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난 10년정권에 대한 견고한 확신없이 정권재창출 불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전이 '조중문'이란 흥행업체의 사활을 건 띄우기와 DJ-노무현 10년 정권에 염증을 느끼는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비원(悲願)에 힘입어 그런대로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들 흥행업체란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막강한 후보' 이명박이 등장했다.

이번 한나라당 경선은 과거 이회창 씨를 후보로 뽑았던 두 번의 경선보다는 확실히 재미가 났었다. 이회창에 비하면 '고만고만한' 이명박-박근혜의 경쟁도 흥미를 끄는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개인별로 약간씩 엇갈리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박정희로부터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세력들이 주축이 된 '오리지널'들은 박근혜 씨를 밀었던 것 같고, 흘러간 옛노래로 정권창출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그 나물에 그밥이긴 하나 '오리지널'에 비하면 약간의 개량주의자 냄새를 풍기는 세력들은 이명박 후보를 밀었던 것 같다.

정치를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그렇게 많지 않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관전포인트라면 아마도 이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관심은 '막강 이명박'의 질주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점일 것 같다.

지금 지지도가 60%니, 50%니 하는 것은 물론 별 의미가 없다. DJ의 퇴장 이후 역시 '고만고만했던' 노무현-이인제의 각축에서 노 대통령이 승리했을 때도 역시 지지도가 50% 60% 치솟았던 적이 있다. 물론 이명박 후보의 지지는 조중문이란 흥행업체의 압도적인 후원이 있기 때문에, 그와 반대의 상황 속에서 싸웠던 당시 노무현 후보처럼 급전직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현재의 인기는 그런대로 흥행에 성공한 경선 승리자의 프리미엄이란 성격이 짙어 이걸로 승부를 조기에 결론지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에는 몇가지 중요한 허수(虛數)와 거품이 존재한다. 이명박 후보가 대의원 표에서는 박근혜에게 지고, 여론조사에서 역전했던 것이 그 명백한 증거다. 같은 한나라당내 경선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품이 표로 연결될 수 있었지만, 상대가 있는 본선 게임에서는 그것이 실제 표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어떤 지지도에서건 어느 정도 거품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고, 따라서 누가 뭐래도 이명박 후보가 지금 이 시각 현재로서는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한 사람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겠다.

그러나 '이명박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여권 후보의 부재란 점은 정말로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이명박 후보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과연 DJ-노무현 10년 집권에 대한 염증일까. 그건 아니다. 그런 염증에서 표출되는 순수 오리지널 한나라당 지지표는 사실 박근혜의 것이었다. 그것이 이명박 후보로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과거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하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별로 호의적이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 약진의 원천이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이런 지지는 제대로 된 여권 후보가 존재했다면 이명박으로 결코 가지 않았을 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명박 후보의 과제는 박근혜에게로 몰렸던 한나라당 오리지널 표를 끌어 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정권교체 열망이 큰 지지자일 경우 박근혜가 굳이 아니더라도 지지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 모두가 합리적 판단으로만 살지는 않는다. 박근혜 지지표의 성향을 고려한 행보를 하지 않을 경우 이들의 무조건적인 지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앞으로 이명박 후보의 우경화는 필연적이라고 봐야 하는데, 이런 우경화는 또한 이명박의 원천 지지를 잠식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현재 이명박 후보의 한나라당에 필적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은 민주신당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신당에서 아직 국민들의 믿음을 끌어낼 만한 후보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실은 이명박에게 가장 큰 경쟁력을 제공하는 것이고, 심지어는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문국현 씨 부상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당에 기반하지 않고 있는 문국현 씨의 이름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게 거론되는 것 자체가 실은 한나라당의 유일무이한 대항 정치세력인 민주신당의 한심한 현주소를 웅변한다.

이명박 경쟁력의 가장 큰 원인제공자이기도 하고, 문국현과 같은 무소속 정치신인의 대선출마선언에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민주신당의 한심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것은 명백한 전략적 오류가 일차적 원인라고 할 수 있다.

정치란 명분의 싸움이다. 대통령선거라는 정치게임의 명분 싸움에서 한나라당은 일관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DJ-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포지션이다. 그 포지션이 옳든 옳지 않든, 분명한 것은 명백한 메시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 메시지에 동조하는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하지만 민주신당은 그 태생부터 명확한 대항 포지션이 없는 정당이었다. 정동영-손학규 씨로 대표되는 민주신당의 주도세력들의 포지션은 애매하기 그지 없었지만 굳이 규정한다면 오히려 한나라당에 더 가까운 포지션이었다. 즉 노 대통령과 이 정권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주도해 만들었던 정당이었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들의 이러한 관점과 행위는 그야말로 후안무치요 적반하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신당으로 미리 날아간 수많은 철새(결국 열린우리당과 합당에 성공했으니 철새도 기회를 잘만 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긴 했다)들이 금배지를 다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던 것은 한나라당의 탄핵이었다. 노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면 이들은 철새 자체가 아예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친노 후보'들이 가세하기 전까지 민주신당의 포지션은 명백하게 한나라당 짝퉁 포지션이었다. 짝퉁으로 오리지널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10년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한다면, 절대로 한나라당과 싸울 수 없다. 한나라당의 포지션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조중문이 아무리 지난 10년에 흠집을 낸다 하더라도, 이미 한나라당과 한몸인 조중문을 만에 하나 언론이라고 착각해 그런 관점에 동조한다면, 그러한 후보는 한나라당으로 가서 싸워야지 한나라당의 대척점에 서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정동영-손학규와 같이 '5년은 성공했는데 그 다음 5년은 글쎄...'라든지 '대북정책은 좋은데 경제정책에는 문제가...'라는 식의 관점으로는 이명박 후보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역할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식의 행보를 계속한다면 그건 전략의 부재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제반 여건과 이미지 등을 고려해 볼 때 이명박 후보는 매우 막강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후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명박 후보 자체는 매우 취약한 후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돈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온갖 악덕들이 대통령 후보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상식에 근거한 판단이다.

이명박 후보는 난공불락이 아니다. 매우 불리한 상황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민주신당 경선에 나서고 있는 후보들의 명확한 포지셔닝 정립에서 출발될 것이다. 지난 10년을 너무도 단호하게 부인하는 정치세력과 맞서 싸우는 후보로서, "당신 얘기가 일리가 있긴 한데..."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승기를 잡을 수 없다.

민주신당이 이명박 후보와 맞서 최소한의 경쟁력이라도 가질 수 있는 필수전제는 바로 지난 10년 정권에 대한 명백한 확신이다. 그것을 지금 조중문식 어법으로 표현한다면, '친노' 후보 아니고서는 이명박 후보와 경쟁이 불가능하다. 


'친노'란 레테르를 붙이면 될 일도 안된다는 조중문식의 논리에 빠져 있는 후보가 이명박 후보를 이길 확률은 0%다.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도 포기한 채 지난 10년을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는 조중문 같은 유사언론의 꾐에 빠져서는 0.00001%라도 이명박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DJ-노무현 정권의 지난 10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다. 그러나 큰 흐름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정당하다는 기본인식이 여권에서 후보를 자임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그런 관점의 표출이 갖는 승률은 지금 현재로서는 10%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대결하는 후보라면, 그런 관점만이 올 12월의 본선대결에서 역전을 내다 볼 가능성을 단 1%라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후보를 준비하는 것이 실은 민주신당의 할 일이다. 한나라당 짝퉁후보를 내는 일을 할 정치세력은 민주신당이 아니라 하더라도 널리고 널려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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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석 정치전문기자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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