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에서부터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3년 9개월의 영욕 

[데일리서프라이즈 최한성 기자] 100년 정당의 꿈이 사라진다. 민주당의 일부 인사들이 “한 세기는 갈 영속적 정당을 만들자”는 목표로 출범시킨 열린우리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우리당은 18일 일산 킨텍스에서 임시전당대회를 열고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합당을 공식적으로 결의할 예정이다. 이날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양당간 합당에 찬성할 경우 우리당은 한국정당사에 3년 9개월의 짧은 역사를 남긴 채 당의 간판을 내리게 된다.

우리당은 출범과 함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원내 47석(민주당 40명, 한나라당 5명, 개혁국민정당 2명)의 규모로 창당했지만, 거대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틈바구니에서 전국정당 건설과 지역주의 타파, 그리고 금권정치 배격을 주장하며 등장한 까닭이다.

일단 출발은 좋았다. 2004년 1월에 열린 첫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지도부 체제를 탄생시킨 우리당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에 힘입어 그해 4․15 총선에서 단독으로 의회권력을 교체했다. 당시 우리당이 얻은 의석은 총 152석.

이때 우리당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당시 청와대에 모인 우리당 소속 당선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르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17대 국회가 문을 열면서 이들의 표정은 달라졌다. 총선을 정점으로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하향세의 원인은 우리당 스스로 만들었다. 개별 의원들은 튀는 언행으로 여론의 비판을 자초했다. 이런 가운데 당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또 한편에서는 개혁 대 실용 논쟁이 점화되면서 불안을 가중시켰다. 당 안팎에서는 108번뇌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2004년 첫 정기국회는 이런 우리당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줬다.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법안 처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한나라당의 저지선을 뚫지 못하면서 국민적 불신을 불러왔다. 민생을 뒤로 미루면서 착수한 일을 매듭짓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당청간 갈등도 우리당의 존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정분리를 천명하면서 당과의 거리를 유지했지만, 주요 인사와 정책을 두고 당청은 번번이 부딪쳤다. 유시민 의원을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은 그 대표적 예다.

그러는 사이 우리당의 인기는 곤두박질쳤다. 한때 과반에 육박했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내려앉았고, 그 결과는 2005년 이후 치러진 각종 재보선에서 거둔 ‘40대 0’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참패의 충격은 컸다.

대선을 1년 반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치러진 전국선거에서 대패, 정권재창출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우리당 내부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부 인사들은 “정계개편을 통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당의 위기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이에 당 지도부는 논란의 확산을 억제하면서 정계개편의 논의를 정기국회 이후로 연기시켰다. 그러나 수면 아래서 이뤄지는 논의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친노성향의 당 사수파와 중도성향의 통합신당파는 정계개편에 대한 이견을 드러내면서 맞서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의 탈당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에 당 사수파는 자신들이 내세운 질서있는 정계개편론의 일부를 후퇴시키며 분열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임종인 의원이 첫 테이프를 끊은 탈당은 김한길․강봉균 그룹 등의 연쇄적 이탈을 불러왔다.

이후 우리당은 2․14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합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정세균 지도부의 대통합추진 권한이 만료된 6월 14일 이 같은 당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요동치는 당을 안정시킬 수단이 되지 못했다. 당의 침몰이 상당히 진행된 까닭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당은 범여권의 제 정파로부터 통합의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모도 겪었다. 특히 박상천 대표의 민주당이 우리당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과거 분당의 구원을 떨치지 못한 채 배제론 등을 무기로 통합에 미온적인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만난을 겪은 우리당은 이달 10일 민주신당과의 합당을 선언했다. 대선일정상 통합을 더 늦출 경우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정권을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양당 내부에서 발동했기 때문이다. 이에 양당은 20일 합당을 목표로 통합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는 일조차 우리당에게는 버겁다. 당내 강경사수파와 민주신당 내 일부가 거세가 반발하고 있는 탓이다. 정세균 의장을 비롯한 우리당 지도부는 양당의 합당이야말로 대통합을 완성하는 길이라면서 이에 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참여정부 하에서 총리를 역임한 이해찬 전 총리 등 일부 인사들은 민주신당에서 우리당의 정신을 되살리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당에 대한 범여권의 평가가 여전히 엇갈리는 상황이어서 그 가치가 신당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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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성 기자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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