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영의 사람찾기]백악관 담당 최고참 언론인 헬렌 토마스 2

2006년 6월2일 헬렌 토마스(89)는 미국진보센터 초청으로,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학생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때 헬렌과 부시 행정부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 헬렌 토마스가 쓴 <민주주의의 감시견> 책 표지.
정치 권력을 향해 있던 그의 날선 비판은, 이날 따라 언론을 겨냥했다. 미국의 언론이 이라크 침공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동시에 미국의 저널리즘이 다시 경성 보도(hard reporting)로 돌아와야 한다는 뜻도 피력했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는 거리로 나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저 브리핑 룸에 앉아 있기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백악관 브리핑 룸의 터줏대감이라는 그의 위치 탓에 이 강연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정치 보도에 대한 질과 윤리 면에서 현재의 미국 언론이 크게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자 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해 그는 자신의 네 번째 저작이 된 <민주주의의 감시견>(Watchdogs of Democracy>을 펴냈다. 강연에서 언급한 미 언론에 대한 비판을 공론화 한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현재 미국 언론은 민주주의의 감시견이란 핵심적 역할을 포기한 결과 온순하고 타협적인 애완견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권력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한국 언론인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메일 인터뷰에 응한 그는 언론 환경이 악화되는 최근 상황에서 한국 언론인이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단순명쾌하게 정리했다.

“언론인들이 함께 모여 조직화해야 합니다. 그들은 언론 자유를 제한하려는 정부에 강하게 저항해야만 합니다.”

백악관 담당 기자가 되기까지 그의 여정을 보면, 그가 말하는 길거리 보도와 행동하는 언론인의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그는 1920년 미국 켄터키주 윈체스터에서 레바논 기독교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시에서 자라 이 도시의 웨인주립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맨 처음 얻었던 언론계 일자리는, 지금은 폐간된 <워싱턴데일리뉴스>. 이곳 행정 담당을 거쳐 취재 기자가 됐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듬해 세계 4대 통신사 가운데 하나였던 UPI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통신 서비스를 담당하면서 주로 여성 문제를 다뤘다. 각종 뉴스 가운데 여성 문제와 관련된 뉴스를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도록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후에는 뉴스 속 인물과 관련된 칼럼을 집필했다. 

▲ 익살 스런 표정의 헬렌 토마스. ⓒ <미디어오늘>
본격적으로 권력의 핵심부로 뛰어들어 경성 보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1955년 이후의 일이었다. 언론계에 입문한 지 꼭 13년 만의 일이었다. 그 후 그는 법무부와 FBI, 보건교육복지부 등 그야 말로 취재 환경이 험하다는 부서를 모두 경험했다. 백악관과는 1960년 대통령 당선자인 존 F 케네디를 맡으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헬렌 토마스.
권력과 언론의 거리는 모든 언론인이 고민해야 하는 숙명 같은 과제다. 헬렌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은 전문언론인협회 강연에서 그의 책에 서명을 받으려는 한 팬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요즘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우신가요?’ 사적인 질문으로 이해한 그는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담당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불행하게도 질문을 던진 팬은 <데일리브리즈>지의 스포츠 칼럼니스트였고, 헬렌의 답은 활자화되고 말았다.

▲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헬렌 토마스.
누구보다도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오가 분명한 언론인으로, 그는 이 권력과의 거리라는 문제를 그동안 어떻게 풀어왔을까? 그가 보내온 이메일 답변은 이렇다.

“저는 개인적인 감정이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합니다. 저는 지금 칼럼을 쓰는데, 그것은 단순한 보도와는 다릅니다. 보도에서는 제 의견을 피력하지 않죠. 누가 대통령이고, 그들의 소속 정당은 어디냐 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을 모두 공평하고 똑같이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본의 아니게 부시 대통령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낸 헬렌은 정중한 사과 편지를 써 보냈다. 그가 개인적으로 지지했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오바마가 이룬 일이 한편으로는 자랑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을 실망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잘 안다.

▲ 익살 스런 표정의 헬렌 토마스. ⓒ <미디어오늘>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에 익숙한 사람들을 행정부에 뽑는 것을 보면 그렇죠.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그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입니다. 흑인 미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면이 있죠.”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고, 백악관 브리핑 룸에서 자신이 만든 단편 영화 한 편을 틀었다. 기자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퇴임 기자회견 장면을 담은 것이었다. 맨 앞줄의 헬렌 토마스만이 예외였다. 그는 기자 회견 내내 코를 골며 자다가 기자회견 끝 무렵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클린턴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도 거기(대통령직 혹은 연단) 서 계신 거예요?” 브리핑 룸을 가득 채운 기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 장면의 의미를 모를 기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헬렌은 미국 언론 최후의 보루이자 마지막 정통 정치 기자인 것이다. 그에게 마지막까지 가장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기자역을 버리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저는 1961년부터 미국의 역사를 다뤄온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백악관에서 만들어졌죠. 저는 온 미국민을 대표해 거친(tough) 질문을 던진다고 믿습니다. 모든 리더들은 그 미국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권력과 언론의 관계, 언론인의 소명에 대해 고뇌하는 젊은 기자들을 향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저는 언제나 계속해서 배울 수 있었기에, 정말 위대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분들이 삶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면, 그래서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싶다면 저널리즘에 뛰어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에너지와 열정만 있다면, 계속해서 나아가십시오. 언제든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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