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확대경] 고생 끝에 낙(樂)이 왔나 낙(落)이 왔나

[데일리서프라즈- 김재훈 기자] 4일 오전. ‘구 여권’을 담당했던 ‘현 야권’ 담당 기자들이 일제히 서울 당산동 민주당 중앙당사로 모여들었다. 이날 공천심사위원회의에 앞서 공천심사기준에 대한 박재승 공심위장의 구체적인 입장표명이 있을 것으로 예측됐던 탓이다.

박 위원장의 발언수위 여부에 따라 사실상 낙천자들의 윤곽이 드러나는 까닭에 기자들이 박 위원장의 입에 초점이 맞춰졌음은 물론이다.

당초 예정됐던 공심위회의장은 중앙당 5층에 마련된 공심위장실. 스무명 정도가 들어가면 꽉 찼다 싶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하지 못하다. 그러한 탓에 공심위회의에 앞서 좋은 자리, 즉 박 공심위장과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자들의 ‘선의의’ 몸싸움에 전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심위장실의 문이 굳게 닫혀 있던 탓에 50여명의 기자들은 그 앞에 빼곡히 줄지어 있어야만 했다. 물론 문에 가까이 위치한 기자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 사이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간간히 새 나왔다.

핵심은 “이렇게 고생해서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박 공심위장이 중요한 단서 하나도 던지지 않는다면 헛수고가 아니냐”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본격적인 공천심사가 진행된 지난 일주일 여간 박 공심위장에게서 심사 기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듣지 못했거나 대부분의 공심위회의가 모두발언 공개도 없이 비공개로 진행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회의장이 같은 건물 7층으로 변경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자들 간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 상대적으로 이동하기 수월한 대열의 끝머리에서 “앗싸”하는 소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앞머리에서는 불만 섞인 “아이씨”가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졌다.

기자들은 서둘러 이동하는 중에도 박 공심위장의 발언 수위를 놓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를 짐작해서 인지 박 공심위장은 기자들을 놓고 “당규 14조 5호에 대한 기준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기 때문에 오늘까지도 제가 아무 얘기도 않고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인사도 아니고......”로 말문을 열었다.

뒤이어 박 공심위장은 “큰 비밀이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롭지 않다고 판단해 조금 말하겠다”면서 “적어도 이 기준만큼은 공심위장으로서 지키려는 가치”라고 조심스럽게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박 공심위장은 심사기준, 특히 공천 신청자 중 부정·비리 연루자들에 대한 심사기준을 제시했다. “금고형 이상에 해당하는 전력을 가진 당 공천신청자들의 경우 공천심사에서 제외한다”는 것. 이보다 간결하고 명확할 수 없다.

최근 당 안팎에서 일었던 ‘당 지도부 등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개인비리와 당을 위해 희생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박 공심위장의 이 같은 발언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다.

모두공개 직후 기자들은 흡사 모래밭에서 바늘이라도 찾은 모습으로 서둘러 장내를 빠져나갔다. 그 누구보다 먼저 이 소식을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다.

그런 과정에서도 상당수 기자들은 일부 특정 공천신청자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전부다 탈락이네. 뭐 볼 것도 없네”, “(기사의) 제목을 박 공심위장이 뽑아줄 줄이야......”는 등의 짤막한 저마다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유와 상황이 어떻든 박 공심위장의 발언에 따르면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홍업 의원, 신계륜 당 사무총장, 이용희 의원, 배기선 의원, 김민석 전 의원 등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던 ‘전력 인사’들의 경우 공천에서 멀어지게 된다.

박 전 비서실장은 대북 불법송금 혐의와 관련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SK 그룹에서 7천만원을 받은 것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전력,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됐던 전력, 신 사무총장은 2006년 대부업체 ‘굿머니’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전력, 이 의원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 청탁 관련 9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 배기선 의원은 광고업자로부터 1억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돼 현재 대법원에 재판이 계류 중인 전력(?), 김 전 의원은 2005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SK로부터 2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전력 등이 발목을 잡는다.

이중 일부 인사들은 복수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 전력이 심사 기준과는 ‘무관함’을 주장하고 있으나 박 공심위장은 이러한 목소리마저도 염두에 둔 듯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대의를 놓고 나갈 때는 항상 억울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큰 일이 있을 때에는 억울한 사람의 희생을 갖고 가는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말해 더 이상 의 재론은 있을 수 없음을 못 박았다.

이런 저런 가능성들을 열어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쇄신공천에 대한 박 공심위장의 의지는 엿보이나 당내 불협화음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예측되던 것에 비해 기대이상(?)의 폭탄 발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손학규·박상천 두 당 공동대표는 같은 날 오후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박 공심위장을 면담하기위해 부랴부랴 당사를 찾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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