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경 시인 네 번째 시집 탕탕' 출간
'탕탕'은 그리움으로 서로 뭉쳐 폭발한 빅뱅

"지혈이 잘 안 되는/ 혀에서 피를 받아/혼이 썼다는 화엄경을/ 박물관에서 본 가을

활활 타오르는 조계산 자락을/ 먹먹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대웅보전으로 오르는 길에

나는 보았네/ 이끼 낀 오래된 석축에/ 피로 새긴/ 꽃무릇 경전

누군가는 화두를 새기고/ 누군가는 불화를 피우고

익은 햇살 아래 타오르는/ 핏빛 화엄"

「혈사경」

석연경 시인 ⓒ
석연경 시인. ⓒ석연경 시인 제공

시인이자 문학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순천 연경인문문화연구소 석연경 소장의 네 번째 시집 『탕탕』(시정시학)이 최근 출간되었다.  

석 시인은 '탕탕'의 의미를 우리네 깊은 속내 캄캄한 혼돈 속 뭔지 모를 것들이 그리움으로 뭉쳐 폭발할 때 일어나는 소리인데, 이는 우주 생성을 불러온 빅뱅(Bing Bang)이 일어날 때 나는 소리와 같다고 말한다.

또 기성의 모든 알음알이 다 벗어던지고 참 나와 참진 세계, 즉 본지풍광(本地風光)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탕, 탕 내리치는 죽비 소리와 같다고도 했다. 

기자는 현재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부속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집필 중인 석연경 시인을 만나 최근 출간한 시집 『탕탕』을 주제로 문답을 나누었다.
 

Q 책에 수록된 시들을 읽다 보면,  언어로 다가갈 수 없는 것들을 감촉하고, 어떻게든 전하려고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은 작가의 감수성이 가히 환상적이다.

A 독자가 시어로부터 빛과 소리를 듣게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나의 상상력과 이미지의 스케일이 크고 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Q 탕탕의 의미가 대단히 중의적이다.  

A 『탕탕』은 태초로 돌아가 너와 내가 하나로 어우러지려는 사랑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끝과 시작, 있고 없음, 가고 옴의 상반이나 구별이 없다. 당연히 긍정과 부정 등 인간의 인식을 넘어선다.  그리하여 지금은 나뉘어 서럽고 슬프지만 불연기연(不然其然)의 대긍정 문법으로 우주 삼라만상을 서로 간절한 하나로 묶고 싶었다.

'탕탕' 표지
석연경 시인의 '탕탕' 시집 표지그림.

Q “사랑을 읊조리는 동안 오로라가 빛나고 은하수가 흐르고 꽃이 피고 눈이 내렸다. 사랑 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시 안에 사랑이 있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무슨 뜻인가?

A 서로 나뉘어 둘이 아닌 하나의 온전한 세계, 즉 일즉전 다즉일 (一卽全 多卽一)의 화엄세계를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이를 두고 "너와 나는 하나라는 ‘동일성의 시학’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순간에 묶는 ‘순간성의 시학’이 서정의 양대 시학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서정시학은 불교나 실존주의 세계관, 특히 한순간 문득 깨치는 선(禪)의 핵심인 돈오각성(頓悟覺醒)이나 본지풍광과 연결되어 있다"면서 "그것을 잘 보여준 깊이 있는 시집이 『탕탕』이다"라고 말했다. 

Q 백련재에 와 보니 빛처럼 떠도는 생각을 하나의 텍스트에 집약하기 좋은 장소로 보인다. 

A 시의 본질은 작가의 내면과 사물이 만나는 접점에서 감각의 구체를 통해 근원적 사유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늘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어야 한다. 밤이면 주먹만한 별이 뜨고 은하수가 보이는 이곳은 나의 감각을 벼리기에 참 좋은 장소다. 

Q 시 창작 아카데미, 테마 인문학 등의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입주작가를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A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시간과 일정을 조정해 짬을 냈다. 대신 연구소를 가끔 오가는 불편은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작가는 상상력과 이미지의 스케일이 크고 깊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내 바람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석연경 시인은 다음달 말까지 백련재에서 집필에 몰두할 예정이다.

해남땅끝순례문학관 백련재에서 집필 중인 석연경 시인 ⓒ손민두
해남땅끝순례문학관 백련재에서 집필 중인 석연경 시인. ⓒ손민두

**석연경 시인 프로필

시인 문학평론가
시집 『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 『푸른 벽을 세우다』, 『탕탕』.
순천사찰시사진집 『둥근 거울』.
정원시선집 『우주의 정원』.
힐링잠언시사진집 『숲길』.
시평론집 『생태시학의 변주』.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현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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