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자살 사건보도 ‘선정성’ 다시 논란… 일부 언론 “악플 탓” ‘최진실법’ 편승

탤런트 최진실씨의 자살 사망 사건을 다룬 언론보도의 선정성이 도마에 올랐다. 자살방법과 현장, 도구의 출처까지 경쟁적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언론이 나서서 ‘루머’를 확대 재생산했다는 책임론도 부각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자살의 원인을 ‘인터넷 탓’으로 단정지으면서 정치권의 공세 논리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살보도 선정성 속보경쟁 논란= 지난 2일 최진실씨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직후, 촛불정국과 인터넷에 대한 역풍 탓인지 포털사이트의 뉴스 페이지는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다. 대신 조선, 동아, 중앙일보 등 주요 일간지의 인터넷 사이트들의 보도 경쟁이 뜨거웠다. 최진실씨 사망사건 기사를 특집기사 박스 페이지로 묶어 인터넷 판 전면에 내세운 이들 신문들은 자극적인 제목과 속보경쟁, 자살방법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으로 유명인의 자살보도에 있어 언론의 선정성 비판에 다시 불을 지폈다.

▲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고 최진실의 발인이 지난 4일 오전 일원동 삼성의료원에서 이루어진 가운데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최진영이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특히 중앙일보는 지난 2일 오전 인터넷 판에 구체적인 자살방법 및 압박붕대 구입 경로, 가격 등을 보도한 기사(‘최진실이 사용한 압박붕대는 무엇?’)를 올렸다가 누리꾼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중앙은 뒤늦게 해당기사를 삭제했다. 지난 안재환씨 사망사건 당시에도 일부 언론이 자살에 이용됐다는 ‘연탄’의 출처까지 공개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들 인터넷 신문들은 최진실씨의 자살 원인으로 일부에서 제기됐던 ‘사채설 의혹’을 ‘최진실 사채설 내용 뭐기에…’(동아), ‘고 안재환 채무액 100억 원대?’(조선), ‘“바지사장 내세워 사채업” 의혹 증폭’(중앙) 등 그대로 보도하면서 의혹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 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방송도 자유롭지 않다. MBC, KBS, SBS 등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해 케이블TV의 각종 연예정보 프로그램 등도 안재환, 최진실씨의 사망 사건을 보도하며, 자살 현장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는가 하면 장례 절차를 쫓아 유족과 지인들의 통곡 모습을 여과 없이 경쟁적으로 생중계 하는 데 몰두했다는 지적이다.

▷ 악플 때문에 최진실이 죽었다? = 일부 신문들은 최진실씨의 자살 원인을 ‘인터넷 악플(악성 댓글)’ 탓으로 단정하며, 인터넷 규제책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오히려 ‘악플’의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책임성 논란과 관련해 여론의 부메랑을 감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경찰의 중간발표로 최진실씨의 자살 전 행적이 드러난 상태에서 보수신문들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인터넷에 나돈 악성루머’와 ‘악플’을 최씨의 자살 원인으로 단정지었다. 3일자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사이버 주홍글씨’의 비극>이다. 중앙은 최씨가 “루머”와 “악플”로 생을 마감하게 됐다고 보도하는 한편, 죄의식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루머와 악담을 퍼뜨리는 ‘키보드 워리어’를 집중 비판했다.

동아도 이날 1면 <“악플이 진실을 죽였다”>에서 최씨가 “인터넷 공간에서 무차별 확산된 악성 괴담과 수많은 악성 댓글(악플)을 견디지 못해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며, 인터넷상의 루머 유포와 ‘사이버 테러’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아는 8면에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괴롭힌 괴담들을 유형별로 나눠 정리”한다며 그와 관련한 세 가지 루머를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여권 추진 ‘최진실법’에 편승한 언론 = 이들은 사이버모욕죄와 인터넷실명제를 뼈대로 정부·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최진실법’ 도입에 적극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일자 조선과 동아일보는 이날 1면에서 각기 <악플 추방위해 ‘최진실법’ 추진> <사이버모욕 처벌 ‘최진실법’ 만든다>라는 무비판적 제목으로 여권의 움직임을 전달했다. 이날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관련 소식을 전하며 ‘논란’을 예상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중앙은 4일자 사설 <사이버 폭력 막을 ‘최진실 법’ 만들어야>에서 “실명 확인의 범위는 앞으로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본다”며 “사이버 폭력을 규제하는 통합적인 법, ‘최진실 법’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 ‘언론 자살보도 지침’ 유명무실 = 최씨의 자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파장을 던져줬다. 그러나 언론이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채 ‘장사’에 급급하거나 ‘아전인수’격 해석에 급급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최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지난 2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기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당부의 글을 올렸다. “안재환씨 자살사망 이후 일부 언론에서 자살방법에 대한 자세한 묘사 뿐 아니라 현장 사진 게재, 자살원인에 대한 온갖 추측기사와 루머 등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며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준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실제 한국기자협회는 한국자살예방협회, 보건복지부와 공동으로 지난 2004년 ‘자살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제정한 바 있다. 여기에는 △자살 장소, 방법 등의 묘사 및 사진게재 자제 △자살동기 단정적 보도 피할 것 △자살을 영웅시 혹은 미화하지 말 것 △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다루지 말 것 등의 보도 윤리규정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한국자살예방협회 모니터 결과, 올해 1∼8월 자살관련 언론보도 271건 가운데 88건(33.1%) 이 지침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곽병찬 논설위원은 7일 칼럼 ‘자살보도지침’에서 “언론사들은 적극적인 협조와 준수를 다짐했지만, 말뿐”이라며 “(언론이) 자살 바이러스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최문주·김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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