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일요일 아침, 동장군이 잠시 그 기운을 감추고 있었는지 눈이 아닌 비가 오랜만에 광주를 적셨다.

오늘 중요한 취재가 있다.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삼복서점 앞에서 열릴 예정인 ‘MB악법 저지 결의대회’가 그것이다.

여기저기서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민주당과 함께 광주의 언론단체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당 지도부들이 대거 광주에 내려온다는 소식에 그들의 행적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광주에 도착한 즉시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하여 80년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몸을 내던진 민주영령들을 위해 참배했다.

뚜벅이라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게 흠이었다. 정 대표 일행의 첫 일정을 놓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광주문화방송 대회의실을 향했다.

오, 이런... 부랴부랴 도착했건만 ‘광주전남 언론노조 간담회’는 이미 끝난 상황. 허탈감에 차가 없음을 통탄하며 주변에 남아있던 기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으로 상황을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자, 다음일정은 가장 중요한 결의대회다. ‘이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장취재를 사수하고 말리라!’ 이렇게 다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의대회 예정 시간은 2시 30분. 장소는 광주 동구 금남로 옛 삼복서점 앞이다. 그곳은 바로 지난해 봄 FTA 협상에 반대하며 광주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미리 취재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결의대회 준비로 분주해보였다. 무대처럼 사용 가능한 큰 행사용 차량에 ‘MB악법 저지’라고 써진 색색의 풍선들이 바람에 어지럽게 휘날렸다.

이들의 결의대회를 광주 하늘도 지켜보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오늘 하루 종일 내릴 것만 같았던 비도 어느새 그쳐있었다.

드디어 2시 30분. 결의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민중가요가 금남로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지도부와 당원들이 속속 도착하고 주요 언론 취재진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취재를 시작한 이래 이렇게 많은 인원의 취재진을 접한 건 처음이다.

방송법저지를 위한 모임이라 그런지 언론인들의 관심도가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양복을 차려입은 점잖은 분들이 대거 모여드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일요일 휴일 거리를 돌아다니던 광주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정 대표와 당 지도부들, 그리고 여러 언론단체 대표들이 무대차량에 올라 MB악법의 부당성을 소리 높여 외쳤다. 재벌언론, 재벌은행, 핸드폰 도청, 인터넷 자유침해…. MB악법이 이를 밀어붙여 광주가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를 다시 후퇴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의원은 발언 도중 목에 핏대가 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드시 악법 저지를 성공시키고야 말겠다는 그들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잠시 멈춰 설 뿐 다시 자신들이 갈 길을 재촉하기 바빴다. 얼굴에는 무관심이 드러났다.

취재 중 서울에서 내려온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민주주의 텃밭인 광주 시민들의 반응이 기대이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제 광주는 예전같이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이다.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광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80년대 치열했던 그 시대의 시점에서 멈춰서 있을 뿐이다.

격동의 80년대를 겪었던 장년층들은 아직 정부가 추진하는 행보의 부당함을 술자리에서 개탄해 할지 모르지만 10대 그리고 2,30대의 청년들은 ‘그냥 또 잠시 시끄러워지겠지’라며 심드렁해 하는 것이 전부다.

아쉽다. 안타깝다. 지금 MB정부와 한나라당이 임시국회에 상정하려는 법은 우리들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몇 마디 적었다고 미네르바가 잡혀가고 공익에 해를 끼치면 핸드폰 도청을 허락하겠다는 것은 젊은이들이 매일 접하는 통신에 관한 법인 것이다. 분개해야 마땅하건만 법이 통과된 후에 조치를 하려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결의대회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시민사회, 언론단체들과 힘을 합쳐 반드시 MB악법만은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마지막으로 외치며 마무리 지었다.

300여명의 당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삼복서점 앞이 순식간에 휑해졌다. 시민들은 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걸음을 재촉했다.

순간 허망함이 밀려왔다. 취재를 하는 기자에게 오늘 있었던 일은 분명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는 언론인들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민주당과 언론단체들의 파티만으로 끝난 것처럼.
MB정부가 지금 하려는 행태는 언론단체나 민주당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이라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가 MB정부를 향해 감시의 총을 겨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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