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민심르포① 광주·전남] 등돌린 호남 '경제대통령'엔 호의?

2007 대통령선거, 드디어 선택의 시간이 돌아왔다. 내로라하는 정치분석가들의 입에선 한결같이 “이명박 대세론이 깨지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온다. 사흘을 멀다하고 각종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숱한 여론조사 결과 또한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그 흔한 ‘지지율 몇% 보도’엔 국민의 목소리가 없다. 왜 누구를 지지하는지 그 이유가 담겨있지 않다. 이에 본보는 대선막바지 민심취재에 나선다. 권역별 ‘민심르포 시리즈’는 그 결과물이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이회창도 다시 나왔고, 이젠 정동영이든 이인제든 함 뭉쳐봐야지” “그래도 먹고 사는 거 해결하려면 이명박이 제일 아니겠어?”

범여권 전통적 지지기반인 광주와 전남의 민심은 크게 엇갈렸다. 대체적으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40~50% 대에 머물던 정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60% 안팎으로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 데 대한 방증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지지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범여권 전통적 지지기반’으로 불렸던 광주-전남에서도 지역주의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난 셈이다. 다만 ‘대선에 별 관심이 없다’고 답변을 피하는 이들이 많아 취재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광주서도 “경제대통령 이명박”, 격세지감

지난달 30일 광주-전남을 방문했을 때의 첫 느낌은 ‘무관심’ 그 자체였다. 광주공항에서 만난 택시기사 곽 모 씨(47)는 “손님들이 타도 예전같이 정치나 대선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며 “내가 먼저 대선얘기를 꺼내도 듣는 둥 마는 둥”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호남에 지지기반을 둔 후보들, 즉 범여권의 단일화 속도가 더딘 까닭이다. 호남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일화’ 압박에도 후보들의 기싸움으로 누가 적자인지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상황. 오히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가 곳곳에서 감지되기도 했다.

무안 해제면 시장에서 20년째 건어물 장사를 하고 있는 김 모 씨(56)는 현 대선정국을 이렇게 바라봤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는 말과 달리 그의 분석력은 여느 정치전문기자 못지않았다.

“예전엔 호남이 한나라당이 불모지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범여권이) 개혁-부패 이런 식으로 나눠선 이길 수 없다. 강 머시기야(강성만 한나라당 부대변인) 그 양반도 저번 보궐선거에서 선전했지. 예전처럼 민주당·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옛말이야. 나도 이번엔 이명박이를 응원할라고. 그런데 어찌될 진 아직 모르지.”

하지만 대부분의 광주-전남 민심은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의혹’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반응이 많았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 모 씨(57)는 “BBK가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머 사기 쳤다고 하는데, 우린 잘 몰라. 그냥 백성들만 배부르게 해주면 되지”라고 무관심을 드러냈다.

각종 의혹에도 이명박 후보에 대한 호남민심은 예상보다 너그러웠다. 무안의 시장에서 만난 다른 한 아주머니는 이명박 후보의 각종 의혹에 대해 “(범여권이) 10년 해먹었는데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놨으니, 이제는 한나라당이 돼야하지 않겠어. 경기도 좀 펴야지. 이거 하루 먹고 하루 사는 게 힘들어서…”라며 한나라당에 대한 우회적 지지를 표현했다.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에 매료된 듯한 모습도 보였다. 신발가게를 하는 양 모 씨(37)는 “그래도 이번엔 경제대통령이 나와야 될 것 같다. 머 아직 우리 쪽이 뭉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이명박이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여권을 ‘우리쪽’이라 칭하는 등 아직 미련을 버리진 못하는 모습 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지지국민 이민 갔겠나?”

하지만 광주-전남지역은 전통적인 범여권의 지지기반이다.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각각 97년과 2002년 이곳에서 특유의 응집력으로 90%이상의 득표율을 얻고 당선됐었다. 특히 광주는 2002년 당시 국민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1위로 만들어 이른바 ‘노풍’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광주-전남 민심은 아직도 그런 대역전 드라마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거세지고 있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 모 씨(27)는 “단일화가 무산됐다고 보지만,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냐”라며 “후보들이 생각이 있다면 꼭 해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를 단일화의 ‘호기’로 보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공항서 만난 회사원 박 모 씨(32)는 “이회창도 나오고, 범여권에서 단일화로 분위기만 좀 띄우면 따라잡을 수 있을 거 같다”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선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좀 볼거리가 생긴 것 같다”고 ‘범여권 단일화’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시내 골목에서 만난 대학생 오 모 씨(22)도 이 같은 반응을 ‘선거 공학적 접근방식’으로 설명했다. 그는 “범여권 후보가 정동영이든, 이인제든, 문국현이든 단일화로 뭉쳐야 한다”며 “김대중-노무현을 뽑은 국민이 이민을 갔겠느냐. 극적으로 이들이 뭉쳐진다면, 정권재창출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러내놓고 이명박 후보를 질타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영업을 하는 이 모 씨(49)는 “이명박이 대통령되면 대외적으로 창피한 일이 아니냐”라며 “위장전입, 위장취업 등을 범한 사람이 대통령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하냐란 말이 현실화될까봐 무섭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택시기사 유 모 씨(44)는 한술 더 떴다. 그는 “보수세력이 완전히 갈라졌다. 내가 보기엔 두 토막이 아니라 박근혜까지 세 토막으로 나뉠 것 같다”며 “부패세력에 미래를 맞길 수는 없다. BBK인지 먼지도 빨리 수사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호남 특유의 응집력을 설파하는 모습도 보였다. 낮엔 커피숍을 밤엔 맥주집을 운영하는 김 모 씨(48)는 “이회창도 나오고, 의혹 많은 이명박의 지지율이 좀 떨어지는데 이래도 못 이기면 바보다”라며 “호남 특유의 응집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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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기자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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