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집단총살 결론...명예회복조치 권고

4월 20일 봉황면 철야마을 앞 합동위령제 엄수

   
  ▲ 20일 오전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동박굴재에서 신정훈 나주시장과 김동춘 상임위원 등이 원혼들에 제의를 올렸다. ⓒ줌뉴스  
 
한국전쟁 당시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 뒷산(속칭 동박굴재)에서 경찰이 28명의 주민들을 집단학살했다는 해당 지역민 등의 규명 요청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4월 19일 그 결정문 요지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에서 “서치호 외 27명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 2월 26일 정오경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뒷산에서 나주경찰서 특공대원들에 의해 집단총살 되었다”고 결론짓고, 국가의 공식사과를 비롯한 명예회복과 역사기록의 수정 등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권고했다.

   
  ▲ 멀리 보이는 양쪽 산봉우리 아래 동박굴재 골짜기에서 집단총살이 자행됐다.  
 
발표에 따르면 희생자들은 경찰이 ‘빨갱이’로 지목한 주민 3명과 입산자 가족, 20~30대 남자들, 가족의 연행에 항의하는 여성 7명 등이었으며 4명은 현장에서 달아나 생존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의 직접 가해자는 봉황면에 파견된 나주경찰서 특공대 1개 소대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당시 경찰기록에는 작전 중 사살된 ‘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민간인 희생의 실상이 은폐된 채 공비토벌 전과로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언급되었다. 진실화해위는 경찰의 불법행위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의 최종적 책임은 국가에 귀속됨을 분명히 했다.

   
  ▲ 20일 합동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는 희생자 유족들과 마을주민, 관계자들. ⓒ줌뉴스  
 
4월 20일 오전부터 2시간 가량 엄수된 합동위령제에는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차관급)인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학)와 조사관들이 참여하여 주민들에게 진실규명 사실을 전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유족들과 관련 단체들은 경찰청장의 직접 사죄와 정부의 공식 사과, 피해보상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으로 입장을 대신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공동대표 이이화, 김영훈, 임태환)와 나주봉황유족회(회장 양성일)는 성명에서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정부 차원의 공식적 대응을 강도있게 주문함으로써, 향후 전개될 과거사 진실규명 활동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봉황양민학살희생자위령비’ 비문 전문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26일 이곳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수각, 등내, 선동)에서는 남녀노소 심지어 임신 8개월의 부인에 이르기까지 무려 87명에 달하는 무고한 주민들이 덕룡산 자락 동박굴재에서 봉황지서 소속 경찰관과 특공대원들의 손에 학살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그밖에도 비록 때와 장소, 경우는 다를지라도 면내 다른 지역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지만 반세기가 넘은 오늘에 이르도록 죽은 분들은 말이 없고 뒤에 남은 가족들은 갖가지 핍박을 받으며 쓰라린 고통속에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가 서기 2001년 가을 각지에 흩어진 유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주시 봉황면 양민희생자 유족회를 발족하고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나주시의회를 거쳐 이 고장 출신 배기운의원의 소개로 국회의장에게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오늘에 와서는 시내 각 단체와 뜻있는 분들의 협조와 호응으로 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나아가 다시는 쓰라린 비극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위령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런 하찮은 표시로서 어찌 그날의 엄청난 아픔을 지우고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요마는, 영령들이여!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들의 아들 손자들이 살아갈 이 땅의 통일과 앞날의 번영을 지켜 봐 주소서.
                                              2002년 3월 20일
                         나주시 봉황면 양민학살 희생자 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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