. 윤 연구원은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손 PD는 다음날 저녁 KBS 시청자위원회 평가소위 윤세민 위원장(경인여대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부 교수)에게 "삭제해도 되겠냐"는 취지의 의견을 구했다. 윤 위원장은 평가소위를 열어 위원들의 의견수렴 결과 "별 무리가 없으니 삭제하지 말고 방송하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럼에도 손 PD가 매우 짧은 이 내용을 강제로 삭제한 채 방송을 내보내 문제가 발생한 것. 손 PD는 "전체 내용의 분량에 비춰볼 때 해당 대목은 방송심의규정 규정 중 '객관성' 조항이 위반돼 삭제조치한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된 대목의 KBS 뉴스는 지난달 28일 <뉴스9> 톱뉴스 '화재 직전 액체 동영상 공개'로 용산참사 화재발생 당시 농성자들이 있던 망루에서 액체가 떨어지는 영상을 검찰이 공개하자 이를 상세히 전하면서 "경찰 특공대 진입 때 뿌려진 것으로 보아 농성자들이 경찰의 망루 4층 진입을 막기 위해 시너를 뿌린 것으로 추정한다"고 보도한 부분이다.
▲ 지난달 28일 방영된 KBS <뉴스9> '화재 직전 액체 동영상 공개' ⓒ<미디어오늘> 제공
14일 <TV비평 시청자데스크> 용산참사 비평서 '망루액체' 보도 비판한 대목 빼

윤 연구원은 지난 14일 평가원리포트에서 △KBS 용산참사 보도 중 대부분이 경찰·검찰의 수사상황을 단순 전달하거나 시민사회 입장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양시양비론적 태도 △시민단체와 철거민들이 초기부터 제기해온 용역업체 횡포에 대해 수사가 끝날 무렵에야 보도한 점 △전철연의 폭력성 부각 △해설위원이 책임자처벌을 국론분열로 몰면서 '생존권이 절박해도 폭력은 안 된다'는 리포트까지 한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날 망루 액체 보도를 비판한 대목은 삭제된 채 방송됐다.

윤익한 연구원은 19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뉴스는 누가 보더라도 시너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제기는 타당하다"며 "이를 동의도 구하지 않고, 시청자 평가위원들의 의견도 무시하고 자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자르도록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손 PD는 "내가 얘기할 게 없다. 홍보팀에게 물어보라"고 말한 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시청자위원들 "일방 삭제한 것 무리" KBS "동의없이 삭제해 물의빚어 사과"

KBS 시청자위원들은 이날 회의를 통해 윤 연구원과 손 PD 등의 의견을 청취한 뒤 "문제가 있는 멘트라 해도 동의없이 삭제한 것은 무리한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박태경 시청자서비스팀장도 "물의를 빚은 점과 동의없이 삭제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고, KBS는 향후 △평가원이 원고 제출시기를 지킬 것과 △녹화 후 동의없이 편집할 수 없도록 한다는 재발방지 방안을 약속했다고 윤세민 시청자 평가소위원장이 전했다.

윤 위원장은 "해당 대목에 대해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여지도 있지만 동의없이 그런 식으로 삭제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며 "이런 지적과 비판이 KBS의 발전을 위한 것임을 KBS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시청자의 편에서 KBS의 공영성과 공정성이 확대되길 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KBS 제작진은 손 PD의 강제 삭제 외에도 윤 연구원의 일부 멘트에 대해 시청자센터장까지 나서서 삭제를 요구한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자센터장 'KBS 의제설정기능·뉴스앵커선호도 등 MBC에 밀려' 삭제 외압시도도"

윤 연구원은 "지난 12일 방송 녹화를 막 시작할 무렵 지연옥 시청자센터장이 면담을 신청해 'KBS 방송문화연구소 자체 조사결과 공정성 뿐 아니라 의제설정기능과 뉴스앵커 선호도 부문에서도 MBC에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는 대목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며 "지 센터장은 'KBS에서 공식확인을 해준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틀렸다'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윤 연구원은 "센터장까지 현장에 내려와 자사에 비판적인 부분을 방송하지 못하도록 외압으로 막으려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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